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로우기 성수
바리스타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한새길이라고 합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많은 글을 저장만 하고 발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글을 발행하기 앞서 요즘 들어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바리스타는 어디서 고민을 상담할까?"
"이야기하면 공감해 주는 곳이 있을까?"
"고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
"진심으로 해주는 말일까?"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서비스업이자 깊이 공부를 하다 보면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없는 기술이나 이론으로 성과를 내는 전문 직업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문성'에 의미를 두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쉽게 보는 사람도 많아서 어딜 가도 크게 공감받지 못하고 되려 자신감이 떨어져 떠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신 있게 시작한 창업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원했던 직장을 갔을 때 실망한 경우도 많고 월급은 오르지 않고 여러 고민 속에서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애만 탑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고민을 하겠지만 고민의 시작과 끝은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직종을 가진 사람 밖에 없을 겁니다. 각 직업마다 고민이 다르듯이 말이죠.
상담사와 의논하는 것도 좋지만 바리스타가 겪는 디테일한 문제까지 온전히 공감해 줄 수도 없고 자부심 이면에 부끄러운 것도 있기에 쉽게 내뱉지 못하는 고민도 많을 거라 예상합니다. 여태 제가 쓴 글을 보면서 바리스타의 속마음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런 바리스타는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경솔한 말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엎질러진 경솔함을 주워 담을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에 나와 바리스타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듣고 전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마케팅을 원하고 수익을 얻고자 했다면 바리스타와 카페를 소개하고 욕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을 칭찬하고 응원하고 힘이 되어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장님이 '소비자'이면서 제일 멀리하고 싶은 사장님이 '소비자'입니다.
회사에서 야근시키면 화낼 어떤 이가 바리스타의 야근은 괜찮다며 마감시간에 나가지 않습니다. 경험에 의한 좋지 못한 마찰로 공정한 룰을 정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지키는 이해를 못 들어준다고 화를 냅니다. 커피 한잔을 추출하는데 필요한 과정과 이론을 무시하고 왜 느린지, 비싼지 이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개인 카페를 열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은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옵니다. 비싼 음식 앞에선 아무런 말도 못 하다가 몇 천 원 되는 커피에 오늘 하루가 망했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서비스엔 갑과 을이 있지만 적어도 제가 쓰는 글에선 갑과 을 없이 서로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소비자도 바리스타나 카페에 불만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자 하는 것만 말해주는 좋은(?) 마케터는 도움 주는 척하지만 자존심 쏀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든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커피를 많이 마셨다고 커피를 잘 안다는 소비자 못 봤고 포크랑 나이프를 들었다고 해서 교양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맛있는 걸 잘 안다는 사람은 그게 왜 맛있는지, 좋은 재료인지 어떤 기술이 녹아져 있는지 모릅니다. 옷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매장에서 원단을 만지며 아는 척을 하지만 사실 그게 좋은 원단인지 어떤 기술이 녹아있는지 그저 좋다는 말로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카페에 불만은 많지만 많이 가는 세상이 됐습니다.
카페가 없어져도 괜찮다는 사람은 오늘도 다른 카페를 가서 사진을 찍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밥을 먹고 갈 곳도 많지만 카페에 와서 커피 한잔을 하자고 합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로스터리에 가서 디저트를 확인합니다. 흘깃 들었던 "경제가 발전해도 배고픈 나라의 배고픈 민족성이라 카페가 점점 베이커리가 되어간다."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커피의 산미도 즐기지 못하는 편견 가득한 사람이 커피에 대해서 아는 척 떠들 때마다 역사가 오래되어도 관심이 없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듭니다.
여유는 없고 보상심리가 강한 사람이 많이 오는구나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소비자는 아마 평생 몰라도 되지만 모른 상태에서 불만만 가득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어차피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매장은 그들이 가는 곳이 아니니까요. 앞으로 좀 더 당당하게 서비스의 기준이 '갑'과 '을'에서 끝나는 소비자가 있다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건 10개의 리뷰 중에서 1-2번 꼴로 나오는 진상 중 한 명이니까요. 카페에서 어떤 것 때문에 화나고 억울하다면 기준점을 정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제 주변과 모르는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카페를 망하게 하고 싶거든 네가 공부해라."
그저 방문 횟수가 높다고 하여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금도 카페소개를 한다는 사람 중에 감성적인, 추상적인,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 근거 있는 사실로 카페 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콘텐츠가 나오지도 못할뿐더러 아마 금방 지쳐 포기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지 않아도 망할 카페, 옛날 마인드로 운영하는 물장사하는 카페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괜찮은 카페들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입맛에 기준점을 높여주었으니까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바리스타가 있었고 경쟁이 치열한 만큼 기술 좋은 바리스타가 모여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한국 자영업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대부분 경쟁 때문에 손해를 봅니다. 가끔은 안타까울 만큼 친절했던 탓인지 해외에 나간 어떤 한국인은 한국만큼 대우해주지 않는 그 나라의 문화에 인종차별이라 여기는 정신 나간 사람도 종종 봤습니다. 일본 음식이 맛있다는, 서비스가 좋다는 사람들에게도 말합니다. 그들의 친절함보다 여행을 떠난 마음의 여유가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일본어도 못하면서 일본어만 할 줄 아는 가게로 굳이 들어가서 차별당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리뷰도 많이 봤습니다. 일본을 자주 가는 본인이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친절하고 맛있는 곳이었습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차별로 승화하고 싶은 이의 소설을 경험하는 것보다 재밌는 건 없지만 장벽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식함에 비례한 용감한 이를 상대하는 당신이 힘들지 않았을까 물어봅니다.
기술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없어서 경력이 있어도 신입 월급을 받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참 신기하게도 카페의 외관은 변했지만 바리스타의 복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경력 없는 사람을 채용하는 매장이 많은 것도 아는 척하기 바쁜 모르는 사람과, 콘텐츠 만들기 급급한 백수가 많아서가 클 겁니다. 그 결과 스페셜티를 한다며 가치의 투명성을 보여주지만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월급엔 가치의 투명성이 없는 것도 웃기고 슬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을 몸소 느낀 본인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손님이 왕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지금은 소비자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성의 문제가 아니란 걸 바리스타인 당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바리스타 참 힘듭니다.
작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여유 없는 삶이 이렇게 만드나 싶기도 합니다.
이 일을 잠시 멈추려는 나는 당신의 앞길을 응원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