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꾸 힘든 이유

선생님, 거기서는 즐겁고 행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여기는 여전하네요.

by 박다은

학교에서 왕따인 건 뭐 일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실 그런 '타격감'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문득문득 호르몬이나 날씨 때문에 울컥할 때도 있고 그런 비아냥과 조소 섞인 말을 들은 날에 부들 거리면서 화내고 욕하고 하지만 이내 평소와 비슷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늘 애매한 외톨이, 왕따, 잘 못 어울리는, 외곬, 그런 위치에 있어서 그런가 싶다. 애초에 외향적인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왕따는 조금 힘들었다. 심지어 총회에서 저격당해 공개적으로 해명도 해야 했고 (당시 내가 총무였는데 학과 회식비를 1차만 정산하고 2차부터는 참석자들에게 더치 하기로 하겠다는 나의 결정에 선배들이 극대노하였기 때문임. 그게 진짜 이유였음) 뭐 이런저런 일들로 "우리 학교 분위기를 모르네"라며 은근히 학부 무시하기 등등 (회비를 문제 삼을 때도 대놓고 그렇게 얘기함. 진짜 임. 90년대 아님.) 별별 일이 다 있고, 또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 욕하고 트집 잡는 나발이 들도 있었기 때문에 진짜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왕따 생활에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 것은 박샘이 석사로 입학한 다음이었다. 나는 그 이유도 정확하게 몰랐고 그냥 "요즘 나발이 들 바쁜가 보네, 살 것 같네"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욕하던 나발이들이 갑자기 나에게 친한 척을 하면서 "박샘을 좀 따로 불러서 가르치라고" 하기에 그 때야 상황파악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제일 연차가 높은 박사 과정생이었기 때문에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그저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은 그들의 계략을 왕따 경력 20년 차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왕따와 왕따를 싸움 붙이는 "연진이 들"의 얕은수에 어리석게 당한 과거가 많아 이번엔 절대로 정신 차리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 어린 친구가 내가 당한 것들을 똑같이 당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서 몇 번이고 개인톡을 해볼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저 적당한 타이밍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빌었던 것 같다.


그러다 한 수업에서 그와 만났다. 드디어. 반면교사라고 해야 하나 거울치료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도 알 것도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워낙 외향적인 성격인 것 같았고 학생회장을 했을 법한 느낌의 친구였다. 수업을 같이 들으며 안면을 텄으니 자연스럽게 오며 가며 인사도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선생님은 제 말을 잘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아니 오해 없이요. 그래서 감사했어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굳이 말을 덧붙인 것도 오해 없이 얘기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그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냥 말을 덧붙였다. "오해하는 사람들을 맘에 두지 말아요. 오해하라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나는 수료 후 제주도로 내려갔고, 그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꼭 대학원에서의 일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을 것이고 고인이 선택한 일이니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추측하고 넘겨짚을 일이 아니다. 그저.. 가끔씩 이따금씩 생각나고 좀 더 얘기해 볼 걸 약간 후회스럽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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