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18만원 항공권으로 대만 여행 하기
▲ MRT 코인 대만 타이베이 여행에서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이었던 MRT
지난해부터 TV 여행 프로그램에 '대만'이 자주 나온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뒤늦게 해외여행에 눈 뜨기 시작한 나는 여행 프로그램도 곧잘 즐겨 보는데, 방송에 나오는 여행지들은 나오는 시기가 거의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이 나올 땐 여기저기 베트남만 나오고 대만이 나오니까 여기저기에서 대만 여행정보만 나왔다.
TV에 대만이 자주 나와서 간 건 아닌데, 어찌됐든 나도 대만을 다녀왔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여행지를 고를 때에도 선택의 폭이 넓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경남에 살고 있고 가까운 김해국제공항에서 '직항'이 뚫려 있는 나라들 중에 나처럼 가난한 여행자들이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저렴한' 항공권을 살 수 있는 곳은 몇 곳 없었기에 그 중에 대만이 선택된 이유다.
직장을 나와 1인 기업가가 되고 시간을 비교적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나는, 어느샌가부터 꼭 '평일여행'에 맛이 들려 버렸다. 평일 여행의 장점이라면, 단연 주말여행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저렴하다는게 첫번째 이유다. 그리고 한산한 여행지에서 여유롭게 돌아 다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평일에 여행지에 가면 주말에만 한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런 곳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대만 역시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왔다. 물론 중간에 주말이 끼워져 있긴 했지만 비행기를 탑승하는 날짜를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 않는 요일에 맞추면 항공권 가격은 내려간다. 그 덕에 나는 약 18만 원이라는 돈으로 부산에서 대만까지 왕복 항공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 20만 원대 초반에만 항공권을 구매해도 '저렴하게 샀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10만 원대에 항공권을 샀다고 하니 평일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 친구들이 마냥 부러워들 했다.
대만 사람들은 모두 '저녁형' 인간인가?
부산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대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그 덕에 공항에서 스마트폰 유심을 사려고 했더니 새벽시간이라고 엄청나게 비싼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한 판매점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격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잠시 고민끝에 유심을 구매를 포기했다. 다음날 낮에 시내에서 사기로 하고 무작정 타이베이로 들어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다행히 대만은 여기저기 무료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유심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 단수이 단수이 강변을 걸으면서 부산대교가 이어진 영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날 오전 숙소를 나와 제일 먼저 유심칩을 사기 위해 통신사 매장을 찾아갔다. '중화통신'이라는 곳이 가장 저렴하게 유심칩을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 어렵사리 찾아간 매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만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늦게 열고 밤 늦게까지 영업 하는 곳들이 많았다. '저녁형' 인간들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일정은 6박7일이다. 첫날은 밤 비행기 타고 날아오면서 다 써버렸고 둘째날이 사실상 첫날이다. 첫날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좀 거리가 있는 단수이로 갔다. 단수이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몰랐고 여행을 다녀온 뒤에서야 봤다.
단수이는 단수이 강변을 걸을 때 기분이 좋았다. 살짝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기도 했지만 운치가 있었는데 건너편 마을과 이어진 다리가 부산의 영도로 이어지는 '부산대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단수이는 부산과 닮은 곳으로 기억이 됐다.
단수이를 돌아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길에 스린 야시장을 들렀다. 스린 야시장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야시장으로 통한다.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중간즈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단수이과 같은 날 코스로 많이들 짠다. 대만 야시장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비위가 약한 '초딩입맛'인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음식들이 많았다.
일본이나 베트남 여행에서는 그다지 못먹을 음식들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베트남에서도 '고수'만 빼고 먹으면 음식들이 대부분 입에 맞았다. 그래서인지 대만에 갈 때도 음식에 대한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나에겐 힘든 경험이었다. 물론 대중적인 음식들은 괜찮았지만 현지에서 새로운걸 도전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대만 음식은 나와 맞지 않았다.
일주일 대만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곳의 야시장에 갔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길거리 음식도 기념품 샵도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리고 대만의 야시장을 돌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앉아서 쉴곳이 없다는 거였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발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음식까지 서서 먹어야 하니까 너무 불편했다. 어디 앉아서 편히 음식 먹을 공간이 준비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술 안파는 대만
대만 사람들은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았다. 밤 늦은 시간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시먼딩 거리에서도 술 취한 사람 하나 보지 못했다. 게다가 신기한건 관광객들이 가는 유명한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소한 식당에 가면 술을 팔지 않았다.
▲ 지파이와 과일맥주 대만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인 "지파이"와 달달한 과일맥주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으면 가까운 편의점에서 캔맥주 등을 사와서 마셔야 했다. 사온 캔맥주를 식당에서 마시는 것에 대한 제약은 없었다. 여행을 가면 맛있는 음식과 함께 반주 곁들이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새로운 식당에 갈 때마다 그 집에 술을 파는지 안 파는지 알아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다.
시먼딩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물에 붙은 전광판 같은곳에 시도때도 없이 유명 영화나 애니매이션, 게임 광고가 나오고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버스킹 공연이 끊이지 않고 유명한 길거리 음식점 앞에는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대만에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인 '지파이(닭튀김)'로 유명한 한 상점 앞에는 하루종일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번 여행에서 미슐랭 가이드 선정 식당인 샤오롱바오집에도 가보고 유명하다는 우육면도 먹어보고 비싼 훠궈집에도 가봤지만 가성비와 맛을 따지면 대만돈 70원(한화 2800원)하는 지파이가 최고의 음식이었다.
▲ 시먼딩 조던샵 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브랜드 제품을 전용으로 판매하는 곳
시먼딩에서 나에게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바로 '에어조던' 마크가 커다랗게 붙어 있는 '조던샵'이다. 나이키 제품들 중 '조던' 브랜드 제품들만 전시해서 판매하는 곳인데 평소 농구도 좋아했고 몇해전부터 가끔 친구들과 농구 할 때면 '유니폼' 하나 사서 입고 하자는 말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서 구경도 할겸 매장안으로 들어갔다.
조던샵에는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단연 내 눈에 띈건 조던의 붉은색 시카고 불스 유니폼이다. 그 얇은 나시 한장. 여행 기념품인셈 치고 사갈까 싶어 가격표를 봤는데 무려 4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그 돈이면 거의 내 일주일 여행 경비 수준이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냥 매장을 나와야만 했다.
패키지의 설명은 좋은데 시간의 자유가 아쉽다
대만은 흐린 날이 대부분이다. 해가 뜨는 걸 보는 건 진짜 운이 좋아야 하고 보통 땐 흐리거나 계속 가랑비가 내린다. 내가 있는 동안에도 거의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이런 날씨 때문인지 웬만한 시내에서는 인도가 다 건물의 지붕 아래로 이어져 있어서 우산을 쓰지 않고도 잘 돌아다니게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일정 마지막날 타이베이를 벗어나 대만 북부지역으로 버스 투어를 떠난 날은 그런 지붕도 없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 지우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가 된 곳
나는 여행은 무조건 '자유여행'만 한다. 패키지 여행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대만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일명 '예스폭진지(타이페이 근교 여행지인 예류·스펀·폭포·진과스·지우펀의 약자)' 당일치기 버스 투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역과 대만 문화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곁들여지니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시내여행을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아쉬움도 들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편안하게 관광지를 둘러보기엔 짜여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금세 사진 찍고 돌아와야 했다. 가이드의 설명과 자유로운 산책 사이에서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였다.
예류 지질공원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시원한 바다를 보며 마치 우주와 같은 신기한 지형들을 구경했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 우산을 드느라 카메라에 양손이 자유롭지 못했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비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찍어도 여행 인증샷이 정말 '안 예쁘게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은 풍등 날리기로 유명한 곳인데 옛날 광부들이 많이 모여살던 광산 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은 광부들이 모두 떠나고 이렇게 관광지가 됐는데 여기서나마 나는 새해 다짐을 풍등에 써서 하늘로 날려보내는 걸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진과스에서는 너무 심한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라 절경이 예쁘다는데 하나도 보지 못했고 '꽃보다 할배' 출연진들이 먹고 갔다는 광부 도시락 하나 사먹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코스는 지우펀은 '지옥펀'으로 유명하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유명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가 된 장소를 찾아 인증샷을 찍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 갔을 때도 역시나 비가 많이 오고 추웠다. 한바퀴를 얼른 돌고 집결 시간까지 편의점 안에서 따뜻한 차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짧은 6박 7일간의 대만 여행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역시 새벽 출발 비행기.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시먼딩에서 타오위안 공항으로 출발했다. 마지막날 비를 맞아 찝찝한 느낌을 공항에 있는 무료 샤워장에서 말끔히 씻어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통 여행을 가면 맛있는 음식들을 여러가지 맛보기 위해 하루종일 배고플 겨를 없이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면 체중이 몇킬로그램씩이나 늘어나 있다. 하지만 이번 대만 여행에서는 입에 잘 맞지 않는 음식들로 인해 급격한 체중증가는 없었다. 새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지금, 다행인지 아닌건지 알쏭달쏭 했던 나의 첫번째 대만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