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⑧] 공모전과 지원사업
열아홉의 나이로 사회에 나와 꼬박 15년 동안을 나 자신과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일만 하며 살았다. 그 결과 나는 '암' 선고를 받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암 치료 하고 직장에 복직한 지 1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더 높은 연봉과 승진만을 바라보며 살던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게 되었고 큰 돈을 벌지 못해도 내 능력으로 벌어들인 약간의 수익으로 큰 지출 없이 소소하게 사는 게 일상의 행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1인기업가로 살아가며 '외로움'이 찾아 올 때쯤 창원의 한 창업모임에 나갔다가 거기서 만난 청년들과 우연한 계기로 콘텐츠 회사를 공동창업하게 됐다.
그냥 재미로 시작한 '놀이'가 점점 주변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매달 한 편씩 만들던 패러디 동영상을 우리가 창업 모임을 하던 장소였던 기관 담당자들도 보게 됐고 그 기관의 전국 행사에 출품할 '스마트폰 영화'를 우리가 수주 받아 만들게 됐다. 그게 우리의 첫 매출이 됐고 그렇게 사업자등록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1인기업 이외의 공동 사업도 시작하게 됐다.
열정으로 모여 동영상을 만들던 우리 프로젝트팀에게 그 기관이 준 돈은 1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여름에 지역 청년 7명이 하루종일 바깥에서 촬영하고 며칠 밤을 새워서 영상을 편집, 그리고 또 수차례 수정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주고 받은 대가치고는 너무나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수익'이 생긴 게 신기했고 '가능성'을 봤다는 것에 기뻐했다.
공동사업을 함께 시작한 멤버는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다. 나머지 청년들은 매달 만들어 오던 패러디 동영상 제작팀의 프로젝트 멤버들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일해서 번 돈은 그 프로젝트 멤버들과 함께 맛있는 거 사 먹고 그동안 부족했던 촬영 장비 확충하는데 모두 썼다. 결국 돈을 벌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소득은 없었다.
실제 하는 일보다 더 일이 많은 공모전과 지원사업
첫 매출이 생기면서 새롭게 공동 사업자등록을 하게 됐다. 우리가 기업을 운영하는 형태는 '협동조합'의 형태였다. 세명의 1인 기업가들이 각자의 재능과 장비들을 이용해 함께 협업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수익은 공동의 장비에 재투자를 하거나 나눠갖는 형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협동조합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사업자를 냈다.
이후에도 우리에게 '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형태를 안 하고 개인사업자로 사업을 하느냐?'는 질문이 많았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답답했다.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공동의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에서 장려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과 같은 형태의 창업은 실제로 그렇게 운영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증명하거나 그 사업체를 만들기 위해 해야하는 서류작업과 부가적인 일들이 너무 많다.
이후에도 창업활동을 하면서 주변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형태의 창업을 한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이 '사업'이 목적이 아니라 '지원금'이 목적인 것 같았다. 물론 그 기준에 맞춰 기업을 만들어 지원금을 받기까지의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갔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보며 '탁상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됐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언제나 자금난에 허덕였다. 조용히 집에서 1인기업을 운영할 때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용역일을 받아서 처리하면 됐기 때문에 큰 돈 들 일이 없었지만 공동의 사업을 시작하고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려 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장비'가 필요했다.
서울이나 부산 등의 대도시에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 같은 기관에서 지역의 청년들에게 그런 고가의 장비나 스튜디오 같은 인프라를 거의 '공짜' 수준으로 빌려주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경남'에는 그런 기관이 없기에 오롯이 사비를 털어 장비를 장만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왜 우리 지역에서 '콘텐츠' 일을 하는 청년들이 없는 건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지역의 대학에도 콘텐츠 관련 학과들이 생겨나서 많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콘텐츠 관련 산업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졸업과 동시에 지역을 떠났다. 지역에서는 취업을 할 콘텐츠 기업도 없었고 창업을 하려고 해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처럼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콘텐츠 불모지인 경남에서 작은 불씨를 키우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수익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익사업과 별개로 지역의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정보들을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기관이나 지자체 홈페이지 게시판을 조회해야 했다.
사업에 지원하는 것보다 그 정보들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각 기관마다 각자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그 정보들을 한 곳에서 모아 볼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새로운 사업이 진행될 때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기관의 담당자들 역시 필요한 사람들이 알아서 자사의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보고 지원을 하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행중인 사업을 따로 알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몇년이 지나도 그 사업에 지원하는 업체나 개인들은 거의 같은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었고 매번 같은 조직에서 그 예산을 돌아가며 따먹는 일이 허다했다.
공모전이나 지원사업 역시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실무'보다 불필요한 서류작업과 말도 안되는 시장조사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같은 경우엔 남는 시간도 모자라 지원사업에 지원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 서류 작업을 해야했다. 그렇게 몇 곳의 지원사업에 도전하면서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려는 일들은 아직 지역의 기득권인 시니어분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란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우리는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을 포기했다. 그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나 더 잘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는 기존처럼 '돈 안 되는' 콘텐츠 만드는 일을 즐기면서 계속 함께 '놀았다'
그냥 우리가 잘하는 것 하고 있으니 일이 생겼다
▲ 촬영 매달 한번씩 진행되는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의 행사에서 스케치 영상과 SNS 라이브 중계를 담당했다
매달 창업모임을 나가고 지역의 창업자들을 모셔다가 그 들의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창업가'이기에 창업과 관련된 행사와 콘텐츠를 계속 만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네트워크'를 만들어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나길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창업 팟캐스트에 나온 게스트분들은 참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사업을 일궈낸 사람들이었다. 방송에 나와 자신의 사업철학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데 깊이 있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 분들은 돌아가서 다른 창업가를 게스트로 추천해주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우리의 고객이 되기도 했다.
방송에 나왔던 한 문화기획사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지자체와 함께 지역에서 청년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그 행사를 우리가 영상으로 촬영해서 기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자체 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 당연히 우리에게 비용도 지급되는 일이었고 이렇게 우리는 첫 매출 이후 또 다시 일을 받게 됐다. 억지로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에 도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걸어온 길을 보고 우리의 능력을 믿고 먼저 일을 맡겨 주신 거다.
이번 일은 연말까지 매달 한 번씩 총 5회에 걸쳐 진행되는 행사라고 했다. 덕분에 연말까지 많지는 않지만 고정 수입이 발생하게 됐다. 기분이 좋았다. 그 일을 받고 우리는 처음으로 '회식'을 했다. 새롭게 시작한 일, 거기다 우리가 재밌어서, 좋아서 한 일로 이렇게 일을 만들고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신기한 일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고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