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로 기사쓰기, '좋은' 마약같습니다
2015년 1월 29일.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소위 말해 '말년'을 즐기고 있을 때쯤 <오마이뉴스>에 가입하고 첫 번째 기사를 썼다. 당시 내가 재직하고 있던 직장 안에서의 부조리와 나를 포함한 사원들이 느낀 점을 다룬 기사였다. 기사를 편집부로 송고하고 몇 시간이 지나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편집부 담당자는 나에게 '기사가 실명으로 나가는데 현재 직장안에서의 신변이 괜찮겠냐'고 물었다. 기사 내용을 보고 걱정이 된 모양이다. 편집부 담당자분의 말을 듣고 나니 아직까진 내가 이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기사를 올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오마이뉴스와의 첫 만남
내가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건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나의 인생사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알고보니 이 책은 오마이뉴스 인기 연재글을 책으로 묶어 발행한 것이라고 한다.
공대를 나와 벤처기업에 근무한 경력을 가진, 작가치고는 특이한 이력의 저자 임승수 작가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간 책이기도 하다. 그 책을 읽으며 오마이뉴스의 문은 항상 열려있고 매체의 파워 또한 대단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 글도 연재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오마이뉴스에 회원가입을 하고 연재기사를 쓰려고 하다보니 연재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의 조건이 정해져 있었다. 최근 3개월 내 '버금' 이상 기사 5개. 그 내용을 보고는 좌절해 오마이뉴스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바쁘게 지내다 15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니 내 생활에 약간의 여유가 생겨났다. 그렇게 다시 생각난 오마이뉴스. 그렇게 나는 첫번째 기사를 썼다. 하지만 편집부 담당자와의 통화 끝에 결국 기사화 되지 못하고 스스로 '생나무' 처리를 해달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내 '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첫 번째 기사 이후 며칠 간격으로 블로그에 써두었었던 내 직장 이야기들을 기사로 송고했다. 아직 퇴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자체 심의를 거쳐, 실명 기사로 떠도 무방할만한 글만 보냈다. 하지만 2번 연속 '생나무' 처리되었다. 첫 기사부터 감이 좋았는데 연속 3개의 글이 모두 생나무 처리 되고 나니 조금은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한달이 넘도록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4번째 기사를 쓴 건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백수가 된 뒤였다. 역시나 내가 미리 써두었던 글 중에 사람들의 호응이 괜찮았던 글을 송고했다. 연속 3개의 기사가 생나무 처리되고 난 뒤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다음 날.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둔 오마이뉴스 앱에서 알림이 뜬다. 내 기사가 '잉걸'로 채택 되었단다. 바로 접속해서 내 기사를 확인했더니 정식기사로 채택되어 원고료도 발생이 되었다. 이 순간의 기쁨은 마치 내가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했을 때 보다 더 컸던 것 같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글쓰기로 돈을 벌다니. 돈의 액수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마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일로 번 돈인가가 중요할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이제 나를 '기자'로 불러달라며 호들갑을 떨고 다녔다. 내 기사를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지인들에게 읽으라고 강요했다. 착한 내 지인들은 그런 나를 대단하다며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기사를 쓰는 데 매력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내가 쓴 기사는 3번 연속 생나무 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한번도 정식기사가 채택되지 않았을 때 계속 생나무 처리되던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오히려 의욕이 더 불타 올랐다. 잉걸이라는 '희망'을 봤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연재기사와 더불어 '뉴스 게릴라' 명함을 꼭 갖고 싶었졌다.
드디어 '포텐'이 터졌다
▲ 3/22 오마이뉴스 메인면 나의 첫 '오름'기사인 하객대행 기사가 오마이뉴스 TOP면에 실렸다.
첫 정식기사가 채택되고 일주일 뒤. 드디어 '포텐'이 터졌다. 내가 지난 1년간 아르바이트 삼아 해오던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체험기를 기사로 썼는데 그 기사가 오마이뉴스는 물론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각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것이다.
처음에 오마이뉴스 메인(오름)에 뜬 걸 보고 엄청 놀랐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는데, SNS를 통해서 지인들이 '네이트 시사차트 6위'에서 내 기사를 봤다는 제보와 함께 다른 포털 사이트에도 내 기사가 걸려 있다는 걸 알려줬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주로 오마이뉴스에 접속하면 정치이야기들이 오름란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일상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오름이 될 수 있을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기사가 오름에 걸리고 나니 '오마이뉴스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게 거짓이 아닌 진짜임을 알게 되었다.
포털사이트들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포털사이트에 뜬 내 기사들을 찾아 들어가보니 달린 댓글들이 수백 개에 달했다. 처음에 몇 페이지 읽어보다가 너무 많아서 다 읽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하객대행 업체에서 전체 쪽지가 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내 기사를 보고 엄청난 아르바이트 문의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엔 내가 쓴 기사를 보고 인터뷰하고 싶다면서 해외 언론사 2곳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협의 중에 내 인생 신조와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거절을 했지만 이런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글 쓰는 데 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편집부 담당자와 통화할 때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하던 내가 농담까지 주고 받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있어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진심을 담은 이야기인 '쿨하게 사표' 쓴 이야기가 또 다시 오름에 올랐다. 이어 블로그를 하다 경찰조사 받았던 이야기도 오름, 제주도 여행기사는 버금 연이어 내 기사가 메인에 줄줄히 걸렸다.
이제는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수시로 접속해서 내 기사의 검토결과를 조회한다. 나는 도박을 놀이로도 전혀 하지 않는데 마치 도박판에서 패를 까볼 때의 긴장감이 이렇지 않을까? 긴장되지만 끊을 수 없는 중독성. '좋은' 마약같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었다. 서랍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는 내 학창시절 상장들이 대부분 글짓기 대회에서 받아온 상장인 걸 보면 그 때부터 '글빨'이 좀 있게 쓴 것 같다. 직장에서 거래처에 메일을 보내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보고서를 쓸 때도 나는 다른 동료들보다 글 쓰는 데 막힘이 없었다. 글 쓰는 걸 힘들어 하는 동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들과 나에겐 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단지 진심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자꾸 이야기를 포장하려고 한다. 진심을 담아 쓴 글은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에 자연히 '좋은 글'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한창 진행 중인 나. 오마이뉴스는 나의 숨겨져 있는 재능을 세상 밖으로 꺼내준 고마운 매체다. 이제 버금 이상인 기사 1개가 남았다. 그러면 연재기사를 쓸 수 있는 조건도 명함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도 채워진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일.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이라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