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 식구가 같이 자기 시작했다

휴직을 하고 4개월 가까이가 흘렀다. 7월 1일부터 쉬었으니 정확하게는 110일이 조금 더 지났구나. 휴직을 하면 성실히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자는 결심은 4개월 동안 뭔가 여유를 찾지 못해 이제야 겨우 조금 실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출근을 하다가 하지 않게 된 세상에서 얻게 된 소소한 기쁨들이 제법 많다. 모두가 출근하는 아침의 아파트 단지 안을 나 혼자 지하철역이 아닌 방향으로 조깅을 한다던가, 대낮에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텀블러에 들고 느리게 산보하는 데서 느끼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우월감이라던가, 출근하는 아내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는 데에서 오는 근거와 원인을 알 수 없는 뿌듯함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 기쁨의 영역에 속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대와 달리 아들은 4개월간 거의 매일 밤에 울면서 깨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울 때 아빠를 찾는 것이 이전과 제일 달라진 점이랄까. 자다 깨서 물을 찾을 때도, 잠자리에 쉽게 들지 못해 온갖 짜증을 부릴 때도 "아빠아아"이다. 그 어린아이가 도대체 무슨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외친다기보다는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있는데 그때도 여지없이 "아빠아아, 아흑흑"이다.


덕분에 밤에 나의 잠의 질은 회사를 다닐 때처럼 좋지 않다. 여전히 밤에 깨어서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한 번 깨면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나의 기질도 한몫을 크게 하고 있다. 때문에 휴직을 했지만 알 수 없는 피로감은 회사를 다닐 때만큼 나를 쫓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내와 아기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식구가 한 방에 모여서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신혼 초부터 방을 따로 썼다. 내가 코를 많이 고는 편이었기 때문에 신혼 가구를 살 때도 동일한 디자인의 슈퍼싱글 침대 두 개를 샀다. 결혼 초에는 두 침대를 붙여서 지냈는데, 서로가 평생 혼자 자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도 했고, 내가 코를 많이 골기도 했고, 또 아내의 로스쿨 생활로 직장을 다니는 나와는 생활 패턴이 달라져 자연스럽게 방을 갈라서 써왔다. 아이가 태어나고도 아이는 육아를 해주시는 상주 이모님이 데리고 주무시고 나와 아내는 각 방을 썼으니 세 식구가 공교롭게 각 방을 써왔던 셈이다.


그러던 것을 아이의 수면을 어떻게든 부모가 직접 고쳐보고 책임져 보자는 생각이 들어, 또 때마침 이사를 하게 되어 방 하나에 슈퍼싱글 침대 세 개를 몰아넣어버렸다. 이사를 오게 된 집은 전의 집보다는 조금 작은 집이어서, 방 크기가 조금 불만스러운 편이다. 그 덕에 방 전체는 정말로 말 그대로 침대만 떡하니 세 개가 들어선 침실이 되었고, 방문은 열고 닫을 수가 없어 아예 열어둔 채로 문틀에 커튼을 매달아 가리기만 해 둔, 절반은 개방된 상태로 방을 쓰게 되었다.


그런 방에서 엄마, 아빠, 아이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함께 잠을 자기 시작했다. 처음엔 영 어색하고, 나의 코골이에 아이가 깨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회사를 다니지 않아 술자리가 줄어서인지, 운동을 시작해서인지 코골이가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아내의 평가를 듣는 수준까지 나아진 것 같고, 어색함은 조금씩 익숙함이 되어 갔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잠들면서 생기는 행복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꿈을 꾸다 비명을 지르며 깬다고 얘기했지만, 모든 꿈이 다 비명만 지르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즐거운 꿈을 꾸는지 아이 특유의 "까르륵~"하는 웃음으로 잠꼬대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도 아내도 그 웃음소리에 깨지만, 또한 잠결에 터져 나온 아이의 그 웃음에 다시 한번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러고선 당연히 깨어있는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아이가 깰까 봐) 매우 작게 속삭인다.

"귀여워."


세명이 모여 자는 침대에서 손만 뻗으면 자는 방향에 따라 아내의 발목이나 손을 잡고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아이의 조약돌 만한 손에 내 손가락을 넣어 잡아보라고 하기도 좋다. 괜히 옆에 누워 있는 아기의 머리를 만지면서 손바닥 한가득 부드러움을 느끼기도 좋다. 아이의 정수리에서 아직도 은은히 나고 있는 아기 냄새를 맡기도 좋고, 무엇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엄마, 아빠보다 먼저 눈을 떠 언제 일어나나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로 마주할 수 있다. 그때 쫓아오는 미소는 덤이라기에는 너무 커다란 행복이다.


그래도 가끔은 코를 심하게 골아 아이가 내 코 고는 소리에 깨기도 하고, 신경 쓰인 내가 내 코 고는 소리에 깨기도 한다. 또 어쩌다 한 참 일찍 일어난 아기가 거실에서 새벽부터 아이스크림 카트를 가지고 놀아버리면 방음이 안 되는 이 커튼의 방어막으로는 우리 부부의 아침잠을 유지를 할 수도 없다. 방 전체가 침대라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눕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가뜩이나 작아진 집이 더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통잠을 못 자는 아들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밤에도 세 식구는 커튼으로 둘러친 침대방에서 같이 잘 예정이다. 뭔가 다른 행복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 남자 팀장, 육아 휴직을 신청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