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에 대한 우리의 기대

법을 잘 알기에 어쩔 수 없는 것과 법을 악용하는 것의 차이.

by 박다은

항생제와의 싸움은 끝났지만 아직 컨디션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어제는 하루 종일 누워서 <그것이 알고 싶다> 재방송을 봤다. 어떤 법률가 집안의 아들(그 역시 변호사)이 이혼 소송 중인 배우자를 살해하고 '우발적인 범행'이라 주장하는 방송이었다. 방송 첫 부분을 볼 때는 교제폭력사건에 대한 방송이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방송을 보면서 이른바 '법을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 같은 것이 생겼다.


법조인이라면 분명 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재판 절차 등에 대한 지식이 해박할 것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건 직업이니 당연하다. 법을 잘 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법조인이 혹여나 어떤 범죄의 용의자가 되는 과정부터 불신은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처음 조사과정부터 경찰과 검찰도 사람이다 보니 '법조인이 과연 그랬을 까?'라는 선입견이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용의자가 된 그 사람도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이용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겠지. 그 주장이 혹여 생소하고 의아하더라도 경찰은 어쩌면 '내가 모르는 게 있었나?'싶기도 하고 '괜히 법조인에게 잘못 걸리면 나중에 소송할까 무서워서' 최대한 그의 요구에 따르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다. 어쩌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다. 법조인이든 대통령이든,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어쨌든 범죄를 저질렀다면 우리가 함께 만든 규칙과 법에 따라 조사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모든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법을 잘 안다.'는 것은 그저 전반적인 절차와 지식을 알고 나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적인 선입견과 편견을 애써 배제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부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본 것들이 너무 많아 '당연하지.'라는 말이 씁쓸하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 이른바 '법잘알'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수법은 공판과 재판을 미루는 방법이다. 나경원의원이 대표적인 예인데, 판사출신인 그녀는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사안이 중대해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정말 중요한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재판을 미뤘고, 그 과정에 총선에 나와 또다시 당선되었다. 지난 임기에 대한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총선을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더 신기한 일은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고, 더 신기한 일은 현재 5년째 인데도 그 재판이 1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판은커녕 심리 혹은 조사 자체를 미루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어떻게 법적으로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현재 용산에 거주 중인 윤 모 씨 역시 체포영장을 거부하고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실하게 재판을 열고, 피고와 원고의 의견을 모두 들은 뒤에 허무하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들에게도 분노했지만, 이런 일을 듣고 나면 '그나마' 그들은 일을 쌓아두지 않고 제때제때 하는구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자동재생으로 계속 이어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캐나다의 전 모 씨 일화로 나를 이끌었다. 전 모 씨는 캐나다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유학원 및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신매매 및 성매매 조직의 수장이라는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그렇게 감옥에 들어간 그는, 총 32개월 동안 수감되었지만 재판이 열리지 않아서 검사와 판사에게 그 어떤 항변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누구도 신청하지도 않은 보석이 허가되면서 출소하게 되었다. 보석으로 출소했지만 재판에는 참석해야 하기에 알려준 일정에 법원에 출석하였는데, 자신의 재판은 이미 끝났고 해당 사건도 종결되었음을 알게 된다. 정확하게 어떤 범죄에 내가 어떤 일을 했고, 그 증거와 항변의 자료를 만들어 판사에게 설명이든 항변이든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어떤 절차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끝난 것이다. 명예도 명예지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그분은 현재 민사소송을 통해 이런 부분을 규명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법을 잘 알고, 그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과 그런 조직들을 상대로 진실을 규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법을 잘 알기에, 돌발적인 상황들 속에서 나의 (법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과 법을 악용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재판 날짜를 미뤄달라 요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보통 재판이 이뤄지는 요일과 시간이 꼭 근무시간과 겹치기 마련이니 병원진료등 생업이든 서로의 양해를 구해 다른 날짜를 잡는 것은 너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갖가지 서류를 만들어 어떻게든 재판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어쩌면 가중처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반성도 없고 법적 책임을 그저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관련 처벌 조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법을 잘 아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법을 잘 아는 것과 법을 악용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스스로 인지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우리 같은 일개 시민보다는 판사님이 아시는 게 더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가능성'에 현혹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