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엄마를 존중하기.
엄마를 떠나 친구 집으로 피난을 왔다. 에어컨을 찾아 마음이 편한 곳을 찾아서 생존을 위해 짐을 쌌다. 일주일정도 친구 집에서 지낸다고 말을 하니 엄마는 또 비아냥 거렸다. 짐을 싸고 오래 비워둘 내 방을 청소하면서 문득 "엄마는 나에게 수치심을 주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전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수능이 끝나고 친한 친구들의 학교에 방문해서 같이 밥 먹고 노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화여대에서 재밌게 놀고 집에 돌아와서 "이대 진짜 좋더라"라고 부러움이 섞인 말을 했었다. 솔직히 지금은 상권이 조금 죽었지만 그때만 해도 진짜 '대학가'같은 느낌이었고 내부 시설도 너무 좋아서 너무 부러웠고 그 마음을 그냥 별생각 없이 말로 뱉은 거였는데,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도 없어? 남의 학교 앞에 가서 놀게?"
내가 이화여대를 떨어지고 다른 학교에 간 거라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지만 나의 점수는 턱없이 모자라서 지원해보지도 못하는 성적이었는데 자존심이라니? 그냥 조금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만 늘 엄마는 욕심이 없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나를 싫어했다. 그저 의욕이 없어 보이는 자식이 걱정이라 그랬나 싶었는데, 이제와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저 별 것 아닌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자격지심이 없는 박다은'을 그저 혐오했던 것 같다. 수치와 자격지심, 패배감이 성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그저 그 시대의 어른이라며 이해하려고 해도 집도 절도 부모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구멍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필 이런 엄마에게 태어난 나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엄마를 증오하는 단계는 끝난 것 같다.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란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견하다는 마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성품을 지키려는 나의 고집' 또한 대단했구나, 부모님 입장에서는 힘들었을 법도 하다는 이해도 포함되는 것 같다. 그래, 힘들었겠지. 내가 열 달이나 품어 힘들게 낳은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아마도 만나자마자 그저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나를 보면서 엄마도 꽤나 힘들었을 것이라 잠깐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용서는 할 수 없지만, 그저 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하기로"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한 나의 관심을 더욱더 줄여가기로 선택했다.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의 좋은 점과 나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 주기로 했다.
'엄마 보다' 더 큰 사랑과 지지를 주는 친구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