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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Sep 05. 2016

욕 싫어서 결단 못 내려? 결과는 '노가다'뿐

[나는 고졸사원이다 62] 물류 프로세스 개선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박스포장 철거 반납된 장비들을 박스에 넣고 포장하는 작업을 2주동안 계속했다



단말기 창고가 건물 7층에서 6층으로 이사를 하면서 하나 하나 정리를 해나간지 약 2주가 지났다. 그동안 꾸준히 정리를 해나간 결과 창고에 있는 모든 장비의 시리얼 번호와 장비 위치가 하나의 엑셀 파일로 정리되어 내 PC에 저장될 수 있었다. 이제 매월 마감 재고조사 당일 창고의 모든 장비를 일일히 꺼내서 시리얼 번호를 스캐닝 하지 않아도 된다.


제조사에서 납품되는 신규 단말기는 1개 큰 박스안에 개별 포장된 5대의 장비가 들어있었다. 바깥에 포장된 큰 박스에는 안에든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가 바코드로 모두 붙어 있었고 5개씩 포장된 박스의 고유번호도 바코드로 정리가 되어 함께 붙어 있었다. 장비가 납품될 때면 실물과 함께 고유번호와 시리얼 번호가 정리된 엑셀 파일이 함께 e-메일로 도착했다.


그 엑셀 파일만 가지고 있으면 창고에 있는 단말기 재고수량은 물론이고 가지고 있는 장비의 모든 시리얼 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협력업체에 장비를 출고 시킬 때에도 내보낸 박스의 고유번호만 알면 어떤 시리얼 번호를 가진 장비가 출고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신품 장비는 그렇게 제조사에서 보내주는 데이터만 있으면 손쉽게 관리를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가입자가 해지하고 반납해온 중고 장비들이었다. 해지가 돼 철거된 장비들은 포장된 박스도 없었고 제조사에서처럼 관리하기 쉽도록 정리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철거 반납된 장비가 창고 구석에서부터 쌓이기 시작했던 것이 수백여대에 이르렀고 그렇게 정리되지 못한 장비들을 나에게 물려준채 내 선임은 서울 본사로 떠나버렸다.


창고를 이사하면서 철거 반납된 장비들을 박스에 담아 포장하기 시작했다. 소포장은 하지 않고 큰 박스안에 10여 대의 장비를 넣고 테이프로 봉인했다. 박스에 포장하기전 박스에 들어갈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를 스캐너로 찍어 엑셀에 기록한 뒤, 봉인한 박스에 임의로 정한 고유번호를 매기고 엑셀 파일에도 장비 시리얼 번호 옆에 박스 고유번호를 함께 기록했다.


일주일간의 정리, 결과는?


그렇게 약 일주일간 철거 반납된 장비들의 정리를 끝냈다. 그렇게 새로 만든 엑셀 파일 하나만 있으면 창고 어디에 어떤 장비가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매번 철거 장비를 재사용 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출고 시킬려면 보내야하는 장비들의 시리얼 번호를 일일이 확인했어야 하는데 이젠 박스의 고유번호만 확인하고 내보내면 됐다. 그 덕에 협력업체에서도 장비를 수령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 들어와 대기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나의 하루 일과 중에 상당 시간을 차지 했던 창고 정리 작업이 사라지면서 업무 시간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린일을 쳐내기 바쁘던 그 전과 달리 업무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 좀 더 챙겨야 할 일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부 정리'를 먼저 했으니 이제는 '외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협력업체 창고도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에서 상품 서비스에 필요한 장비는 모두 가입자에게 '임대'형식으로 서비스 기간동안 제공된다. 가입자에게 상품의 설치와 철거를 담당하는 곳은 협력업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비를 나보다 더 잘 관리해야 하는 곳은 협력업체였다. 협력업체에서 장비를 잘 취급하고 관리한다면 철거 되는 장비의 재사용율이 더 높아질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기존에 챙기지 않던 일을 챙기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많은 '잡음'이 생겨났다. 우리보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협력업체에서는 장비 관리 인력이 부족했고 우리 회사에서 내가 입사 초반에 겪었던 것처럼 하루 하루 창고 정리 하는 일만해도 시간이 모자라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업체에 당장 창고 관리 표준을 만들고 시행 요청을 해봤자 실제로 시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가장 큰 문제는 협력업체 대표자들의 인식이었다. 현장에서 설치나 철거 업무를 하게 되면 공수당 비용이 정산되어져 협력업체 매출이 되지만 장비관리 업무는 협력업체 입장에서 돈을 벌어 들이는 업무가 아닌 돈 까먹는 지출 부서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협력업체 장비관리 담당자들은 회사에서 가장 어리고 값싼 인력들로 구성돼 있었다. 소위 '짬'이 안 되는 사원들이다보니 현장에서 설치나 철거를 담당하는 기사들에게 치여서 장비 관리 업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신을 가지고 내린 '결단'과 '실행'... 변화를 가져왔다


▲ 변화 소신을 가지고 진행한 업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게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걸려도 협력업체의 내부 상황을 잘 해결해야만 장비관리 업무 전체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근과 채찍' 작전을 써서 상황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 당근 작전으로는 제조사와 협의하여 납품되는 신규 장비에 대해 우리 회사 창고가 아닌 각 지역별 협력업체 창고로 납품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협력업체 담당자는 하루에 한번꼴로 우리 회사 창고에 장비를 수령하러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게 줄어든다.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협력업체에서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제조사에서는 한곳으로 납품하면 되는 일을 소량으로 여러 군데 납품을 해야 했으므로 납품 단가가 올라간다. 그렇기에 나의 요구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달에도 수억원치씩 물건을 판매하는 제조사로써는 나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고 그렇게 '직배송'이라는 타이틀로 한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직배송을 무기로 협력업체의 구조를 조금 더 바꿔보기로 했다.


가입자에게 철거 되는 장비는 전량 우리 회사에 반납해서 '클리닝' 작업을 거쳐 다시 재사용이 된다. 깨끗하게 닦고 필요하면 케이스 교체를 하는 일이었는데 그것보다 제대로 포장 안된 장비들이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파손되는 일들이 잦았다. 그래서 철거 장비도 물류 개선작업이 필요했다.


신품 장비의 직배송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철거 장비도 각 지역별 협력업체에서 클리닝 작업을 직접 하도록 했다. 처음엔 안해도 되던 클리닝 작업을 해야 하는것에 반발이 생기기도 했지만 매일 반납하러 멀리까지 왔다 갔다 해야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클리닝 작업을 직접하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렇게 매일 같이 먼거리를 왔다 갔다 이동하던 장비들의 이동량을 현격하게 줄였다. 그 결과 부족하던 인력들의 업무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작전, 경쟁, 성공적


각 업체 담당자들의 업무 시간 늘리기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밀린 창고 정리 시간을 준 뒤 나는 업체 창고 '정기 점검'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 방문 활동을 강화했다. 각 협력업체 창고를 방문하면서 장비의 보관상태나 취급 주의 교육을 시켰고 지적 사항이 발생되면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잘된 사례와 못된 사례를 전체 협력업체 대표자와 담당자들에게 공유했다. 그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력업체에서는 변화가 생겨났다.


'돈만 쓰는 업무'라서 관심을 가지지 않던 협력업체 대표들이 각 지역별 업체 현황을 낱낱히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하기 시작했다. 워스트 업체로 뽑힌 곳은 잘 된 업체들을 보면서 따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현황을 보기 좋게 만들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협력업체 대표들의 인식개선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일은 바로 장비 분실로 인해 물어내던 '변상금'이 대폭 줄어들어서다. 막내에게 아무렇게나 맡겨놓고 신경도 쓰지 않던 시절에는 재고조사때마다 수십여대의 장비를 찾지 못해 돈으로 손해 배상을 해야했다. 하지만 시스템 개선 이후 놀랍도록 깔끔해진 창고와 더불어 확 줄어든 변상금으로 인해 돈을 벌지는 못해도 쓸대 없이 지출되는 돈을 '아낄수 있는' 업무로 인식이 변했다.


입사하고 처음 협력업체 담당자들과 만났을 때 그 들에게 들었던 나에 대한 평가는 '나이 어린 신입 사원이 막무가내로 일을 한다','싸가지가 없다' 였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말이 듣고 싶진 않았지만 소신껏 업무를 하나씩 정리 해나갔고 이후에는 협력업체 담당자들에게 '덕분에 회사에서 나의 입자가 많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만약 그 때 사람들에게 안좋은 소리 듣는 게 두려워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행'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이후에도 계속 어지러운 창고안에 쳐박혀서 하루 종일 '노가다'만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업무가 조직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고민된다면 스스로가 내 일을 가치있는 일로 만드는 데 집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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