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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Jan 14. 2017

한때 꿈은 래퍼, 덕분에 회사에서 승진하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63] 잊어버렸던 꿈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홈레코딩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서도 음악을 만들고 녹음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 


한때 내 꿈은 가수였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래퍼'였다. 10대 시절 우연히 들은 노래 하나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었고 그 후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랩을 따라불렀다. 계속된 연습의 결과인지 나의 랩 실력은 또래 친구들에게서 유명해졌고 시간이 지나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 '홈레코딩'을 통해 계속해서 나의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고 나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짧은 음악 활동은 끝나 버렸다. 그 후 가끔 노래방이나 가야 내 재능을 뽐낼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5년 동안 계속된 사회생활로 인해 나의 꿈은 완전히 잊혀진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15년 사회생활 곳곳에 나의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왔다. 어찌보면 회사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나의 능력 때문에 직장생활을 해옴에 있어 조금은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으로 나의 음악적 역량이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건 내가 24살 즈음 일이다. 당시 경북 구미시에 있는 모 중소기업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를 할 때였는데 회사에 새롭게 '유통사업부'가 출범을 했고 회사 홈페이지 구축이 한창이었다. 


당시 나는 수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음악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MIDI(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프로그램)를 처음 접하고 사용법을 익히던 시절이라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여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심심풀이로 우리 회사의 유통사업부에 어울릴만한 CM Song을 만들었다.


만든 음악에 재미있는 가사를 붙이고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녹음을 해서 다음날 유통사업부에 근무하던 동료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동료는 아주 흡족해 했고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냐길래 그러라고 했다. 단지 재미로 만들어 한번 들려줄려고 만든 노래였는데 홈페이지에 실린다니 나에게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출하검사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한창 제품 검사로 바쁜 시간인데 관리팀 부장님께서 출하검사실로 오셔서 CM song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곤 들려달라고 하시길래 컴퓨터로 만들어둔 노래를 들려드렸더니 직접 만든 노래라는 것에 아주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내가 만든 노래는 임원분들에게까지 보고가 되었고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기만 하면 내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무님께서는 기특하다며 당시 유통사업부 주력 제품이던 '차량용 냉온장고'를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온전히 음악을 해서 생긴 내 첫 수입이었다.


장기자랑을 통해 리더십과 기획력을 인정 받았다


▲ CS밴드 고객만족 UCC 제작을 위해 밴드 연습실에서 개사한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이후 몇년이 지나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대기업에 취업을 하니 중소기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나의 끼를 뽐낼 수 있는 행사들이 많았다. 꿈을 잠시 뒤로 미룬채 현실에 타협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들이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나간 행사는 '노래자랑'이었다. 단순히 사내 노래자랑을 넘어 방송으로 나가는 모 프로그램의 '임직원 특집'편이었다. 노래자랑 출전자는 회사 각 팀에서 1명씩 뽑고 지역별 협력업체에서 1팀씩 뽑았다. 팀 내 분위기는 다들 체면을 차리느라 하기 싫어 하는 눈치였고 나는 당시 팀 막내라 못이기는 척 노래자랑에 출전했다.


노래자랑 당일이 되어 리허설 시간에 맞춰 행사장소로 갔다. 대부분 각 팀의 막내들이 출전자로 뽑혀 나와 있었다.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리허설 무대에 올랐는데 나는 평범한 노래가 아니라 랩이 섞인 노래를 선곡해 신선함으로 다른 참가자들 기를 죽여 놓았다.


이후 저녁에 본 행사가 시작되었고 전 임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과 가족들이 노래자랑을 보기 위해 모였다. 아무래도 리허설 때보다는 좀 더 긴장되는 바람에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 부자연스러운 무대를 했다. 그리고 동상을 수상했다. 금상과 은상을 협력업체 직원들이 수상했기 때문에 임직원들 중에서는 내가 1등이었다.


그 노래자랑을 계기로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순식간에 전 임직원들에게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덕에 좀 더 편하게 조직에 적응할 수 있었고 동상으로 상품도 받아 기쁜 자리였다. 다만 너무 잦은 재방송으로 인해 어머니와 동네 주민분들이 자꾸 TV에서 봤다며 인사하시는 바람에 한동안 부끄러워 하기도 했다.


그 노래자랑을 계기로 회사에 이벤트가 생기면 나는 거의 전담으로 차출되곤 했다. 이후 몇해가 지나 고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사가 있었는데 각 지역 본부별 UCC를 1편씩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경남본부에 근무하던 본부장님께서는 '밴드를 결성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고 급하게 임시밴드가 결성됐다.


당시 직장인 밴드로 활동하던 3명의 멤버들과 함께 나는 보컬로 밴드에 합류를 하게 됐다. 우리는 회사에서 아침마다 듣던 그룹의 '사가'를 고객점 서비스에 맞도록 개사해서 부르기로 하고 연습에 매진했다.


UCC를 제출해야 하다보니 밴드 연습과 더불어 뮤직비디오 제작을 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방송국이다보니 제작팀이 있었고 제작팀 협조를 받아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회사 사무실에서 밴드팀원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지만 투명인간처럼 근무하는 직원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믹한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기획해서 무사히 UCC를 출품했다.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 뮤직비디오 속에 아는 얼굴이 나오니 신기했던지 다음날 사내 메신저를 통해 엄청 많은 반가움을 표시하곤 했다.


다음해에는 전사 행사가 있었다. 당시 2년에 한 번 정도씩 전국 임직원들이 한곳에 모였다. 오랜만에 타 지역 근무자들과 얼굴보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 행사가 열리면 각 지역 본부별 장기자랑 순서가 있는데 대표이사가 보고 있기에 그 경쟁은 아주 치열했다.


각 지역별 본부장님의 '면(面)'을 세워드리기 위해 지역본부 근무자들은 아주 치열하게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우리 본부에서는 대대로 그 해 신입사원들이 장기자랑을 준비하는데 몇 번 실적이 좋지 못했고 이번 전사행사에는 신입사원 이외에 내가 기획자로 투입되었다.


당시 전사행사 프로젝트팀은 오전 근무를 끝내면 오후 시간엔 댄스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당시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요제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한도전에서 만들어진 노래들과 다른 가요들을 우리 회사 상품 광고음악이나 문구를 인용해 리믹스 했다. 


만들어진 음악을 댄스학원 선생님에게 드리고 적당한 안무를 논의해서 신입사원들을 훈련시켰다. 리믹스된 음악을 들은 댄스학원 선생님은 '프로의 냄새가 난다'고 하시며 '누가 리믹스 했냐?'고 물으셨다. 혼자서 꾸준히 음악을 하다보면 익힐 수 밖에 없는 기술이었기에 나에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쑥쓰러움에 '잘 부탁드린다'는 대답을 했다.


전사 행사 당일, 나는 열심히 춤 연습을 한 신입사원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한쪽 구석에서 DJ 퍼포먼스를 하면서 마이크로 관객들의 흥을 북돋는 역할을 즉석에서 맡았다. 그 결과 우리는 그 행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성과를 내는 모습을 바라본 본부장님은 나의 리더십과 기획력을 높이 평가해주셨고 꼭 이일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 해에 창립기념일 모범사원 추천과 발탁 승진이라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이처럼 조직생활을 잘 하려면 '일'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은 기본으로 잘 해야 되는 것이고 그 이외에 자신의 장점을 다른 조직원들에게 홍보하는 것 또한 하나의 능력이고 역량이다. 나는 포기한 줄만 알았던 나의 꿈인 '음악'을 통해서 나를 홍보하고 조직생활을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꿈을 포기했다고 좌절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꿈과 거리가 멀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은 연관되지 않은 일이 없다. 얼마든지 내가 처한 현실에서도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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