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구직
사람마다 크고 작은 결핍과 병이 있듯, 커피 업계에도 독특한 ‘병’이 있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결핍을 표현이 아닌 표출로 드러내는 장으로 카페를 이용한다. SNS 속에서 자칭 인플루언서, 연예인병 걸린 바리스타, 인맥 자랑, 지식 자랑이 공존한다. 보기 좋은 것도 있지만, 역겨운 장면들도 많다.
최근 구인구직 시장을 보면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바리스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외침이 넘쳐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정말 문제는 매장뿐일까? 오늘 나는 업주의 착취를 먼저 비판하기보다, 바리스타 스스로의 문제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2013년 당시 나는 주 6일 일했다. 쉬는 시간은 하루 1시간 남짓, 4대 보험은커녕 식대조차 없었다. 월급은 130만 원에서 150만 원 사이였다. 지금 보면 믿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엔 대부분 그랬다. 커피는 지금처럼 과학적이지 않았다. ‘스페셜티’보다 ‘로부스타’가 많던 시절, 커피는 감성의 언어로 소비됐다. 커피 맛을 논하기보다 ‘분위기’와 ‘이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카페 직원의 이미지는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어이, 여기 달달한 커피 하나!”라는 말에 “손님이 왕이지” 하며 웃어 넘기는 게 당연했던 시대였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나쁜 커피를 좋은 커피라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현실이 싫었다. 그래서 전문대학교 바리스타 학과에 진학했다. 수천만 원의 등록금을 내며 “배워야 인정받는다”는 믿음 하나로 들어갔다. 지금의 말로 하자면, ‘자기 증명’이었다. 나는 학벌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외식업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공적 제도나 기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은 그게 없으니, 적어도 스스로 증명할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학교를 나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커피를 모르는 신입과 같은 시급을 받았고, “학교 다녀봤자 똑같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일수록 전문성의 가치가 희미해진다. 그건 업계가 그렇게 만들어온 결과다. 전문직이 아닌 서비스직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래서 불만을 토로하는 바리스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인정받아야 하나?”
진입장벽이 높아질 때 비로소 인정이 생긴다. ‘사(士)’ 자 직업이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지식이 많다는 말, 열정이 있다는 말, 다 좋다. 하지만 그건 증명되지 않으면 허공에 떠도는 말이다. 의사가 실습과 면허로 증명하듯, 바리스타도 최소한의 검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몇 천만 원의 학비를 내야만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면 업계는 더 작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커피 업계는 유독 ‘포장’이 심한 업계다. SNS 속에서 두 손 가지런히 모아 드립을 내리는 모습, 포즈는 장인인데 실제론 집에선 술 마시고, 공부도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워라벨 좋은 직업이 바리스타다.”
그 말도 틀리지 않다. 진입장벽은 낮고,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 허세와 평가질, ‘강약약강’으로 버티는 이들이 업계의 이미지를 더 흐린다.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연구원이 되거나, 자기 매장을 운영하거나, 대회에 나가서 증명해야 한다. 남의 매장에서, 남의 시스템 안에서 커피를 논하는 건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근데 빨간날 다른 사람들 다 쉴 때 일하다보니,,,워라벨이 좋은 건 아닌거 같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바리스타는 아직 ‘서비스직’이다. 일주일 5일 근무, 세후 200만 원 언저리, 단순 추출 중심의 노동이 대부분이다. 지식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도 드물다. 로스터 자격도 없는데 “로스터 경험 있다”며 임금 협상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전문직을 원한다면, 전문직처럼 준비해야 한다.
요즘 구인글을 보면 최저임금만 주면서 ‘경력 3년 이상, 라떼 아트 가능, 고객 응대 능숙자’를 찾는 매장들이 많다. 그건 욕심이자 비양심이다. 그런 매장은 업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바리스타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줄 능력이 없으면, 찾지도 말아야 한다. 좋은 걸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런 글들이 오히려 불쾌하게 다가온다.
이 글은 불만이 많은 바리스타들에게 쓴다.
“소비자들이 몰라서 그래.”
“매장이 안 줘서 그래.”
그 전에, 우리가 스스로 전문성을 낮췄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를 버튼만 눌러 추출하며 ‘나도 바리스타다’라고 말하는 시대. 그 시절을 견뎌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바리스타는 단순히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커피와 사람 사이의 문화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그 존중을 되찾기 위해선, 포장된 자존심보다 실제 전문성, 공부, 증명이 먼저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적어도 이 업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서로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소비자는 배우려는 마음으로 바리스타는 증명하려는 자세로, 매장은 정당한 대우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감성이 아닌 전문성으로 존중받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