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시간보다 남긴 질문
음료보다 음식이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음식은 짜고, 맵고, 시고, 달고, 감칠맛이 분명하고, 물과 달리 씹히는 질감과 식재료가 주는 즉각적인 재미 덕분에 소비자 입장에서도 맛있다, 맛없다를 판단하기가 훨씬 쉽다. 물론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식재료를 어디서 구했고 왜 좋은지, 어떤 의도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에 맞는 조리와 계산이 있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음식 역시 끝없이 파고들어야 할 영역이 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시다, 떫다, 고소하다, 향기롭다는 몇 개의 단어로 단순화되기 쉽지만, 그 안에는 식재료를 이해하는 출발점부터 시작해 의도에 맞는 선택을 했는지, 틀리지 않는 기술과 지식을 갖추었는지가 함께 요구된다. 그럼에도 커피는 늘 ‘느끼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볍게 소비된다. 요즘은 글을 쓰기보다 천천히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트렌드라 불리는 것들, 이를테면 선거철에만 열심히 소통하는 후보자 같은 스쳐 지나가는 의미 없는 것, 두쫀쿠 같은 디저트를 보며 ‘아직 우리는 여기쯤에 머물러 있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접근성이 쉽다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늘 많다. 맛집, 카페 같은 것들.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몰라야 유창하게 유지되는 영역들이다. 맛집이라는 것도 결국 자신이 스스로 찾지 못한 미식의 경험을 타인에게 위임하는 행위에 가깝다. 느끼지 못한다면, 가봤다는 사실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돈내산이라는 명분 아래 쏟아내는 유치한 평가들, 누가 먹어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는 뻔한 감상들. 맛을 모르니 결국 비싼 곳에 가서 돈을 쓰는 행위로 ‘맛잘알’을 흉내 내는 모습까지. 그 모든 장면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정말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 음식인지, 경험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꾸미기 위한 이미지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뒤에 이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소비하고 있는지 사실 보는 사람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기 돈과 시간을 써서 간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비꼬며 보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감정이 쓸데없는 오지랖인지, 아니면 이 일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난 과한 열정인지 나조차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계속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그 장면들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노동과 시간을 단번에 소비하고,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덮어버리는 태도, 스스로는 취향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지나쳐버리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나 역시 소비자이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우리는 유독 소비 앞에서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으면서 아는 척을 하고, 느끼지 않았으면서 평가를 남기고, 그 결과가 누군가의 일과 공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비판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깝다. 우리는 정말 맛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걸까. 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불편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만큼 예민해지고,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이 감정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나에게 커피와 카페는 사진 한 장으로 끝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겉핥기식으로 습득한 지식을 근거 삼아 타인을 다그치는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사실인지, 맥락에 맞는지, 혹은 상대가 평생을 들여 다뤄온 영역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문가 앞에서조차 끝까지 우기며 자신의 얕은 확신을 밀어붙이는 모습들을 볼 때면, 저것이 과연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태도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어쩌면 삶에서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이 부족하다는 불안이,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타인을 향해 소리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대신, 어설픈 지식으로 상대를 눌러야만 유지되는 자존감. 그 위태로운 균형 위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말이 센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경험으로 단련된 전문성 앞에서 남는 것은 결국 태도뿐이고, 그 태도가야말로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늘 말하지만 가끔은 딱 한 번 다녀온 나라, 관광지만 몇 곳 돌고 끝난 여행을 마치 그 사회를 깊이 이해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더 안타까운 건, 그런 이야기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잠시 머물다 스쳐간 경험이 곧 이해가 되고, 사진 몇 장과 감상 몇 줄이 곧 정보로 유통되는 풍경.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찬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는 늘 밝고 행복해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가볍고 부질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맥락 없이 잘려나간 경험은 결국 누군가의 기대를 오도하고, 깊이를 가장한 단정은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로 바꾸고, 그 착각 위에서 서로를 설득하려 든다. 하지만 한 장소를 안다는 것은 머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의문을 남겼는지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머문 시간보다 질문을 남기지 않은 채, 우리는 배를 채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