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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un 22. 2021

불안을 느끼는 때.

선택적 함구증은 이럴 때 불안을 느낀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의 일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사회생활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기록하기위해 씁니다.





학과 교수님께서 대학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를 하고 계신다.

이미 종강은 했지만, 학부생과 몇 대학원생들까지 시간이 날 때 교수님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마음과 다르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참석한다면 어떤 말로서 그들에게 다가가야할까. 어떤 말로 그들을 위로해야할까. 

어떻게 예의바른 행동을 취해야할까. 헤어질 때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태도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나는 그러한 태도들을 잘 취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어떤 이유에서 이 곳을 찾아왔고 나도 동참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나를 평가내릴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불편하고 불안할 것 같아서.

그런 불안한 자리에서 불안이란 감정이 나를 집어삼킬것만 같아서.

'스스로 잘 헤쳐나가지 못했다'라거나 '나의 이런 행동에 상대방이 나를 예의없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들에 뒤덮혀 집에 돌아와서 나를 자책할 것 같아서.

(나는 내 행동이 예의없게 보일까봐서 정말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때 내가 제대로 반응을 못해주었거나, 내가 뭔가를 말씀드려야하는 상황일때 표현력 부족으로 내 얘기만 딱잘라 말하고 그칠 때, 내가 챙겨줘야하는 상황인데 챙겨주지 못하거나, 인사를 드리고 가야하는데 그럴 용기가 부족하여 후다닥 나만 자리를 빠져나왔을 때.. 등등)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집에 숨어서 지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교수님을 찾아가 응원을 드리고 몇시간씩 딱딱한 바닥에 앉아 고생할 때.

나는 집에 편하게 있었다. 너무 죄책감이 든다. 이미 나는 예의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곳에 가서도 예의없는 사람이 될 것이며, 집에 숨어지내도 예의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 학교에 참여해야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잠시 학교를 갔고, 거기서 같은과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대서 나도 그 동안 교수님께 응원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길래 따라갔다.

혼자 가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었는데, 함께가니까 훨씬 마음이 편했다. 

동참은 못하더라도 얼굴이라도 뵙고 오고 싶었다.

시위현장에 도착했는데, 교수님께서 나를 보더니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무뚝뚝한 그 표정에 나의 마음은 불안으로 뒤덮혔고, 뭐라 말씀을 드려야할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교수님 힘내세요! 이런 빈말처럼 느껴지는 말이 아닌, 더 예의를 갖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모습과 현실의 나는 너무 달랐다. 

교수님의 무뚝뚝한 표정은 마치 나에게 - 저 녀석은 동참하지도 않고 인사만 하고 쌩 가버리네 -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오늘 있었던 일이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든다. 이 괴로움은 오늘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학교측과 협의가 잘 안되었는지, 시위는 더 길어질것 같다고 한다. 

나는 학교 근처에 살고 있음에도, 시위 현장에는 동참하지 못할 것 같다. 

동참하지 못하는 동안 앞으로 계속 들게 될 죄책감의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너무 괴롭다.

학교에 갈 때 마다, 시위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마다, 감당해야할 죄책감..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시위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편한 자리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올바른 것인지,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없는지 수백번 되뇌이는 불안한 감정에 휩쓸릴 것이다.

참여를 하든 안하든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안한 감정에 휩쓸리는가.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좋지 않게 볼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첫 만남에서부터 말 수도 없고, 인사도 잘 못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기란 어려운게 사실이니까.

대부분 나를 호감있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산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잃고 산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선입견, 나쁜 루머를 알고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그 불편함의 무게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생각 속에서는 마치 그럴 것 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보다는 나의 첫 인상을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오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고있는 것만 같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행동과 말을 취할 수 있을까. 계속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이게 되고 그것은 불안을 촉발하는 원인이 된다. 



세상에서 나를 지우고싶다.

이런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살아가야하고, 또 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글쓰기를 한다.

감정을 토해내고 또 글로서 정리하고,

댓글과 공감으로 위로도 받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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