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상포진, 분노와 슬픔이 함께 했던 20개월 끝에서
2018년 10월 23일. 비가 내리고 있다.
매일 다리에 쥐가 나서 잠도 편히 못 자고, 식사도 바닥에 앉아 하지 못했던 20개월
우울증과 대상포진, 공황장애, 이유 없는 분노와 슬픔이 함께 했던 20개월
조금 있으면 2년이 다 돼 간다.
2016년 11월 초.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마비가 왔고, 수술을 권유 받았다. 수술대신 시술을 선택하고 병원에서 한달, 그리고 또 보름을 입원했다.
“열심히 치료하면 2~3달 후에는 산에도 갈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도수치료사와 의사의 말은 큰 위로가 됐다.
열심히 했다.
꾸준히 도수 치료 받고, 물리 치료 받고, 발가락에 두꺼운 고무줄을 걸고 운동도 했다.
그렇게 2~3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났는데……
난 여전히 한쪽 발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잠을 잘 때마다 쥐가 나서 몇 번을 깨어나서 주무르고 집안을 좀비처럼 돌아다녀야 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일을 해도 피곤해져서 쉬어야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원장님 아직도 다리 아프세요?”란 말을 한다.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드니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식당도 꼭 의자가 있는 곳만 찾아가야 했다. 내 맛집들은 바닥에 앉아서 먹는 곳이 많았는데……
1년 10개월이 지나면서 완전히 절망적이 되고, 괜찮아질거라는 기대는 사라져 버렸다.
운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던 나는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적응할 수가 없었다.
심리적으로도 망가져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몸을 못 움직이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대상포진이 찾아오고, 알 수 없는 습진이 온 몸에 생겨서 몇 달 동안 이어졌다.
바닥에 떨어지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의사들은 여전히 심한 운동을 하지 말고,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를 권한다. 그것도 무리하지 말고……
시키는대로 했건만 20개월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씩 개선되는 느낌만 있었어도 의사말을 계속 잘 들었을지도 모른다.
집 한쪽 구석에 묵혀 뒀던 등산 배낭과 스틱을 꺼냈다. 그리고 트레킹화 좋은 것을 구매하고, 옷도 편한 것으로 추가 구매했다.
홍성의 용봉산, 바위산이지만 경치가 일품이다. 등산하면 다리가 아파야 하는데 팔이 더 아프다. 다리가 불편해서 스틱에 의지하며 반은 팔의 힘으로 등산을 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마무리했다.
나의 관심은 등산을 무사히 끝내는 것이 아니라 등산 이후다. 허리와 다리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회복은 어느 정도 걸리는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큰 부상이나 이상은 없었다. 조금 더 용기를 냈다.
1주일 뒤, 계룡산이다. 이번에는 6시간 정도 걸었다. 산에서 5시간, 평지에서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직은 괜찮았다. 후유증도 없다.
다시 1주일 뒤, 이번엔 속리산 울산바위다. 울산바위에 올라 속초 시내와 바다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여전히 스틱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지만 3주의 등산을 무사히 마쳤다.
드디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가 됐다.
동해안 걷기.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대략 750km 거리다.
지인 몇 명에게만 얘기했다. 초등학교부터 함께 다닌 모임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의사에게도 못했다. 미친 짓이라며 말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절뚝이고 있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 피곤함이 엄습한다. 잘 앉지도 못하고, 무거운 배낭을 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10월 22일 저녁, 배낭 두 개가 방 한쪽에 세워져 있다. 하나는 숙소에 두고 다닐 배낭이고, 하나는 걸을 때 매고 다닐 작은 배낭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냥 좀 더 괜찮아지면 할까?’
‘내년에 봄이 오면 그때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10월 23일, 배낭 하나는 둘러매고, 하나는 들고 유성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몇 분이 말을 걸어온다.
“여행 가시나봐요?”
“배낭 묶는 줄은 어디서 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행자의 모습처럼 보이고, 삶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나보다.
즐겁지도, 희망적이지도 않았다. 서러웠다. 이런 내 발걸음이, 이런 무모한 도전이……
원주, 홍천을 거쳐 속초로 가는데 비가 온다. 버스안에서 속초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했다.
어떠한 일을 해도 1안, 2안은 기본적으로 만들어 놓는 내 성격에 이렇게 대책없이, 생각없이 떠나온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미루면 포기할 것 같아서 더 대책없이 나선 발걸음이었다.
창밖으로 비도 흘러내리고, 불안한 마음도 흐른다.
내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다.
하루만에 끝날지도 모른다.
애써 챙겨온 짐이 무안해질만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드디어 속초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최대한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잡으려고 했다.
터미널과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는다.
잠시 앉아 있다가, 가볍게 짐을 챙겼다. 배낭과 스틱, 등산모자, 간식 조금……
게스트하우스를 나서서 바닷가를 향해 걸었고, 바다가 나오자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앉아있는데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다.
‘혹시 못하면 어떻게 하지?’
‘더 심해지면? 예전처럼 강의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일어섰다. 이 마음을 떨쳐버리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속초로 떠나올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숙소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