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오늘 들은 말이기도 하며, 20년간 나를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며 괴롭히고 있는 말이다.
'안녕하세요' 한 마디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타인에게 말을 붙이는것에 공포증이 있던 나에겐 그 한마디를 못하는게 평생의 괴로움이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인사를 먼저 안한다고 꾸중을 듣는건 기본. 인사를 안했다고 머리를 때리는 선생님 때문에 복도에서 마주치면 돌아가기 일쑤. 대학에서는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선배들이 군기잡는다고 인사안한 학생들을 불러내 혼내는 분위기 땜에 학교가 죽을만큼 가기 싫었고, 알바할 때는 싹싹하지 못한 성격과 작은 목소리의 소극적인 인사 때문에 인사를 안한다는 오해가 생겨 짤리기도 했다. 회사에서 인턴할 때는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자주 머뭇거리다가 따로 불려가 꾸중을 듣고선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갔다.
인사를 먼저 건내지 못하는 서툰 성격이 돈을 버는 생계 문제와 준비해왔던 꿈을 위협했을 땐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고 버림받은 것 처럼 절망적이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갔다.
표정을 밝게해라. 너무 조용하니까 말좀 해라.
문제는 인사 뿐만이 아니었다. 표정이 밝지 못하고 말수가 적은 내향적 성격이 서투른 인사와 겹쳐지면서 나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그리 좋지 않게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성격을 바꾸라 말했다. 어떤 이는 나의 미래가 어두울꺼라 걱정했고, 어떤 이는 아직 미혼이라 태어나지도 않은 나의 아이가 나의 성격을 닮을까 걱정했다. 너무 말이 없으니 말좀하고 사람들과 좀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그렇게 혼자있으면 발전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말끝에는 너를 위한거라 했다.
20년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마다 되돌이표처럼 돌아오는 나의 태도와 성격에 대한 부정적 말들, 바뀌라는 지적들... 사람들이 툭툭 내던지는 부정적 말들이 내 마음 한 켠에 하나 둘 쌓여갔고 그동안 어두운 말만 들었던 나는 나의 미래를 어둡게 색칠할 수 밖에 없었다. 성격을 바꾸지 않으면 나의 미래는 너무나 불행해질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고, 누구도 나를 채용해주지 않을 것 같았으며, 모두가 나의 이런면을 싫어해서 연애도 결혼도 못할 것만 같았다. 실패한 인생을 살 것 같았다. 싹싹하고 밝은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너무나도 바뀌고 싶었다. 하지만 성격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것 조차 두려운 나에게 눈을 마주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는것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왜 타인을 위해 바뀌어야 하지?
문득 이 생각이 든 것은 해외에서 일하던 때였다.
나는 정말 성격을 바꾸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하고 싶었다. 해외에서 살아보면 성격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 반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해외취업을 했었다. 그 시기의 나는 대학 졸업 후 2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안면을 튼 사람과 일대일로 마주친 상황에서는 인사도 먼저하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정도로 변했다.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생애 처음 낸 이력서가 한방에 붙었고 업무를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사회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붙고 있었다. 어둡기만 했던 미래를 조금씩 밝게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던 시기였다. 여기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나는 해외취업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희망을 줄 것 같았던 해외취업은 오히려 절망을 안겨주었다. 해외에 와서까지 상사로부터 "밝게 좀 웃어봐라. 말 좀 해라." 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 동안 외향적으로 변하기 위해 용기를 냈던 순간들, 노력들이 모두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먼 타국까지 왔는데 고질병 같이 반복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살길을 찾아 온 낯선 곳에서 낭떠러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날 밤,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 처음엔 나를 향한 원망의 눈물이었다. '난 왜 노력해도 안될까..' 그러다 증오의 마음이 들었다. '저 사람들이 뭔대 나한테 바꿔라 말라지?' 그 물음을 던진 순간, 눈물이 멈추면서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누굴 위한 노력인거지? 내가 왜 저 사람들을 위해 바뀌어야하지?'
그랬다. 외향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채찍질을 열심히 하며 달리던 내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리자 그제서야 이것이 누구를 위한 채찍질인지 들여다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외향적으로 바뀌려 했던 이유는 타인이 나의 모습이 싫다 하니까,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넌 너무 내성적이야, 활발하게 바뀌어라." 라는 말을 매년 수 없이 듣다 보니 타인이 뱉은 말의 노예가 되어 정말 바뀌어야만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내가 타인을 위해 나의 고유성질까지 버리고 환골탈태해야하는 것인지... 바꿀수 없는 본질을 바꾸려 애써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태도, 성격, 외모등이 있다. 그것을 단지 선호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일방적 폭행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행동을 강요하곤 한다. "어리니까 나한테 먼저 인사해라.", "말이 없으니까 말좀해라", "표정 좀 밝게 해라.", "성격을 고쳐라.",
"살빼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우리가 이런 말들을 타인에게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닐까. 인사를 받고 싶은 욕심, 나한테 말을 살갑게 해줬으면 하는 욕심, 밝은 표정을 보고싶은 욕심, 보기좋은 몸매를 보고 싶은 욕심... 그것은 말하는 이에겐 단순한 욕망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는 타인에겐 강요가 되고 그 사람이 가진 고유 성질을 버리게 만들어 정체성 혼란과 정신적 고통을 주게 될 수도 있다. 타인의 태도를 나의 관점에 맞춰 바꾸라 강요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여자니까 집안일을 해라.", "남자니까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라."라는 말이 이 시대에 성립될 수 없는 금기어인것 처럼 말이다.
괜찮아,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뿐이야.
인사를 잘 못하고 살갑지 못한 내향적인 사람은 당신이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인사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마음 한 켠에 있다. 다만, 그놈의 낯가림 땜에 서툴고, 타이밍을 잘 놓칠 뿐이다. 인사를 해야할 것 같은 상황인데 용기가 부족해서 어물쩡 거리다 결국 못하고 말면, 나는 스스로를 비난했었다. 그랬을 때 결국 고통받고 자존감 상실하는 것은 나였다. 그렇게 자기비난과 자존감하락이 반복된 실패로 쌓이다 보면 악순환만 일어날 뿐이다. 그럴 때 비난을 멈추고 이 말을 꺼내어 스스로를 다독인다. "괜찮아.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뿐이야. 넌 잘못이 없어. 다음에 여유가 생겼을때 해도 괜찮아. 다 괜찮아." 비록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이지만, 비난만 듣다가 괜찮다는 말을 떠올리면 그새 툭 위로가 된다.
혹시나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사회분위기 때문에 외향적으로 바꾸려는 분들이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의 모습을 아껴주라고. 이런 성격으로 태어난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강요하려는, 성격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배려가 없는 사회가 문제라고. 그러니까 조용해도 괜찮다고. 떨려서 말을 못해도 괜찮다고. 인사를 못해도 여유가 생길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