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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탄다는 것

아들의 수면 교육을 하러 제주에 살고 있는 동생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태어난 지 두 돌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은 잠에서 깰 때마다 아빠나 상주 이모에게 안아 주기를 요구했다. 아니 잠드는 것부터가 아직도 업거나 안지 않으면 잠도 잘 못 드는 상황이었다. 감기라도 걸린다던지 해서 무언가 불편한 날에는 한 시간마다 깨어나 울고, 그때마다 "아빠아아"는 허리를 내어주며 아이를 안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야만 했다.


수면교육이 필요했다.


수면교육에 대해 많은 콘텐츠와 자료들이 있고 세부 행동 지침과 전달하는 톤 앤 매너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가장 공통되고 중요한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다.


아기가 잠에서 깨었을 때 부모가 바로 개입하지 말 것. 개입하더라도 토닥이거나 위로하는 정도만 할 것
가급적 부모의 개입 없이 혼자서 다시 잠들 수 있도록 유도할 것.
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울 건데, 절대로 아기를 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견딜 것.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 해도, 우리 부부에게는 저 내용들이 "울어도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울고 또 울어서 아기가 쓰러져 잠들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 최선임"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극히 비인간적으로 보였고, 두세 번인가 시도했으나, 역시나 우리 부부는 울며 불며 얼굴에 열꽃을 피우는 아들을 안아주고 업어주고야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주 이모라는 든든한 버팀목께서 엄마, 아빠가 잠에서 깰까 봐 조금만 바스락 거려도 업어서 달래주셨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수면 교육의 필요성을 일부러 잊은 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면서 체중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아빠아아"의 허리와 골반은 아들을 안을 때마다 틀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두 돌이나 지났는데도 신생아처럼 울어대고 깨어나는 아이를 냥 둘 수는 없었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감기에 걸려 열도 나고 코가 막힌 아들이 한 시간마다 깨어나고 평소처럼 안아 재우기를 반복하자, 새벽 두시쯤이 되었을까, 지쳐버린 나는 아내와 서로 합의를 보았다.

"이제 일어나면 몇 시간을 울건, 쓰러져 지쳐서 잠들 때까지 안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말아보자"


"아빠아아, 아아악! 아빠아악!"

당연하다는 듯 아들의 울음이 방을 채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귀를 막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비정한 부모가 되기 시작했다.


"자자, 응? 누워서 자면 돼", "아빠아아아아아아아악!"

"아들아, 자자? 응? 졸리면 자면 되지 왜 울어 아들아.", "아빠아악!"


한 시간이 지나도 아들은 포기를 모르고 울어댔고, 결국 난 여느 때처럼 아이를 안고 거실을 돌고 있었다. 아이는 분노와 고통과 서러움의 호흡을 연거푸 쉬어댔고, 나는 복부를 찢는 고통을 동반한 죄책감으로 정말 울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서 혼자서 잠들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몇 년을 내가 고생하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다음 날 오후,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새벽에 너무 울어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으니 주의해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타인의 안식을 방해한 것은 분명 미안한 일임에는 분명했지만, 아이가 한 밤중에 뽀로로 북을 쳐서 소음을 낸 것도 아니고,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축구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직 제대로 말도 못 하는 25개월짜리 아이가 아픈 것이 서러워서 운 것인데, 매일 그렇게 길게 운 것도 아닌데 간헐적으로 발생한 이 작은 아기의 울음을 하루도 참지 못하는 동네인 건가 하는 생각만이 뇌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 집이 신생아가 있는 집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하필 그 타이밍에 부모가 그런 아이를 달래지 않았던 것에서 말미암은 일이라는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 결심을 하게 했다.


"여보, 나 제주도 동생네 집에 다녀올게."


제주도로 이사 간 동생은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고, 이웃과 물리적으로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아기의 울음으로 고통받을 대상은 동생과 매제, 그리고 불쌍한 두 조카들 뿐이었다. 다행히 두 조카는 아직 "애기"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사촌 동생을 보는 것에 더 만족해했고, 동생은 돌아가신 엄마 대신 자기가 이 조카에게 아빠 친가의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빠아아아아악!"


그동안 네 번 정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비행기에서 그렇게 울어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이륙과 동시에 울기 시작하더니 착륙 준비를 위해 착석을 하고 나선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평일 낮 비행기라 만석은 아니었으나 어쩐 일인지 내 주변 좌석은 꽉 차 있었다.


며칠 전 제주도 내려가는 비행기에서 우는 아이의 부모에게 욕설을 퍼부은 인간말종 개쓰레기가 사람이 체포된 뉴스가 화제가 됐었기에 아들의 울음이 터질 때마다 난 아이를 달래기 위함은 물론이고, 주변 승객에게 죄송하다는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또 실제로도 그랬지만) 거의 울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아이를 달래며 비행기 복도를 돌아다녔다. 또 한편으로는 뉴스와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고민하면서 머릿속엔 온갖 난잡한 감정과 생각이 부대끼기 시작했다. 부족하고 부덕하며 못된 이 아빠의 마음은 말도 못 해 울고 있는 아들에게 원망으로 자라고 있기도 했다.


휴직 후 외출 시에 생략된 헤어 드라이질과 왁스와 스프레이는 나를 굉장히 피곤한 중년으로 보이게 했다. 무슨 우연인지 입고 있던 면바지는 어디서 걸렸는지 손톱 반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내 흰 운동화는 그날따라 더러웠다. 가뜩이나 아들은 번도 울면서 엄마를 찾지 않고 오직 아빠만 외쳐대고 있었다.


평일 낮. 엄마 없이 아빠와 아이만 있는 이 가족. 무언가 후줄근한 아빠의 행색. 결정적으로 엄마를 찾지 않고 아빠만 찾고 울어대는 아기. 상황과 상황이 알 수 없는 주문이 되어 주변에 있던 승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일까?


"제가 잠깐 안아봐 드릴까요?" 옆자리에 계시던 여성 승객 분,

"아기가 마이쮸 먹을 줄 알아요?" 앞자리에 계시던 여성 승객 분,

"까까까까 까꿍" 뒷자리에 계시던 커플,

그리고 한 마디 불평 없이 그냥 바라만 봐주시던 바로 옆자리 할아버지 승객 분,

무수히 찾아와서 달래려 애써주시던 승무원 여러분, 착륙하니 유모차를 받아주시겠다던 승객분까지…….


실로 동화 같은 선의의 마음이 행동과 말로 나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주변 분들이 보여준 이 아름다운 행동이 아들의 울음을 그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과 분노와 원망 등, 세상의 모든 부정적 감정으로 충만했던 아기 아빠에게 "죄를 사하여 주는 면죄부"처럼 다가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위로였다.

그날 탔던 대한항공 KE1239편 탑승권, 감사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부모는 죄인이 된다. 아기가 있으므로 유모차가 있고 그로 인해 엘리베이터에서도 어른 몇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구석자리를 찾는다. 식당에서도 아기의자가 있는 최소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 위주로 찾아다닌다. 좀 멋들어진 식당에라도 들어갈라치면 일단 입장 가능 여부부터 물어야 하고, 아이를 위해 매운 재료를 빼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서야 들어갈 수 있다. 아기가 식당에서 소리라도 지르거나, 앉아있는 것이 지겨워졌거나, 수저라도 포크라도 두드리기 시작하면 보여주기 싫지만 아이패드를 꺼내 뽀로로를 틀어주고야 만다.


많은 부모들은 아기와 나가면 스스로가 무슨 충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염려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도 본인의 육아가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내 염치의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아기가 울었다는 민원을 듣고서 집이 아닌 제주로 향하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제주를 가는 비행기에서 우리 부자를 만난 승객들에게 다시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탄 죄"를 짓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줬던 분들 모두가 아기를 돌보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을 터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부모가 듣기에도 힘들다. 그러나 최소한 그날의 승객들은 우는 아기를 달래던 이 아빠가 얼마나 죄스러워하는지를 알고 있던 것 같다.


그날 내 주위의 승객들께서 보여준 행동들은 "아이야, 너랑 여행하는 것이 기쁜 일은 아니었지만, 편안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것이 네가 아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네 아빠는 그것을 혼자서 감당하고 미안해하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려 했단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기와 비행기를 탄 죄를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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