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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21. 2017

내성적인 성격의 불편함

사람들은 말없는이를 구성원의 일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정말 뻘쭘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메뉴판은 3개가 나왔다. 2인 1메뉴판을 봐야하는 상황이였다. 나는 앞에 앉은 A님과 함께 메뉴판을 봤다. 무엇을 고를지 메뉴판을 함께 읽어내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앞에 앉아있던 A님이 옆사람에게 몸을 획~ 틀어서 옆사람과 메뉴판을 함께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저 메뉴판에 다른 메뉴가 적혔나?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니었다. 분명히 같은 메뉴판이었다. A님의 행동을 나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말없는 사람이랑은 메뉴판도 같이 보기 싫은건가?

나는 3명이상이 모였을 때 이야기를 잘 하지않는다. 그들의 대화에 끼이고 싶어도 무슨이야기를 해야할지, 또 어떤틈에 끼어들어야할지 잘몰라서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무리에서 혼자 따돌려지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말없는 사람을 자신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게 스트레스였으며, 반복되는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_사건 A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기 초에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고, 그 친구의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친구의 친구들은 4명이였고, 그 5명은 자주 모여서 노는 한 무리인 듯 했다. 나는 그 무리들과 함께 있었지만 이야기에 끼어들어 수 가 없었다. 나도 똑같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방법을 몰라서 어떤 말을해야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더니 친구들이 물었다. "너.. 우리랑 계속 같이 놀꺼야?"


_사건B

사건은 대학생 때도 반복된다.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존재감없고 친구없는 사람으로 남기는 싫어서 필사적으로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대학 OT때 부터 벌써 다른 친구들은 자신이 놀 만한 사람을 찾은 듯 보였다. 나만 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그 때, 마침 나는 왠지 혼자있는듯한 친구를 발견했다. 그 친구에게 나는 먼저 다가갔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친구가 생기나보다 했다. 그 기쁨도 잠시.. 그 친구에게는 다른 무리의 친구들이 다가왔다. 다행히 나와 그친구는 그 무리에 흡수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무리들과 있을때 나는 여전히 말없는 사람이였다. 급기야 그 무리의 일원 중 한명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우리랑 계속 같이 놀꺼야?" 


_사건C

그런식으로 물어보는 친구들의 물음들 속에서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응, 나 너희랑 놀꺼야."

그래서 항상 나에겐 함께 노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깊은관계로 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항상 무리속에서 겉돌았다. 

 대학 어느날, 학과에서 단체로 서울의 전시회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가야하는 상황.

보통 버스는 2명이 앉는 좌석이다. 그러면 내 옆에 누군가는 앉아야한다. 친구들은 4시간 동안 말없는 나와 재미없게 가는것이 싫은지 모두들 나와 앉기 싫은 눈치였다. 무리속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_사건D

중학생때였다. 나는 함께노는 무리가 8명정도 있었다. 어느 월요일, 학교에 가보니 친구들이 모두 같은 양말을 신고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분명 나한테 한마디 말도없이 주말에 자기들끼리 시내에 가서 양말을 맞췄구만..." 그것이 어린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다. 어떤 무리속에 속해있다보니 계속 겉돌게 되고 그 소외감을 느끼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지나치게 커졌다.. 그래서 나는 이 무리들과 헤어지려고 3장의 긴 편지를 썼다. 대략 이야기 하자면, 너희들은 좋은 친구지만 내가 그 무리속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딜수가 없으니 나는 이 무리에서 나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 내용에는 양말사건도 있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친구들이 속마음을 이야기 했다. "너가 우리랑 같이 가는것을 싫어할 줄 알았어..."



어릴 때는 이러한 친구들의 행동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라면, 나를 좀 더 신경써줄 수 있지 않을까. 왜 다른 친구들에게만 말을걸어줄까..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깨달았다. 다가가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스스로 개선해보려 많은 노력, 시도들이 있었다. 나도 먼저 다가가보려 수많은 노력을 해보았다. 먼저 대화속에 끼어들어보기도하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보려 이야기도 해봤다. 상담센터를 찾아가서 고민도 나눠보았다. 이런 노력속에 나는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다른사람이 인정해 줄 만큼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구성원 속에서 존재감없고 조용한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나의 노력은 눈꼽만큼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서러웠다.



나는 말이 없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왜 사람들은 말없는 이를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말이 없는것은 큰 잘못일까?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이 사회속에서 버려져야하는 사람인가?

나는 장애인도 아니고, 정신상태와 육신이 멀쩡하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있다. 다른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준 적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속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나를 여태껏 그런식으로 취급해왔다. 나는 내 자신의 고유 성질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나야만 하는걸까.. 성격의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는 정상인처럼 살기위해 수많은 상처들을 견뎌내며 아등바등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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