퇴진하라 퇴진하라.
계엄령이 나에게 너무 충격이었나 보다. 매일매일 밤마다 유튜브 라이브나 뉴스 속보를 확인하느라 새벽 1-2시쯤 잠이 든다. 중간중간 잠이 깨면 또 속보가 있는지 확인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혹시나 밤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뉴스를 확인하고 나서야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게 '트라우마' 같은 것이 아닐까? 싶지만 내가 뭔가 했던 것도, 또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딱히 트라우마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어색한데, 누군가는 그런 말을 참 쉽게도 하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 나라에 진짜 트라우마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니까, 정말 장수하신 분을 기준으로 어림잡아도 1924년부터 직간접적인 역사의 산증인으로 살아오신 분들이 정말 많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념전쟁으로 인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무차별 학살, 박정희 쿠데타와 베트남 전쟁,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등. 그 길고 긴 시절을 지내면서 그들은 분명 인간으로서의 참담함과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잔혹한 현실 앞에서 평범한 인간은 그 참담함의 원인을 직면하고 바로 쳐다볼 용기가 없는 것 같다. 나의 무력감과 참담함, 인간에 대한 환멸, 죽은 자에 대한 비통함 등 이런 감정들은 그 감정자체로도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에, 역사학자, 비평가, 기자 등 사건을 직면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때로는 '적당히' 하고 말아 버리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 우리는 그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죽였던 자신의 행동을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상사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어쩔 수 없었던 체제의 희생자"로 포장하기도 한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 참전 군인은 박정희보다 '가난'을 원인으로 꼽는다. 일본의 강제 징집이 아니었다면, 광산에서 죽어가지 않았을 조선인은 일본보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라며 마치 대단한 정치적 혜안과 인생에 대한 무상함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과연 그것은 사실일까? 그런 질문이나 반문은 없고 그저 '적당한 말'을 뱉고 '편을 가르고'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어쩌면,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지 않고 그저 부끄러워했던 시인 '윤동주'를 지금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 까.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했던 '윤동주'를 자신의 모습인양 동일시하면서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아픔마저 윤동주의 것으로 돌려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역사의 장난이 마치 한국만의 일이냐고 묻는 다면, 그건 또 아니다. 이 세계의 소식을 모두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인 학살과 나치즘의 핵심 인물을 재판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물었던 유대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말살하고 있다. 어쩌면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사유하지 않는 악'은 그렇게 이 세상에 만연해있다. 더 악랄해지고 더 염치가 없어지고 더욱 잔혹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아렌트가 만약 살아있다면, 작금의 이스라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렌트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악'은 그저 '유대인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이 '자신이 그 악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 질문하지 않는 것과 의심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결과로 이어진다. 폐쇄적인 군대 문화 속에서 내가 지금 어떤 작전에 투입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반문할 수 없는 환경도 충분히 이해한다. 비단 군대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직장문화 학교문화 조직문화가 다 그렇지 않은 가. 그리고 꽤 많은 군대의 수장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지금, '당장 2차 한국 전쟁이 발발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PTSD 역시 십분 공감된다. 그 역시 한국의 역사니까. 그리고 계엄령이 선포되자 반사적으로 병원 응급실로 모여들어 숨겨달라고 요청한, 국사정권의 트라우마 역시 공존하는 곳이 한국이니까.
그렇기에, 이 계엄령이 절대 가벼이 취급되서는 안된다. 모든 국민들의 PTSD와 트라우마를 건드려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든 사람들, 그 모든 과정에서 '사유하지 않는 악'을 행한 모두를 우리는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