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를 걸었다. 그리고 종달을 걸었다. 30km쯤 되는 이 길은, 내가 서 있는 곳이 제주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제주도에 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그러나 제주의 길과 오름은 변하지 않았다. 돌도, 바람도, 햇살도. 물론 미시적 혹은 거시적 꿈틀거림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변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제주의 담장을 자주 마주한다. 구멍이 송송난 현무암 뭉치들. 높이는 대부분 무릎 정도다. 집이나 밭이나 대부분 이런 모양새다. 흔히들 이를 구시대 제주도민의 '착함(신뢰)'으로 연결 짓고 한다. 남들은 대문에 온갖 고리를 걸든지 담장을 높게 올려 침입을 방지하는데, 제주도는 고작 대문에 나무를 걸치는 게 다이고, 심지어 밭 담장에는 문조차 없기에. 이 얼마나 신뢰적인가.
그런데 문득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도 못 믿겠고, 가족 친구 이웃집 그리고 지나가는 다른 동네 사람은 더더욱 못 믿겠는데 굳이 제주도라고 믿었을까 하는. 따지고 보면 6.25 때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는 육지의 농어촌 주민들과 제주도민은 인프라 측면에서 그리 차이가 없지 않은가. 평생 살면서 제주도를, 또는 자신이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람도 엄청 많았다는데.
그러며 너무 자연스러워 그냥 지나쳤던, '밭'을 둘러싼 담장을 생각했다. 육지에도 밭에 담장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어디선가 불어온 경쾌한 바람이 내 머리를 스쳤다. 아, 어쩌면 바람을 막기 위해 담장을 세웠을 수도 있겠구나. 그것도 낮게 낮게.
한편, 시작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제주도에 오래 사신 듯한 할망이었다. 처음 뵈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대뜸 욕을 하셨다. 나는 맞추어 호응했다-사실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대충 정류장이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버스가 금방 왔다. 버스를 타니 무언가 달라진 듯했다. '선크림이 잘 안 발려있다고 말하셨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