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사느냐보단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그래도 이왕이면 예쁜 곳에서.
집 계약 전 내가 묵었던 임시 숙소는 3층 목조 건물이라 열쇠로 문을 열어야만 했다. 그 집의 거의 모든 요소가 좋았지만 검은 대문만큼은 체크아웃하는 날까지 스트레스였다. 한 번에 그 문을 연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외출 후 돌아올 때마다 집이 가까워질때면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이 종이장만한 문 하나 제대로 못 열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숙소 체크아웃이 불과 며칠밖에 남지 않은 날. 주말을 넘기면 숙소를 비워야 하는데 집 계약을 하지 못해 초조했다. 그리하여 하루에 집을 무려 세 개나 봤다.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어 끼니를 샌드위치 하나로만 때웠다. 모든 뷰잉이 끝난 시각은 밤 8시였다. 버스에 올라 2인용 좌석을 혼자 차지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배고프고자시고 얼른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다.
검은 문 앞에 섰다. 어찌나 피곤했는지 심호흡할 새도 없이 열쇠를 냅다 꽂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좌우 구분 없이 돌리다 보니 머리도 돌아버릴 것 같았다. 10분 정도 미련한 짓을 반복하다 눈치챘다. 평소의 그 묵직하게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헛돈다. 겉돈다. 얄팍한 소리. 그럼 어쩌지? 내 방에는 아무도 없는데. 안에서 문을 열어줄 가족이 없는데.
열쇠를 빼내고 문앞에서 조금 물러서 고개를 들었다. 해가 사라진 하늘 색은 이미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3층 창문만이 노란 불을 밝히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그 불빛을 바라보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될까. 민폐가 아닐까? 보름달처럼 밝은 창문과 텅 빈 도로를 번갈아 봤다. 이상하게도 3층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문앞에서 쪼그려 자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저 사람이 문만 열어주면 넓고 푹신한 흰 침대에서 이불에 감싸여서 잘 수 있는데 말이다.
20분 여를 문을 열지도, 벨을 누르지도 못하고 애꿎은 열쇠만 돌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여성이 운전자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단번에 내 곤경을 알아챘다.
“문이 안 열려요?”
“네. 못 열겠어요.” 알고 보니 그는 옆집 이웃이었다.
그도 위를 올려다 보았다. 3층 집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는 잠시간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벨을 눌렀다. “사람 있나보네. 열어달라고 해야지!”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한 번 더 꾹. 드디어 누군가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가 소리쳤다. “여기 사는 사람인데 문이 안 열린대요!” 위층 사람은 알겠다고 소리치며 내려왔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 뜻밖에도 그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나도 그를 마주 안았다. 집 안에서 발걸음, 삐걱거리는 계단 소리가 났다.그가 포옹을 풀고는 말했다. “부끄러워 하지 말아요. (Don’t be shy.)”
3층 사람이 문을 열어주자 나 대신 벨을 눌러주었던 옆집 사람은 손을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3층의 그녀에게도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1층의 내 숙소로 몸을 돌리려 하는데 그가 나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알려줄 게 있어요.” 문 상태가 안 좋아 오고 나갈 때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아야 제대로 잠긴다고 알려주며 그는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마침내 방으로 들어온 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3층 사람이 한 말은 이것이다. “우리도 모두 이런 일을 겪었어요. 나중에 또 문이 안 열리면, 그냥 벨을 눌러요. 또 열어 줄게요.”
곤경과 도움은 돌고 도는 것. 왜 도움을 요청할 바에 밖에서 버티겠다고 생각했을까? 한밤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어째서 스스로를 더 큰 불확실과 곤경에 빠뜨리려 했을까? 옆집 사람의 ‘부끄러워 말라’는 짧은 문장이 내게는 어떤 격언으로 들렸다. 어쩌면 이 말을 듣기 위해 낯선 도시에 홀로 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임자의 퇴사 후 홀로 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크고 작은 실수를 남발했다. 결국 상사가 나를 따로 불렀다. 실수가 쌓이면 회사에 금전적, 시간적 손해가 된다는 지적이었다. 저지른 입장으로서 그의 지적은 충분히 납득이 갔다. 마지막으로 그가 물었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개선하겠다는 다짐 외에는.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상황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사실은 그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조언해 달라고. 그리고 요구하고 싶다. 지적만큼이나 칭찬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내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견해달라고. 왜냐하면 저는 칭찬을 받으면 춤도 추는 사람이라서요.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을 제 때 못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걸 놔주질 못하겠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어떤 감정이 차올랐을 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신속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싶다. 요구나 요청 사항이 있을 때 두려움 없이 말하고 싶다. 어떤 두려움? 이것이 내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는,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것이라는 것, 그리하여 이 관계가 어그러질 것이라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런던에 왜 온 걸까. 이제는 굳이 이유를 찾지 않기로 했다. 이미 와버렸는걸. 다만, 아마 딱히 이곳이 아니어도 상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이 도시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냥 이 곳을 배경 삼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온 것 아닐까? 집을 구한 지금,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 푸른 정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배경은 이왕이면 예쁜 곳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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