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스트레스와 육아 스트레스가 합쳐진다면
결혼하고 3년이 지났다.
서른 중반 기혼 여성인 나의 요즘 최대 고민거리는 임신에 대한 것이다.
나이는 자꾸만 들어가고 아이를 가지려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가지는 것이 좋으니 서둘러야하는데.. 아이를 가지는 것은 분명 행복해야할 일임에도 나는 그것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회불안장애 때문에 타인과 대화하길 어려워했던 나지만 유독 아이들과는 대화를 곧 잘하곤 했다. 나보다 약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돌봐주는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큰 행복감을 느끼는 나는 분명 아이를 낳으면 잘 돌볼 것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부터 결혼, 임신, 출산을 빨리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단 한번도 딩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 딩크를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시댁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유독 아들을 사랑했고, 결혼으로 그 아들을 쟁취한 나에게 분노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아니꼽게 보셨고, 작은 실수나 부족한 점들을 찾아내어 나를 예의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가족들 앞에서 나를 민망하게 하거나 망신을 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결혼직후부터 지금까지 "결혼해서 내 인생이 망한것 같다"라는 생각을 매년 틈틈이 할 만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특히나 작년의 집들이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건이후 나는 우울감, 공황, 자살충동, PTSD를 겪었다.
결혼 후 처음 마련한 우리의 신혼집 식탁은 사건의 장소가 되었고, 가장 안전해야할 집이 트라우마의 장소가 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집들이 사건은 명백한 시어머니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양심이 있다면 다음 만나게 될 모임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거나, 나에 대한 비난을 자제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너희들이 앞으로 잘해야한다."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누군가 나에게 장난으로 '요리사네~'라는 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시어머니가 "요리사는 무슨. 저번에 밥해놓은것 보니 꼬들꼬들해가지고~". 갑자기 봉변을 맞은 나는 벙쪘고, 그 말에 대처해주는 시댁식구는 남편을 포함하여 아무도 없었다. 이런 말들을 매년 모임마다 듣는 것은 언제쯤 익숙해지는 것일까. 며느리라는 이유로 왜 비난을 받아야하는가. 당신이 죽고나면 당신의 아들 옆에 평생 함께 있어줄, 단 하나뿐인 배우자를 왜 이토록 미워하는 것일까.
이 사건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도저히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임신하면 이런저런 간섭부터 시작할 것이고, 아이를 낳으면 좋은 것은 아빠 닮았고 나쁜 것은 모두 나를 닮았다는 말을 분명. 분명. 분명. 할 것 같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딜까나.. 어쩌면 본능적인 일일 수 있다.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내 몸에 아이를 품는다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거니와, 아이를 위한 좋은 환경도 아니다.
차가운 커피를 먹으면 아이 안생긴다. (임신도 안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을 자유는 나에게 없는가.)
아이 생기면 내가 다 돌봐줄거다. (절대 맡기지 않을 것이다. 맡기면 그것을 명분삼아 무슨말을 할까.)
나중에 배부르게 되면~ (그 앞서나간 생각이 불편하다.)
어머니는 기대를 품고 종종 이런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이상하게 반발심리가 생겨서인지 이런 말씀을 하실 때 마다 오히려 더 갖고싶지 않은 생각이든다. 어머니는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편한 환경을 만들어주시면서, 아이를 원하고 계신다. 굉장히 모순적이다. 시어머니 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 우리 친정엄마, 아빠 모든 가족들이 아이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단 한 사람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매우 싫다.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 한사람이 나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든다.
어떤 날은 내가 이기적인가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모두가 아이를 원하니까. 시어머니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것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Chat GPT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지금 당장 아이를 갖고싶지 않은 심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매우 큰 사건을 겪었으니 잘 회복이 되어서 시어머니를 만나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남편이 대처를 잘 해주어서 안전한 환경이 된다면, 그때는 아이를 가져도 좋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이를 갖지 않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태초의 내 인생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살아보며 깨닫는다.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이제는 그런 선택지가 생길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를 갖지 않아도, 가져도.
사실 잘 살 것같다. 나는 내 일을 매우 사랑하는 여자다. 동시에 아이도 매우 사랑하는 여자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싶은 것은 매우 많지. 석사논문을 마치면 40대에는 박사과정도 하고 싶다. 틈틈이 해외여행 다니며 안가본 나라도 가보고 싶다. 30대에 평생직업을 찾아서 지금 한창 정진하고 있으니, 기술을 더욱 연마하고 배워서 백년가게를 이룰 장인이 되고싶다. 와- 이렇게 쓰고보니 아이를 갖지 않는 인생도 멋있어보인다.
돌봄에 대한 충족은 강아지나 동물로 채울 수 있다. 지금도 유기견을 두 마리나 데려와 살고있고, 파양된 거북이, 유기된 햄스터를 키우고있다. 40대가 넘어서 시댁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여유가 생겨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 남편 동의 하에 입양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다한들 위의 내용들이 변하진 않을 것 같다. 아이를 가지더라도 육아에 매진하는 기간은 10여년 정도이니 일정이 미뤄질 뿐, 분명 나라면 아이를 키우고 나서도 학술이나 일에 정진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이를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은 인생의 풍성함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복작복작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것인가. 그저 나에게 몰두된 인생을 살것인가.
결론적으로, 아이를 가지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맞다.
지금은 그것을 판단할 정신과 마음상태가 아닌 것이다.
상처가 회복되고 어머니의 비난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자유의 시기가 왔을 때,
그 시기가 가임기간 이내라면 아이를 가질 것이고, 가임여성의 시기를 넘었다면 아이를 못가지는거지.
그것은 어쩌면 남편의 노력이나, 인생의 운에 달린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보면 노력보다도 운이 인생을 좌우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글로 정리하고 보니 더욱 마음 속이 깔끔해졌다.
글을 마치며, 그저 서글픈 일은.
10대, 20대에 선택적 함구증으로 우울감과 사회공포증을 겪으며 힘든 삶을 살았던 내가..
이런일들을 극복하자마자..
30대에는 시어머니로부터 불안을 느끼는 삶을 산다는게 참 서글프다. 어떨땐 참 불쌍하다.
나의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일이 많으냐..
일단 오늘의 고민은 이렇게 끝내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