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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taetae Jul 07. 2023

제주 올레_3

운동량의 법칙

성산 아랫녘을 걸었다. 어제 못다 한 1-1코스와 2코스. 20km가 조금 넘는 여정이었다. 역시나 제주는 좋았다. 나는 바람에 숨죽였고 바람에 맞추어 춤추는 자연과 호흡했다. 특히 성산일출봉의 늠름한 자태는 매번 나를 놀라게 한다. 10번도 넘었다. 그 푸르디푸른 풀들은 나로 하여금 화산을 떠올리게, 기나긴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성산을 넘어 고성에서 뜨끈한 곰탕을 먹고 있을 때였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장님은 내게 금방 그칠 테니 천천히 가라 하셨다. 그러나 지체할 수 없었다. 10km가 넘게 남아 있었다. 출발해야 했다.
  하늘에게 야속했다. 어제 날씨는 '매우' 맑았다. 따가울 정도의 햇빛이 쏘아대던 날이었다. 물놀이용 선크림을 발라도 30분이면 지워지기 일쑤였다. 제발 비 와라, 기도했다. 그리고 오늘 비가 정말 왔다. 당연히 후회했다.



  비를 맞고 젖는 건 괜찮았다. 어차피 더워도 젖는다. 그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비 오는 날 숲 속 나무들에게 둘러싸여 누군가 끊임없이 내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나름 괜찮다. 진짜 문제는 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자기기가 가득한 가방은 절대 젖으면 안 된다. 나는 정자가 나올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어제의 기도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며 다시 생각했다. 아, 내일은 제발 맑아라.

  제주는 바람이 잦고, 강하다. 그냥 계속 불어온다. 아마 도시 사람은 이를 두어 시원하다 말할 것이다. 계속 더 불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태어난 이래 이 강하고 짠 바람을 계속 맞아야 하는 존재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해안의 식물들이다.



  해안의 식물들은 다양한 자세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낸다. 마치 고공점프 후의 발레리나처럼. 유연해야 한다. 뻣뻣함 또는 강직함은 죽음이다. 바람이 분다면 누워야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 또한 지켜야 한다.
  꺾일 듯해도 꺾이지 않는다. 뽑힐 듯해도 뽑히지 않는다. 유연할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그것은 아마 온실 속 화초에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말일 것이다. 온실이 온 우주니깐. 그럴 필요 없다.



  자신을 지키는 힘은 어찌 보면 타인을 제대로 보는 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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