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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an 04. 2019

조직이 주는 고통속에서 살아가기

소수 성격자가 살아가기 힘든 사회.

처음엔 관심으로 다가온다.

서로 알아간다.

상대방이 내가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상대방은 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호감도가 떨어진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나와 멀리 떨어져 걷는다. 나와 함께 단둘이 무언가 하길 기피한다.

다른사람에게는 환한 말로 대하면서 나에게만 유독 그렇지 않다.

서로 어색한사이가 된다. 연락이 끊긴다.


이런 일상이 15년째 반복중이다.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이 주는 상처. 맞딱드리기 싫은 반복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당연하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나를 챙기지 않고 먼저 가버리고 자기들 끼리 수다를 떠는 그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내 자신을 자책한다는 것이다.

넌 왜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니…?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단지, 내 성격이 하하호호 떠드는 그들과 맞지 않을 뿐이다. 나는 타인의 삶보다 내 자신에게 집중할 뿐이다. 이 사회에 타인과 잘 어울리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런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는게 조금 힘들 뿐이다. 그런데 자꾸만 큰 잘못을 느낀다.

조직속에서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조직속에서 다르게 행동한 사람이 혼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고 또 내가 직접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속에 살아가지만 물속의 한방울 기름처럼 분리되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그래서 매우 불안하고 내가 잘못된 것 처럼 느껴진다.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종종 나에게 고통을 준다.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보다 물질을 추구하는 사람 또한 결국 행복하기 위해 물질을 원한다. 고로 인간은 행복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조직속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이대로 그냥 살 수는 없다. 무엇인가 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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