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6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헉’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며칠 동안 무리하면서 허리 통증이 계속되었는데, 어제 오후부터는 참기 힘든 수준으로 통증이 심해졌다. 진통제를 먹고 하루 자고 나면 좀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큰 걱정을 안 했는데, 기어코 일이 터진 것이다. 두 팔로 기어 다니면서 출근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버스에 워크숍 물품을 싣는 것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민하다가 지나가는 택시 기사분에게 비용을 드리기로 하고, 도움을 받아 버스에 짐을 실었다. 워크숍 일행들과 버스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당시 함께했던 다른 분이 후에 얘기해 준 말이다. “원장님, 무슨 큰 고민이 있는 줄 알았어요.” 대전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칼에 베이는 듯한 통증을 참아가며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식사를 마치고 빠진 인원이 없는지 점검하던 중 갑자기 허리 부근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찌릿한 통증이 왔다. 순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서 직원에게 일정을 잠시 맡기고 바로 근처에 있는 택시를 향해 걸었다. 택시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갑자기 오른발 감각이 없어지면서 주저앉았다. 마비가 온 것이다. 기분 나쁜 압통이 계속 밀려오고 겁이 덜컥 났다. 택시에 올라타서 기사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괜찮은 병원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근처에 전문 병원이 있어서 응급실로 향했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게 됐다. 의사는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수술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3가지가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가 그중 하나에 해당하며 수술하지 않으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 있다고 한다. 잠깐 생각해보겠다고 하며, 여기저기 문의한 결과 수술하지 않고 시술을 받기로 했다. 장애가 생겨도 온전히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시술을 마쳤다. 3일 후 대전 병원으로 옮겼고 이곳에서 한 달간 재활을 받기로 했다. 재활을 담당해주시던 분이 내 걱정을 알았는지 퇴원하고 1~2달 있으면 산에도 다니고 운동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신다. 희망이 생겼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고 발가락 운동도 하면서 1달을 보냈는데……. 몸 상태가 여전히 심각하게 불편했다. 한쪽은 거의 못 움직일 뿐만 아니라 통증과 뻐근함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쉬어야만 했다. 다시 보름을 추가 입원했지만 더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과 함께 이제 통원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3개월이면 괜찮아질 거란 희망이 6개월, 12개월이 지나자 절망으로 바뀌었다. “원장님 아직도 다리 아프세요?”란 말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2018년 8월까지 거의 일다운 일도 하지 못했고 깊은 우울감과 공황장애까지 나를 괴롭혔다. 더 이상 희망을 붙들어봐야 상처만 커질 테니 이젠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자 문득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한번 떠나보자’란 마음이 생겼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 등을, 그것도 무리하지 말라고 권했다. 등산이나 근력운동, 러닝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년 8개월 동안 열심히 지켰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계룡산, 홍성의 용봉산, 설악산 울산바위 3곳을 천천히 스틱에 의존하며 올라봤다. 무리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며 걸었다. 혹시라도 튀어나온 바위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더 조심스러웠다. 3곳의 등산을 마치고 드디어 결심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친구 둘에게만 이야기했다. 다들 미친 짓이라며 말릴 것이 뻔하고 나조차도 이 몸으로 며칠이나 버틸지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항상 1안, 2안은 기본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던 나로서는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시작’이었다. 몸이 건강했으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도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8년 10월 23일 배낭에 기본적인 짐을 싣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 불안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원주, 홍천을 거쳐 속초에 도착하고 버스터미널 바로 근처에 있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다. 급한 마음과 테스트하는 마음으로 북쪽으로 걸었다. 다행히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 몇 시간을 걷고 숙소로 돌아와서 양말을 빨아 널고 누우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것만 걱정됐다. 이튿날, 속초 게스트하우스에 거점을 두고 고성 통일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본격적인 첫 여정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을 바로 만나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들어 산길을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 갓길에서 위태로운 걷기를 시도해야만 했다. 환한 하늘만 보고 바닷가 숲을 걷다가 해가 순식간에 떨어져 어둠이 닥친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찾아야 했고, 준비해 간 헤드 랜턴과 야광 띠를 두르고 아무것도 없는 산길, 논길, 냇가를 건너야만 했다. 달빛이 가득한 시간에 속초 시내로 가는 버스정류장을 겨우 찾아 숙소로 돌아오니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짓인지 고민이 됐다. 다음 날 어제 마무리한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고성 통일 전망대로 향했다. 해뜨기 전에 시작해서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홀로 묵묵히 걸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거진항을 지나고 화진포를 지나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 도착하니 3일을 걸었음에도 왠지 모든 일정을 끝낸 것 같은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1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느껴본 행복감이었다. 통일 전망대까지는 자차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돌아서는데, 아들과 함께 온 아주머니 한 분이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갈래요? 좀 좁긴 한데…”말씀해주셨다. 덕분에 통일 전망대를 돌아보고, 감사하게도 속초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갔다. 속초에서 다음 거점은 주문진으로 잡았다. 주문진에서 하루는 속초 방향으로, 하루는 삼척 방향으로 걸었다. 강릉을 거쳐 양양으로 향하는 길에 들렀던 어느 식당에서는 날씨가 추워서 자전거로 동해안 종주하던 20대 청년에게 옷을 벗어주었던 식당 아주머니가 조심히 다니라는 안부도 전해주신다. 지나가는 인연에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위로받고 다시 힘을 얻는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걷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갑자기 걷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걷고 있다는 30대 청년을 만났다. 다부진 체격에 묵묵히 걷는 모습이 수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서로 속도가 달라서 오래 같이 걸을 수는 없지만 2시간 정도 함께 걸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형님, 저는 그동안 헬조선, 헬조선 하며 살았는데 대한민국이 이렇게 좋은지 걷다 보니 알게 됐어요”라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공감했다. 그동안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을 많이 다녔었는데 이렇게 속살까지 깊이 들어가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막연히 한 발자국 떨어져서 봤을 때 오해가 생기고, 상처가 생기고, 절망에 빠지게 되나 보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란 시 구절이 떠오른다. 자연도, 사람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도 이렇게 혼자서 절뚝절뚝 걷다 보니 자세히 보이고,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느껴진다. 부산까지 걷는 동안 이러한 인연들이 중간중간 내게 힘을 불어넣어 줬다. 11월 28일, 드디어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도착했다. 750km가 넘는 길을 혼자 걸으며 이날을 상상했었다. 뭔가 특별하고 감동이 올 것 같았다. 막상 바람이 거세게 부는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도착해 보니, 오히려 담담했다. 주말에만 쉬엄쉬엄 함께 부산에서부터 걷고 있다던 중년 부부, 영국에서 건너와 한국을 걷고 있다던 여성 트래커, 이러한 사람들이 내게서 사라졌던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것 같았다. 해안선과 내륙을 따라 걸으며 두 발로 경험한 대한민국 자연이 주는 위로와 감동은 2년 가까이 나를 짓누르던 절망을 걷어내주었다.
돌아와서 나는 다시 사람을 만나고, 강의를 진행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뒤, 5년 넘게 미뤄왔던 ‘강의의 기술’을 출판하게 됐고, 다시 일 년 뒤 책 2권을 더 출판했다. 익숙함과의 결별은 힘들다. 때로는 불행마저 익숙함으로 내게 안착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1년 8개월간 사람들에게 “원장님 아직도 다리 아프세요?”란 말이 어느 날부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내가 어느새 절뚝거리지 않고 멀쩡하게 걷고 있다는 것을. 의사들이 만류하고, 친구들이 말렸던 일을 했다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주저하고, 내 가슴 안에서 두려워했고,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도전했고, 그것이 내 삶을 바꿔주었다. ‘새로운 시작’은 늘 두렵다. 그러나 두려운 일이, 두려운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려운 생각’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멈춰있던 강의를 다시 시작하면서 전보다 더 강한 힘과 확신이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나에게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두려움과도 맞닥뜨릴 것이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길 원한다면, 그리고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동해안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