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서,, 소신발언

논문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쓸 사람의 소신 발언..

by 박다은


청문회만 시작하면, <논문 표절>에 대한 얘기가 자꾸 나온다. 내가 생각할 때, 교수 임용도 아니고 정치인의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에 대한 내용이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다. 먼저, 논문에 인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표절에 대한 근거도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력이 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약간의 관용적인 여론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메르켈 총리가 임용했던 모 장관이 박사 논문 표절 논란이 일자, 메르켈 총리는 “내가 연구조교를 뽑은 것이 아니라 장관을 뽑은 건데”라는 말을 했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시민도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여론과 반론 사이에 ‘논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먼저 설명한 것과 같이, 인용과 표절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세부 기준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경우 6음절 이상 똑같은 문장이 있는 경우를 표절로 간주하고 있는데, "—-에 대해 정부는 긍정적인 발표를 공식화했습니다." 같이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말들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도 분명 계속될 것 같지만 이런 경우를 표절로 간주하기 때문에 10% 정도만 허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세부적인 기준은 모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연구 윤리’ 혹은 ‘인용’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 큰 틀은 전혀 변함이 없다. 아마도 논문과 학술서적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계속되었던 것 같은데, 그 기준은 ‘선행연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다. 논문의 특성상 어떤 배경이 없이 독창적으로 혼자 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여러 선행 연구들에 기대어 ‘나의 논문’이 완성된다. 따라서 감사와 존경을 담아 인용표기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예를 들자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안익태, 미상) 이렇게 기존 연구를 표시하면서 읽는 사람들이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애국가의 작곡가가 안익태로 알려진 배경에는 2가지 학설이 있다(배경논문, 1999).라고 표기하여 선행 연구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논문과 이 저작에 기대어 저의 논문이 ‘근본 없이’ 써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학술적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학술적 글쓰기 방식인 것이다. 간혹 직접 인용도 있는데, A라는 사람이 특정 개념에 대한 표현을 ‘별과 우주의 관계‘라고 정의했는데 내가 그것에 매우 동의하거나, 혹은 많이 통용되는 경우에 '별과 우주의 관계(A, 2000)'라고 인용표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설명한 인용 방식도 내 분야에서만 그렇지, 인용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세부 기준은 학계별로 아직 논의 중인 것으로 보인다. 세계 공용어처럼 ‘세부적인 공식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기에 이렇다 할 원칙을 내세우기 애매한 학계의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간다.


논문 표절 검사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검증에 도입된 것 역시 상당히 최근 일이라, 이전에 학위를 받았던 사람들의 논문은 계속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내가 석사학위를 제출할 때 이런 규정이 처음 생겼는데, 4% 미만(기억이 가물가물)이면 학위를 신청할 수 있고 그 이상이면 졸업이 유예되어 논문을 다시 써야 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도 비교할 수 있는 비교 데이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의 단행본들과 대조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이것은 내 경험인데, 외국 논문에 대한 선행연구에 대한 내용을 쓰다가 이 정도면 표절율이 얼마나 나오려나? 싶어서 돌려보니 0%가 나왔던 것이다. 아마도 영어를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영어 논문을 내 나름대로 번역해서 윤문 했기에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배운 연구 윤리를 기준으로 당시의 글은 상당 부분 표절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수치보다 나를 믿고 다시 논문을 다시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는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렇게 엄격하게 하는 것이 맞고, 정치인들에게 표절 논란은 정말 가혹한 것일까? 사실 나 또한 김건희 여사의 박사논문 정도(모든 것을 붙여 넣기 함)만 학위 취소할 수준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정치인과 연예인들의 논문 표절 논란은. 좀 가혹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학위 논문‘을 썼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모든 것을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가 믿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편법’을 써왔던 사람의 ‘자산 신고’는 믿을 수 있는가? 특히 정치인은 시민을 대신하여 일하는 사람인데, 과연 우리는 그의 '도구'가 아니라는 보장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과 학위논문이 모두 자신의 정치 인생을 위한 ‘과정’이자 ‘도구’라고 생각했다면, 그 역시 성실하게 임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런 의문이 든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윤리’는 상당 부분 ‘개인의 양심’에 기대어 있다. 세부적인 규칙들을 만들어서 행동에 제약이 생기게끔 하는 것보다 ‘학위 논문 작성 과정’에서 인간의 양심과 윤리가 드러나기에 너무 세부적인 규칙은 아마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연구 윤리’라는 큰 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가치이다.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란 말도 있다. 그만큼 내밀한 무언가, 나의 가치, 나의 양심, 윤리 등 상당한 고민 끝에 적어가는 논문이 일반 사람들 눈에도 ‘표절 투성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논리일 것이고,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응당한 민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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