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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Jul 31. 2017

업무에 무관심했던 팀장, 사원과의 약속 지켰던 본부장

[나는 고졸사원이다 69] 좋은 리더 만나기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긴급 상황실 '신 영업 시스템' 문제로 본부장실에 긴급 상황실이 개설됐다         


회사의 새 전산 시스템인 '신 영업 시스템'이 오픈하고 현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 혼란을 예상하고 착실히 대응방안을 마련해온 나는 일약 회사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기술부서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영업관리쪽에 가까운 직무를 담당하다보니 항상 기술부서 내에서 소외되고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저평가 받기 일쑤였다. 그 시선이 이번에 싹 바뀌게 됐다.


3년째 우리팀을 맏고 있는 팀장님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 대해 항상 '잘 몰라서...'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뭔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거나 협력업체별 월말 결산 보고를 올리면서 무언가의 대안을 제시하면 항상 돌아오는 답변은 '잘 몰라서...'였다. 처음엔 직무 성격이 다른 업무이다보니 기술팀장으로써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해 초등학생 수준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또 설명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무관심'이라는 걸 알게됐다.


현장에 이렇게 큰 여파를 끼칠 '신 영업 시스템'의 오픈을 미루고 개선해야한다고 말할 때에도 팀장님이 관심 없다보니 더 위로 보고가 될리 만무했다. 그렇게 결국 일정대로 시스템이 오픈됐고 현장은 마비됐다.


본부장실에 '컨퍼런스콜(전화회의시스템)'로 전사 긴급 상황실이 개설됐다. 거길 들락 날락 거리면서 하나씩 현장의 업무를 대응해 나갔다. 그 일이 평소에 쌓아온 내 역량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우리 부서의 팀장님은 부서의 업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능력없는 리더' 이미지를 갖게됐다.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나는 중간에서 불편해졌다.


어느정도 현장이 수습되고 나는 본부장님과 부쩍 가까워졌다. 현장 업무에 대한 시찰을 나갈 때면 본부장님은 팀장님이 아닌 나와 동행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 발생하다보니 팀내에서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뒷담화가 늘어갔다. 그걸 알면서도 본부장님의 업무지시를 거역할 수는 또 없었기에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했다.


이 일로 인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에 대한 회사내 관심도는 급격히 올라갔다. 그 덕에 내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의 기획서는 줄줄히 승인됐다. 그 덕에 '전사 최초' 타이틀을 달고 업무를 진행해 전사 베스트 사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는 본부장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한번은 본부장님께서 현장 시찰을 나가는 도중 이동하는 차안에서 그런 말씀도 하셨다.


"OOO님(팀장)은 장비관리 업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는것 같던데..."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직접 이렇게 말씀하시니 난처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닙니다. 다 팀장님이 평소에 관심가져 주셔서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라는 솔직히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본부장님은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며 더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몇달 뒤 정기 인사 이동에서 우리팀은 팀장 변경이 있었다. 3년이나 우리팀을 맡고 있었기에 이동 할 때가 됐긴하지만 더 오래 이동하지 않고 있는 팀장님들도 있기에 나는 괜히 마음이 쓰였다.


새로 우리팀을 맡은 팀장님은 서울 본사에서 내려오신분이었다. 팀장님들중에 나이가 아주 젊은 축에 속하셨고 평소 군대문화를 좋아하던 기존 팀장님과 달리 아주 합리적이고 인간적인분이셨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대부분이, 심지어 연말에 평가를 잘 못받은 팀원들도 그리 말을 했으니 팀원들에게 진심으로 대한 분이라는건 분명한 사실인듯 했다.


본부장님 참석... 회의 분위기는 180도 반전됐다


▲ 회의 갑작스런 본부장님의 회의참석으로 회의 분위기는 180도 반전됐다         


팀장님이 바뀌기 직전에 나는 전산 시스템 개선안에 대해서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를 했고 본부장님의 지원으로 본사 전산부서와 미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팀장님이 바뀌어 업무 진행에 차질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됐다. 현업의 솔직한 애로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개선 요청을 하려는 미팅자리에서 팀장없이 일개 담당자 혼자서 조직 내의 그 미묘한 '기 싸움'을 이겨내기란 힘들었다.


미팅 당일이 됐고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도착한 전산부서 사람들과 함께 한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지만 이번 일이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야했다. 같은 회사 사람들이지만 부서별 정치와 이해관계들 때문에 현업에서 힘들어하는 시스템 구조도 바꾸고 싶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팀장 없이 우리 파트원들끼리 전산부서 사람들에게 시스템 개선 요청사항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 하나 하나를 다시 되짚어보면서 되는 일과 안되는 일에 대해서 협의를 시작했고 결국은 '불가'통보를 많이 받게 됐다. 분명 회사에서 매출을 발생시키는 현업의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안된다는 답변을 하는 그 담당자와 결국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기 일보직전이 됐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열리고 본부장님께서 들어오셨다. 팀장부재로 오늘 미팅에 본부장님께서 대신 참석하기로 하셨다가 대표이사님과 관련 임원분들께서 지역 본부 현장탐방을 오셨기 때문에 미팅에 참석을 하지 못한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실에 본부장님이 나타나서 살짝 놀랐다.


본부장님이 참석하시고 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다시 브리핑을 했고 우리의 개선 요청사항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역시 조직은 '짬'이다.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원하는걸 대부분 얻어낸 나는 완전 기분이 좋아졌다. 전산부서 사람들을 배웅하고 본부장님과 함께 차 한잔 하며 여쭈었더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마음에 걸려서 대표이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먼저 빠져나오셨다고 한다.

조직 구성원으로서 대기업의 임원급인 본부장님께서 일개 사원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더 어려웠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약속을 지켰다. 이렇게 멋진 사람, 어찌 이 리더를 따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그 날 이후로 더욱 본부장님을 존경하게 됐다. 그리고 그 회사를 다닌 8년간 여려명의 본부장님을 모셨지만 그 분과 같은분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조직에서 리더를 잘 만나는 것도 천운이다. 그리고 같은 리더라 할지라도 스타일에 따라 나와 맞는 사람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약 본부장님이 군대문화를 좋아하고 조직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분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나는 지난 8년간 받은 고과 평가 결과서를 보면서 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소신껏 옳다고 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나의 평가결과도 다르고 평가하는 기준도 달랐다. 조직에서 당장 나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꾸준히 소신을 가지고 역량을 쌓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빛 볼날이 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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