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오요안나 님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속상한 일이었다.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을 잘 모르지만 인스타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카드뉴스가 떠서 알고 있던 일이었는데, 혹시나 하던 일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왔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 아직 알 수 없으니 나는 굳이 첨언하지 않으려고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이른바 "왕따"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의로운 척 여기저기 나서는 사람들과 이 한국의 분위기가 너무 불편하다. <더 글로리>가 방영되었을 때 나는 간간히 짧게 뜨는 인스타 릴스나 숏폼을 볼 수도 없었고 솔직히 그 시기에 sns를 잠시 안 했던 것 같다. 드라마 내용을 짧게나마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문동은을 응원하는 듯 박연진을 심판하는 듯 '참교육론자'들과 '복수론자'들이 낄낄거리는 영상을 마주하는 것도 솔직히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창 시절에 문동은만큼 물리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담한 적도 없었던 게 아닌, 그런 내 경험이 꽤 평범하고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역시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다들 찐따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물리적으로 의자를 던진 것도 아니고 고데기로 화상을 입힌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학교 폭력'이 되냐고 항변하는 학창 시절을 지냈을 것만 같아 이질감이 든다.
왕따였던 시절이 너무 처참하고 괴로워서 괴롭힘에 가담하기도 해 봤고 어설프게 가담하다가 다시 왕따가 된 적도 있다. 가담하게 되었을 때는 자괴감도 느꼈지만 내가 그다음일까 싶은 불안함이 더 컸고, 나이가 들고 또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되면서 불안함이 낮아지니까 인간관계에 별 생각 없어지기도 했다. 평화주의자인척 왕따를 챙겨주면서 다 같이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부했을 때, 왕따였던 그 친구에게 손절을 당하며 위선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 도합 12년의 시간들에 대해서 "나도 그들도 모두 너무 어렸고, 뭘 몰랐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고.." 이런 식으로 애써 외면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상처들이 이런 일이 터지면 울컥울컥 올라온다.
솔직히 지금 학교에서도 (나도 남도 애써 돌려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왕따'다. 어릴 때부터 행동도 느리고 그러다가 뭔가 꽂히면 말이 많아지고 눈치도 없고 해서 친구가 없는 것은 꽤 익숙한 일이었는데, 사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위치(왕따)'가 될 거란 생각은 사실 못했기 때문에 조금 속상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 특유의 냉담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그냥 내 자격지심일 거라고 그저 비슷한 환경에서 상처가 불쑥 올라와서 그런 거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도 힘들어서 상담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서 계속 마음을 다스리다가도 꼭 비아냥거리는 말들과 조소를 보이며 나에게 "이거 네 상처 아니고 현실 맞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내려앉곤 했다. 불안하고 속상하지만 그러나 난 이제 어른이니까. 성인이니까. 혹시라도 물리적인 폭력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 경찰을 부를 수 있고 또 나를 지켜줄 근로기준법이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어디까지가 상처인지 어디서부터 폭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꾸 마음은 멍이 들고, 판사들이 인용할 만한 직접 증거는 없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지금은 성인이 되었지만, 학교가 회사로 바뀐 것뿐 딱히 달라진 것 없다는 현실도 큰 벽처럼 느껴진다. 사방이 막힌 통로가 없는 벽에 둘러싸인 느낌. 내가 성인이고 회사원이지만 나는 사람이고 옆자리에 앉은 나의 동료가 나의 '근로 환경'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몰라 주는 것 같다. 아마도 그 어떤 녹취록도 카톡 캡쳐본도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할 씁쓸한 결과를 가져올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더 속상한 마음인데, 또 왕따,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에 꽂힌 사람들이 마치 정의로운 투사가 되어 '가해자 색출과 연예계 퇴장'을 요구하는 것도 너무 속상하다. 그런 것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경찰이고 사법부인데, 물론 우리의 법감정과 다르기에 늘 분노를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마녀사냥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그저 속상하기만 하다. 너무 속상한 일이다. 죽어야 알아주는 세상도, 죽어도 모르는 누군가도.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이 시간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