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시댁에서 있었던 일

01 식기세척기 쓰는 며느리가 밉다.

by 다다

아침부터 누군가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늘은 아주 힘든 날이 될 것이라는 복선인 마냥.


설 당일.

친정과 시댁을 하루 만에 모두 방문할 예정이라,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혼자 있을 강아지가 불쌍하여 아침에 산책이라도 시켜 주려고 현관문을 나섰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 목줄을 바짝 당기며 조심스럽게 탑승하고 구석으로 강아지를 몰아넣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서른 중반이 되도록 여태 아주머니란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나이가 있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개를 안고타야하는거 아입니까?”


순간 당황스럽고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강아지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말로 받아쳐야 하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머릿속을 헤매다가 내린 결론은 ‘불편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었고, 그새 엘리베이터는 1층까지 내려와 강아지를 안고 내리는 상황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니 분했다.

목줄을 짧게 하고 구석으로 몰아넣어 어느 정도 에티켓은 지켰다고 생각했다. 소형견이라면 안고 타겠지만 10kg 중형견이라 매번 안기에는 무리다. 불편했다면 ‘강아지 좀 안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정도로 하면 좋았지 않을까. 그 말투는 시비조였다.


내 생각을 당당히 말하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여전히 나는 비난에 약하고, 사람들 앞에서 덜덜 떠는 선택적함구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다.





분을 삭히며 대충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전날 사두었던 부모님께 드릴 과일 세트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먼저 향한 곳은 시댁이었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처가 댁은 다녀왔냐'고 물었고 ‘장인어른이 설 당일에만 집에 계셔서 이따가 처가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가져온 반찬통들을 다시 돌려주는데, 그 반찬통에는 물기가 많았다. 어머니는 오늘 아침에 씻었냐고 물었는데, 남편이 답하길 ‘식기세척기로 했는데 물이 많이 튀었다’라고 했다. 이 두 가지 답변은 시어머니의 분노 트리거가 되어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다.


시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할 일은 많지 않다. 도착하여 이미 만들어진 밥을 차리는 것만 도우면 끝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들을 주방으로 가져다 놓는데 어머니는 화가 난 채로 폭풍같이 설겆이를 하시며 궁시렁대고 계셨다. "둘이 사는데 그거 뭐가 힘들다고 식기세척기를.."

식기세척기로 편하게 일하게 된 내가 미웠나 보다. 순탄히 돌아가던 상황은 디저트를 먹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우리 부부가 사 온 종합 과일 세트에 들어 있던 특정 과일 하나를 꼬집으며 자신들이 먹지 않는 과일을 사 왔다고 핀잔을 주셨다.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고 있잖아, 우리는 이런 거 안 먹는다. 다음부터는 사오지 말아라." 그러면서 너희들이 먹고 가라며 꺼내 오라 하셨다. 그때까지는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과일을 꺼내 자르려는데 어머니는 겉을 둥글게 파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늘 하던 내 방식이 익숙해서 원래 하던 대로 속을 먼저 잘랐다. 그랬더니 갑자기 비꼬는 말투를 던지셨다.


“저봐, 내가 하라는대로 안하지”


옆에서 보던 형님이 "00이가 하는 방법을 잘 안대~" 라고 말렸지만,


“아니, 자기멋대로 하잖아~~!!”


끝에는 큰 소리로 언성을 높이셨다.

그때부터 내 심장은 엄청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뭐지? 또 뭐가 잘못된 거야?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멍청하게도 또다시 다른 사람의 비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


과일상을 차리고 모두가 거실로 모였는데 어머니는 화가 나셨는지 주방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다. 자리에 어머니가 없으니 나는 더욱 편한 마음으로 가족 모임에 잘 녹아들 수 있었다. 형님과 시아버지와 대화를 하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충 돌아갈 시간이 되자, 시어머니께서는 우리들에게 챙겨 주실 음식들을 담아 주시며 나에게 물었다.

"이 반찬 가져갈래?"

"아 괜찮아요, 그 반찬은 잘 안먹어요."

"왜 안먹노?"

"모르겠네요. 꺼내놔도 잘 안 먹더라고요."

(혼잣말로) '밥을 못챙겨먹이니까 저렇게 살이빠졌지..'


여기서 우스운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그 반찬은 남편이 평소에 손을 하나도 대지 않고, 나조차도 손을 잘 안 대는 절임반찬이었다. 둘째, 그 반찬은 풀때기 무침이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찌는 음식이 아니다. 셋째, 남편은 결혼 후 오히려 살이 계속 찌고 있는 상태인데도 어머니는 볼 때마다 살 빠졌다고 난리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참 어이가 없지만, 아들 보낸 허전한 마음을 그렇게 채우시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들도 있다. 음식 챙겨주실 것들을 다 챙기자 갑자기 어머니는 화를 내시며 우리들을 내보내려 하셨다.


"이제 빨리 꺼져라. 오자마자 지 처갓집 가야 한단다."


그 말이 오늘 들었던 말들 중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우리가 먼저 나서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화를 내면서 우리 부부에게 "꺼져라"라는 말까지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오히려 빨리 이 집에서 탈출하게 되어 잘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 처갓집"은 낮잡아 이르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불쾌했다.

그러나 나는 또 바보마냥 한마디도 못하고 어머니 말대로 꺼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으면 현관 앞까지 마중을 나오시는 편이셨지만, 집을 나서는 동안 어머니는 마중 나오지 않으셨고 나도 인사를 드리지 않고 그냥 나서는 꼴이 되었다.


차에 타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나 언제까지 이 집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남편 왈,

"그래도 오늘은 큰 일은 없었잖아. 엄마는 그냥 나한테 화낸 거 아니야?"


남편의 이 한마디가 나를 또 벙찌게 만들었지만 하나씩 설명해 줬다.


"처음에 말한 식기세척기가 문제였어. 내가 편하게 일하는 거 꼴보기 싫으니까 엄마가 화가 났고, 그게 과일 문제까지 이어진 거야. 그리고 '꺼져'는 뭐야. 어떻게 우리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아빠가 설 당일에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시댁 먼저 갔다가 저녁 늦게 우리 집에 간다고 한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나는 설에 우리 아빠 보지도 못해?"


구구절절 설명해야 알아듣는 남편도, 그걸 설명하는 나도 싫다.


나는 왜 불쾌한 상황에서 불쾌하다, 속상하다 말 한마디 못하고 항상 벙쪄있는 것일까.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는데, 나도 난리부르스를 제대로 쳐 보고 싶다.



이 사건으로 지난번에 고민했던 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 결혼생활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나도 내 인생이 몹시 궁금하다.



하루살이로 살더라도 제발 행복하게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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