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졸사원이다 65] 새로운 역사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사무실 공간이 없어 2개의 팀 파티션 사이 공간에 폭이 좁은 테이블을 놓아 프로젝트팀 사무실을 꾸렸다
전사자원관리(ERP) 고도화 프로젝트에 합류해 당분간 서울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내 자리는 외주 개발팀원들과 같은 곳에 마련됐다. 사무실에 따로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2개의 팀 파티션 사이에 폭이 아주 좁은 테이블을 몇개 가져다 놓고 프로젝트팀이 꾸려졌다. 본사 근무로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는데 열악한 환경탓에 실망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된 직원들 중 개발팀과 함께 상주근무를 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본업을 하면서 필요시에만 프로젝트 업무를 지원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본사 직원들보다 외주 개발팀원들과 더 가깝게 지내게 됐다. 그리고 평소 우리가 업무를 하면서 전화와 메신저로 매일 오류 개선 요청을 하던 계열사 전산 유지보수팀 사원들도 직접 얼굴 보고 인사할 수 있어 좋았다.
회사 전산 시스템의 유지보수는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이 외주 형태로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열사 유지보수 담당자는 우리 회사 정보전략실에 상주한다. 그와 별개로 이번 프로젝트 개발팀은 또 다른 회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업무를 진행했다.
프로젝트는 주간 단위로 진행사항 보고가 이루어졌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 우리 회사 정보전략실 담당자와 나, 외주 개발팀장님 그리고 계열사 유지보수팀 담당자가 함께 모여 진행사항을 공유하고 다음 일정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해 회의가 매끄럽게 진행이 되는 일이 잘 없었다.
회의중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시간은 현업에서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모두 전산 프로세스에 녹여 넣고 싶은 나의 의견과 전산 유지보수 관리포인트가 늘어나 업무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 소극적인 정보전략실 담당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아슬아슬 줄타기 하듯이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서로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정보전략실 담당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입사했다. 그가 회사에 처음으로 들어와 진행한 프로젝트가 바로 내 입사 2개월차에 오픈된 전산시스템이었다. 당시 오픈된 시스템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현장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많은 교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애증'의 사이다.
신입으로 입사한 나와 달리 그는 경력사원으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직급이 나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 일은 직급을 떠나 상식과 회사의 이익 측면을 고려했을 때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열심히 의견을 밀어부쳤다. 그리고 내 뒤엔 전국에서 나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한발 물러서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불편하게 업무를 해야했기에 물러날 순 없었다.
한날은 정보전략실 담당자와 외주 개발팀장 그리고 나, 셋이 모여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날 미팅은 현장에서 아주 일상적이고 수시로 진행하는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정리를 하고 현업의 프로세스를 일원화해 전산 시스템으로 구현하고자 열린 미팅이었다.
실제로 현업은 점점 줄어드는 인력난으로 프로세스 간소화를 통해 효율성을 기하고 있는 반면 전산 시스템은 초창기 복잡한 프로세스로 운영되도록 구현되어 있었기에 현업 담당자들은 실제 업무보다 더 복잡한 전산 시스템상의 프로세스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 부분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자는 의견을 두고 정보전략실 담당자와 나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현업의 프로세스로 전산 시스템을 수정할 경우 실제 현업 담당자가 거치는 여러 단계를 전산에서 자동으로 진행되도록 구현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오류율이 더 높아지니 현업에서 수동으로 그 프로세스를 다 진행하라는게 정보전략실 담당자의 의견이었다. 물론 나는 '말도 안된다'며 어떻게든 전산 시스템을 간소화된 프로세스에 맞게 개편해야 된다고 했다.
우리둘의 의견 대립은 몇시간동안 정리 되지 않았고 점심시간이 되어 잠시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외주 개발팀장님은 답답한 마음에 몹시 흥분한 우리둘을 갈라놓고 나와 따로 점심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는 막걸리를 한병 시켜 따라주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티격태격 했지만 프로젝트는 조금씩 앞으로 진행됐고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도 정립되어져 가는 듯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곧 찾아왔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결국 성과가 되었다
▲ 기회 항상 준비된 역량을 가진자만이 기회를 잡일 수 있다
프로젝트의 총 수행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 중에 프로세스와 화면 설계기간이 6주다. 내가 6주간 정립해준 프로세스와 화면 구성대로 나머지 시간동안 개발팀에서 전산 시스템에 반영한다. 그 6개월 동안 나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비담당자들의 워크숍이 2회 진행되었다. 그 워크숍에서는 프로젝트 진행사항에 대해 공유하고 또 다른 의견을 수립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했다. 우리 회사는 '본사'라는 조직이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였다. 그전까지는 지역 프렌차이즈 방송국 형태로 각자 경영하던 회사였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업무도 지역에 따라 진행하는 방식도 달랐고 해석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러다 본사가 생겨나고 주관부서인 '구매팀'이라는 조직이 생겨났지만 중심을 잡고 현장을 콘트롤 하진 못하는 단계였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최대한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설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지역 담당자들은 현재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방법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 진행 내용에 대한 불만을 재기하기도 했다. 한간에서는 '경남 프로젝트'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전사 대표로 타지에서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면서 만들어 낸 결과물에 대해 그런 평가를 받을 때는 정말 속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프로젝트 종결을 알리는 성과보고가 진행됐다. 현업으로 복귀한 나도 아주 오랜만에 서울에서 본사 직원들과 개발팀원들 다른 지역 담당자들과 만나 프로젝트 성과보고회에 참석했는데 초기에 내가 전산 시스템에 담고 싶은 내용중 중요한 부분 몇가지가 빠졌다는걸 알게됐다. 이유는 예산과 시간 부족. 아쉬웠지만 지금의 성과로도 나쁘지 않았고 이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전사 프로세스를 내 손으로 직접 설계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또 몇달이 지나고 '경남 프로젝트'라며 내가 설계한 프로세스에 불만을 재기하던 지역 담당자들이 나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며 더 뿌듯해졌다. 당시의 내 결단력과 추진력이 틀리지 않았다는게 증명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결단은 평소 업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감에서 나온것이기에 언젠간 이렇게 이해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일도 수많은 에피소드중에 작은 점 같은 하나의 조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우리 조직의 역사를 만드는데 큰 획을 하나 정도는 그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나 역시도 그럴테지만 말이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스스로가 이런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면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오로지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