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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Sep 05. 2017

'병가' 후 인사고과 C등급, 15년 직장생활이 멈췄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74] 마지막 이야기, 잊었던 꿈을 위해 '지옥'으로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미팅룸 평가 결과 면담을 위해 빈 회의실에서 팀장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지난 1년간의 고과 평가 결과 면담을 위해 회의실로 들어갔다. 들어간 회의실에는 팀장님이 수첩을 하나 펴 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고과 평가에 대한 절차는 연초에 담당자가 팀장과 함께 논의해 자신이 세운 연간 목표가 적절한지 결정하는 미팅, 연 중간에 진도 사항에 대해 체크하고 코칭을 받는 미팅, 최종 평가하기 전 결과에 대해 조율하는 미팅, 최종 결과 통보 미팅 총 4번의 미팅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팀장은 나머지 미팅들을 다 생략한 채 마지막 최종 결과 미팅만을 진행했다.

예전에는 담당자가 일년 동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본사에서 내려온 지역본부, 팀 단위로 내려온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항목 중 본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항목을 내려받고 나머지 배점에 대해서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서 중요도에 따라 팀장과 논의하여 담당자가 직접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KPI 항목과 배점을 팀 단위로 내려온 항목들을 담당자 직무와 상관없이 임의 배분 형태로 목표를 내려주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팀원들이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에 연말 고과 평가의 '정량적' 의미가 없어졌다. 그 결과 평가자인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를 일삼는 팀원들이 생겨났고 결국 회사는 '정치판'이 되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그 누구도 고과 평가에 대한 프로세스를 준수하지 않는 팀장이나 목표를 임의 배분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최종 평가결과가 나온 뒤에도 '이의 신청'하는 시스템이 있어 재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의 신청을 해봐야 그 신청자만 상부에 '찍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그런 시스템조차도 사라졌다.


최종 결과 미팅을 하기 위해 방 안에 들어가 팀장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약 5분 가량의 서론과 함께 나의 평가 결과가 'C'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의 평가 등급은 S,A,B,C,D 총 5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C등급은 하위 30% 성과의 사원들에게 주어지며 내년도 연봉 동결과 인센티브 지급에서 기본 지급율보다 적은 지급율을 받게된다.


갑상샘암 투병을 하고 복귀해 건강 챙기고 나의 개인 생활을 좀 더 즐기기 위해 지난 1년간 '눈치'를 보지 않고 다니려고 애썼다. 물론 내 성격상 일은 확실히 해야 하기에 남들 담배 피고 놀 시간에 쉬지 않고 업무를 진행했고, 가능하면 별 무리 없이 정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퇴근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일의 종결 여부와 상관없이 상사들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임 담당자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 업무 안정화를 시킴으로써 여유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제 시간에 퇴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런 실적과는 상관없이 나의 평가 결과는 '새로운 업무를 담당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 같다'는 피드백과 함께 입사 8년 만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C'등급을 받았다.


나는 취미가 '일'인 사람이다. 항상 일하는 게 즐거웠고 회사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 회사에 가서 새롭게 시도해볼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새롭게 변화될 모습에 설레어 밤잠을 설치기도 해봤다. 그만큼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어쩌면 일에 '집착'하는 사람같이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할 줄 아는 건 '일'뿐이었고 그걸 잘하는게 나에겐 '보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전 중소기업 여러곳을 다닐 때에도 나는 항상 또래 친구들보다 일을 잘했고 빠른 승진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의 대기업에 입사해 8년을 다녔지만 내 고과 평가결과는 거의 상위 30% 이내 고과등급을 주로 받아왔고 암 진단을 받아 병가를 내기 한해 전에는 상위 3%만 받는 'S'등급의 평가를 받고 발탁승진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내가 'C' 등급의 평가를 받다니 헛 웃음이 났다. 병가 후 복귀를 하면서 내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하며 1년간 직장을 다녔는데 망설이기만 했던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 면담자리에서 바로 '사직'을 이야기 했다. 농담처럼 나는 입사 초반부터 '내가 평균 등급보다 낮은 고과를 받으면 더 이상 이 조직에 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니 그만두겠다'고 말했었다. 자연스럽게 그 공약도 지켜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3108일간 다녀온 난생처음 나의 첫 '대기업' 생활을 끝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직장생활도 여기서 멈추게 됐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더이상 나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의 인생은 저글링과도 같다


▲ 인생은 저글링 인생의 행복에 대한 특강을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직장을 다녀온 15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가족이나 친구가 우선이었던적이 없었다. 항상 '회사'가 1순위였다. 그건 나 아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정작 내 곁에 있는 건 '회사'가 아니었다. 내 가족과 내 친구들이었다.


정작 내가 몸이 아파서 죽을지도 모를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명 강사나 유명한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얘기할 때 그게 무슨말인지도 몰랐고 눈 앞에 있는 승진, 연봉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단 한번의 계기로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하고싶은 일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대로 계속 회사만 다녀서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죽음'앞에서 '행복한 인생이었다' 말할 수 없음을... 


인생은 5개의 공을 굴리는 저글링과도 같다고 한다. 진실, 가족, 건강, 친구, 일이 그것인데 이 중 '일'은 고무공으로 만들어져 있어 실수로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르지만 나머지 4개의 공은 유리공이라 한번 떨어뜨리면 깨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껏 우선순위가 뒤바뀐 인생을 살아온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태껏 수많은 회사를 겨쳐왔다. 그 중 규모가 너무 작아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며 지냈던 적도 많고 다녔던 회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곳도 있다. 다른 직장을 구하면서 생활비에 시달리며 초조함을 느낀 적도 있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떻게든 일과 직장은 해결이 됐던 것 같다.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15년간 일만 해오던 나는 친구와 가족들과 멀어졌고 암 진단으로 건강마저 잃어버렸다. 이제는 죽을 때까지 아침에 눈 뜨면 약을 먹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일하고는 달리 내 인생에 있어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15년이 지나서야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했기에 15년을 보냈어도 아직 3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진짜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게 됐고 항상 곁에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2015년 3월 8일, 나는 지난 1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회사 안은 '전쟁터' 바깥은 '지옥'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지옥 안에서 나의 '행복'을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난 지금부터 잠시 잊고 살았던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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