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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Jan 24. 2018

"갈치 꾸이 주세요" 부산 촌놈, 제주도를 가다

세른네 살 백수의 '난생 처음' 제주도 여행기

     

▲ 이호비치 34년만에 난생처음 만난 제주도의 바다 


2015년 4월 7일. 올해 나이 서른넷. 바쁘게 살아온 나날을 뒤로하고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을 먹은 지 한 달가량 지났다. 퇴직하기 전에는 그간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한동안 쉬면서 나에게 작은 포상 휴가를 주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나와 소속 없는 '무적 백수'가 되고 나니 약간은 마음에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퇴직하기 전부터 조금씩 준비했던 나의 일. 운 좋게도 퇴직하기 일주일 전부터 많은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한동안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마음과 달리 '당장 이번 달부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보니 역시 일은 있을 때 열심히 해야하는 것 같다. 현재 2주째 일이 별로 없는데 왠지 불안하다.


음력 2월이 상대적 비수기라 여유있을 때 휴가를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다. 일정은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였다. 하지만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 19세부터 장장 15년간 직장 생활만 죽어라 해온 터라 막상 혼자 여행을 가려고 하니 뭐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난 게 우리 사촌 누나다. 사촌 누나는 시댁이 제주도라 제주도를 내 집 가듯이 자주 왔다 갔다 한다. 매형이 제주도 사람이다 보니 제주도를 오죽 잘 알겠는가. 처음엔 돈 좀 들여서라도 해외 여행을 한 번 다녀올 참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난 아직 제주도도 한번 못가 본 '촌놈'이었다. 


드디어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다 


▲ 제주도 여행일정 사촌누나가 짜준 제주도 여행일정 


2007년. 나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비행기를 처음 탔다. 당시 경남 김해시에서 근무했는데, 일주일간 서울 교육 출장이 잡혀 난생 처음 비행기라는 걸 타볼 기회가 생겼다.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일 때문에 서울을 가는 건데도 '비행기'라는 단어에 마냥 설렜다. 


함께 가는 동료가 KTX를 타자는 걸 비행기 한 번도 타보지 못했음을 어필하며 비행기를 타자고 졸랐다. 다른 동료들이 비행기 처음타는 내게 비행기 탈 땐 신발 벗고 타는 거라며 놀려댔지만, 비행기 탈 생각에 마냥 신났다. 당시는 지금처럼 많은 저가 항공사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을 가는데도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그 뒤 서울에 자주 출장을 오가며 비행기 타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스스로 어딘가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본 적은 아직 없었다.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그 비행기가 처음일 것이었다. 


사촌 누나와 함께 간단히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생각했다. 마냥 계획만 세우고 있으면 내 성격 상 또 집에 있을 확률이 클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다가도 매번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오기 일쑤인 성격이다. 이번에야 말로 일단 무작정 '지르고 보자'고 생각했다.


▲ 빨간등대 어딘지 모를 해안가 방파제에서 


비행기, 게스트하우스, 렌트카를 예약했다. 세상에나 3박 4일 제주도 여행 경비가 고작 13만 원에 해결됐다. 직장을 다닐 때 제주도를 가려면 주말이나 휴가철 아니면 못 갔는데, 그런 성수기 시즌을 생각하면 이번엔 비행기 편도 값인 거다. 언젠가 책에서 부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본 내용 중 부자들은 남들 휴가갈 때 휴가를 안 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부자일수록 돈을 더 가치 있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많고, 남들 휴가랍시고 신나게 돈 쓸 때 그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할 때 훨씬 저렴한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대우 받는 휴가를 보낸다고 했다. 직장인일 때는 상상도 못할 평일 여행 일정을 짜고 예약을 하고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났다.


그렇게 나의 난생 처음 제주도 여행은 시작됐다. 비행기를 저렴한 시간대에 예약하다보니 수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 공항에 저녁 6시에 도착했고 렌트카를 빌리고 나니 해가 어둑 어둑 지고 있었다. 일단 숙소에 가서 짐부터 풀자는 생각에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TV에서 보거나 말로만 듣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 입성했다. 내가 묵은 방은 2층 침대가 4개(총 8석) 있는 방이었는데 2층에 2자리 빼곤 모두 사람이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달리 제주도 여행객은 평일에도 많았다. 그런데 확실히 평일이라 직장인은 거의 없었고 내가 묵은 방엔 외국인 관광객과 주로 대학생 여행객이었다.


나는 3박 4일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옮기지 않고 한곳에 머물렀다. 렌트카 없이 여행할 생각일 땐 여기저기서 하룻밤씩 자려고 했는데 렌트카를 빌리는 바람에 매일 짐싸서 들고 다니는것도 귀찮고 해서 한 곳에서 다 지내기로 했다. 그 덕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된 사장님의 스토리와 나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던 젊은 친구들의 인생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직장에서는 나와 똑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우물 안 개구리'들과만 어울리다 보니 매일 하는 이야기가 험담이나, 신세 한탄이 전부였는데 여기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나누는 이야기는 새롭고, 즐겁고, 유익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내게는 적절한 '동기 부여'가 됐다.


둘째날 아침. 첫날이라 어색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뻘쭘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누나가 추천해준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아침을 먹고 본격적으로 제주도 여행에 나섰다. 


첫번째 코스는 '한림 공원'이었다. 제주도 렌트카 특화 내비게이션인 '아틀란'에 한림공원을 찍고 출발했다. 10여 분쯤 달렸을까? 이정표에 '해안 도로'가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과 상관 없이 해안 도로로 향했다. 그렇게 처음 도착한 곳은 '이호비치'옆 방파제였다. 이호비치에서 처음 본 제주도 바다. 그 투명하게 비치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에 반했다. 그 때부터 나의 제주도 여행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급 선회한 것이다.


▲ 예쁜집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돌면서 발견한 예쁜집. 


▲ 캠핑 곽지리 한적한 송림에서 한팀이 한적하게 캠핑을 즐기고 있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꼭 제주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건 바로 해변 옆에 있는 야영장들이었다. 그림같은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야영장. 지금껏 산속으로만 찾아 들어갔던 나의 캠핑에 있어 회의감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을쯤 꼭 캠핑 장비들과 차를 배에다가 싣고 제주에 와야겠다.


봄의 제주를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를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유채꽃'이다. 확실히 제주에 유채꽃이 예쁜 곳이 많았다. 드넓은 유채꽃밭이 보여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그 유채꽃밭이 개인 소유의 유채꽃밭이라 돈을 내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 많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즐기는 데 돈을 내고 사진을 찍자니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호비치를 떠나 해안 도로를 타고 한림쪽으로 가다 보면 '남도리 쉼터'가 나온다. 길가에 예쁜 유채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바로 앞에 멋진 제주바다 풍경까지 펼쳐져 있어 노란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기다가 더 훌륭한 건 '공짜'라는 것이었다.


▲ 유채꽃 봄, 제주를 뒤덮은 유채꽃 


▲ 협재해수욕장 한산한 봄의 협재해수욕장, 한 커플이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본 제주 바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곳. 바로 협재 해수욕장이다. 하얀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협재 해수욕장의 바다는 마치 어릴 적 문구점에서 판매하던 엽서 사진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3다도'로 불렸다. 3다는 돌, 여자, 바람이 많다는 뜻이다. 3다도 답게 협재해수욕장 백사장에 나가니 엄청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런 바람이 백사장에 빗살무늬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3월 한산한 제주의 여유를 느끼며 해안 도로를 달리다가 처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모인 곳을 발견했다. 서귀포시에 있는 '송악산'이다. 송악산을 '마라해양도립공원'이라고도 한다. 송악산 가 쪽으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약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크게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되어 있어 체력에 큰 무리는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송악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마라도'가 보이기도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멋진 해안 절경구경은 덤이다. 퇴적층 구조로 만들어진 해안 절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 돌담 유채꽃길 제주 민속촌 입구에 유채꽃 만발한 예쁜 산책길이 있다. 


분명 크게 무리없는 코스라 생각했는데 송악산 일주를 하고 난 다음 종아리 근육이 아파서 며칠을 고생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일도동에 있었는데 숙소 근처에 '제주동문수산시장'이 있다. 도착 첫날 저녁도 먹을 겸 수산시장 구경을 나갔는데 시장에 판매하는 제주갈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길이가 족히 1m는 되어 보였다. 이렇게 큰 갈치를 직접본 건 처음이었다. 


제주도는 갈치가 유명한걸 말로만 들었지 수산 시장에서 직접보고 나니 안 먹어 볼 수가 없었다. 둘째날 점심에 해안가의 어느 식당에 들어가 갈치 조림을 달라고 했는데 조림은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고 했다. 혼자 여행의 아쉬운 점은 바로 식사다. 맛있는 음식 중 2인 이상 주문해야만 먹을 수 있는 게 많다.


▲ 갈치구이정식 제주 은갈치구이 정식 1인상 


구이 종류는 1인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갈치 구이를 주문했다. 잠시 식당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고향이 같은 부산이었다. 게다가 부산에서도 한 동네. 참 신기한 인연이었다.사장님은 내가 '갈치구이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부산 사람인 걸 알았단다. 부산 사람은 발음이 세서 '구이'가 아니라 '꾸이'라고 발음을 한다고 하는데 난 아직도 내가 '구이'라고 한 것 같다.


아름다운 제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번 제주여행에서 내가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곳. '천지연 폭포'와 '정방폭포' 2군데다. 원래가 나는 '짠물'보다 '민물'을 좋아한다. 여름에 놀러 가도 바다가 아닌 계곡을 선호한다. 


▲ 천지연 폭포 늦은 오후에 들른 천지연폭포. 비가 안와 수량은 많지 않았다. 


▲ 외돌개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인 외돌개. 외돌개에는 장금이 포토존이 있다. 


제주하면 '바다'지만,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라 지하수가 발달해 있고 한라산부터 내려오는 '민물'도 꽤 좋다고 들었다. 제주의 민물을 대표하는 폭포 2곳. 여기는 꼭 보고 싶었다. 특히나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정방 폭포는 정말 멋있었다. 정방 폭포는 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하게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라고 한다. 그 만큼이나 희소가치가 있는 명소다.


일명 '장군바위'라고도 불리는 '외돌개'는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라고 한다. 외돌개 전망대에 올라가니 대장금인 이영애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나도 얼굴을 넣고 셀카봉으로 사진 한방 찍고 싶었는데 뒤에서 기다리는 커플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다는 생각에 셀카는 포기했다.


셋째날은 둘째날에 이어 제주도 최남단부터 동쪽 해안을 타고 돌았다. 날씨 탓인지, 전날 게스트하우스 동기들과 마신 술에 의한 숙취탓인지 둘째날 보다는 볼거리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표선면 토산2리 공원을 보고는 차를 세웠다. 제주도엔 이렇게 길가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공원들이 많은데 이 조차도 다 볼거리다. 하나도 허투루 만든 것 같지 않았다.


토산2리 공원에는 어머니 조각상이 있는데 그 아래 '김승률'씨가 어머니께 바치는 편지가 있다. 제주도에서 여행을 하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 울컥했던 순간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표선비치와 제주 민속촌 사잇길은 유채꽃이 양쪽으로 화사하다. 특히 민속촌으로 들어가는 쪽 방향의 길은 돌담길 옆으로 조그만 산책로가 나 있는데 왼쪽으로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어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봄에 제주에 온다면 꼭 걸어봐야 할 길이다.


지나가다 미술관이나 박물관같아 차를 세웠는데 전원 주택 같아 보였다. 따로 만들어진 대문은 없지만 마당이 명확하게 표시가 나는 예쁜 전원 주택. 마당에서 2차선 해안 도로만 건너면 바로 제주 바다다. 이 집을 보니 내륙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 내려와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사촌 누나가 제주에 가면 그래도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성산일출봉이라고 했다. 아침에 일출 보기엔 일정이 짧아 무리라고 생각돼 낮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변덕 잦은 제주의 날씨. 둘째날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가 셋째날은 흐리고 비가 왔다가 넷째날은 또 엄청 맑았다. 날씨 덕분에 성산일출봉 구경은 다음을 기약하며 멀리서 사진만 담아왔다.


짧은 3박 4일간의 제주도 여행. 실제로 첫날은 저녁에 도착했고 마지막 날도 오전 일찍 올라왔으니 실제론 이틀간 제주도를 돌았다. 짧았지만 3월의 한산한 제주도의 봄을 느끼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로 돌아오는 1시간여 비행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나 금방 올 수 있는 곳인데 대체 '난 무얼 한다고 여태껏 우물 속에서만 살아온건가...'하고 말이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많은 여행 친구들에게서도 삶의 여유와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그 에너지를 발판 삼아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마음편히 뗄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내 친구 영재, 언제나처럼 밝은 모습으로 잘 생활하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진성이. 이제 며칠 뒤면 군에 입대하는 주식투자의 귀재 유열이. 종이컵과 치킨으로 만난 같은 백수 보연씨, 과음하고 성산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약속 못지켜 미안한 두산베어스 팬 우정씨,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 나지만 혼자와서 선뜻 우리 장난 잘 받아주고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주신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분, 그리고 3박 4일 동안 나의 집이었던 우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들. 모두 다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 갑시다. 또 언젠가 만날 날을 기약하며...


▲ 게스트하우스 3일간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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