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난 행복하지! 41] 산정특례 종료 안내문
▲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 5년 종료 안내문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날아온 특례 종료 안내문
어느 날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또 건강보험료가 올랐나?' 싶어 우편물을 뜯어봤는데 뜻밖의 안내문이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안내문 제목은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 5년 종료 안내문'이었다. 이게 뭔고 하니, 내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등록했던 '중증환자' 혜택이 종료된다는 말이었다. 이제 5년이 경과하면 나도 '완치' 판정을 받고 '일반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는 느리지만 1년은 빠르다. 시간은 그렇다. 내가 건강검진에서 암을 발견한 뒤 수술받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 위해 연말에 독방에 갇혀 지내던 그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완치'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까지 내가 완치된다는 사실이 실감은 나지 않는다. 치료를 시작하고 수술받고 회복하던 집중 치료 시기 이후엔 거의 일반인이나 다름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크게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본다. 나는 초심을 많이 잃었다. 직장생활 중 술과 담배, 과로와 폭식에 찌들어 몸이 불어날 때로 불어났던 순간에 수술을 받고 수술 이후 오롯이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시 살도 빼고 담배도 끊고 술도 끊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술은 다시 마시기 시작했고 게으른 생활습관이 다시 몸에 베 다시 살이 찌고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고 다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중이다.
이처럼 인간은 나약하다. 내 의지가 약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진단받던 날 내분비내과 교수님께서 하셨던 '술은 괜찮지만 담배는 절대 안 돼요'라고 했던 그 말씀을 너무 깊이 새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로부터 시간은 흘렀고 지난 5년간 그럭저럭 나는 잘 버텨냈다고 생각한다.
가장 감사한 사실은 수술도,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한 번 만에 잘 치료가 됐다는 것이다. 3cm의 큰 혹에 림프절도 24개나 제거하고 그중에 7개에서 전이가 발견될 정도로 병이 깊이 진행됐었다. 그런데도 잘 치료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하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가끔 나와 같은 병을 겪은 환우 중 여러 번 재발을 하거나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던 이들의 힘든 후기들을 보며 나는 진짜 이만한 게 감사한 일이란 걸 다시금 생각한다.
감사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지난 5년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제 죽을 때까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신지로이드'라고 하는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약통부터 찾는 게 습관이 됐다. 이건 완치 판정을 받아도 그대로다. 이제는 약값에 특례 적용이 안 되니까 약값은 더 비싸게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면 떨어진 나의 체력은 이 병의 예후와도 관계가 깊다. 약 용량을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혈액검사를 통해 늘이고 줄이고를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적당한 호르몬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임의적으로 약을 통해 호르몬 수치를 조절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과하거나 줄었을 때 내 몸에는 바로 부작용이 나타난다. 체중의 변화가 생긴다거나 피로감을 느낀다.
피로감을 느끼고 살지 않기 위해 나는 하루에 9시간가량을 수면한다. 예전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하면 2~3시간 가량을 더 잔다. 잠자는 시간이 늘어난만큼 내 하루는 짧아진다. 하지만 그래야 하루를 온전히 피곤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이 됐다.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마무리했으면...
▲ 치질 수술 눈썹 종기와 치핵, 치루 수술로 몸에 총 3번의 칼을 더 댔다
몸이 피곤하면 몸에 이상증세가 많이 나타난다. 만성적으로 앓고 있던 치질이 대표적이고 몸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염증성 종기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는 벌써 몸에 칼을 세 번이나 댔다. 왼쪽 눈썹 위에 큰 종기가 나서 약으로 치료가 안 돼 결국 고름을 빼기 위해 째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년 째 안좋아졌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하던 치질 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20대 후반쯤부터 가끔 술 마신 다음날 화장실을 가면 변기가 빨갛게 물들 정도로 혈변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괜찮아졌다. 가끔 항문이 심하게 부어 욱신거리면 좌욕하면 괜찮아지고는 했다. 10년을 넘게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장을 다니다보니 치질은 내 일부가 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잘 관리하며 살아온 치질이 결국 올해 터졌다. 병원을 안 가고는 못 배길 정도로 심하게 부어 병원에 갔더니 치핵뿐 아니라 치루도 있어서 수술이 불가피 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덕에 치핵 수술과 치루 수술을 국소마취를 통해 2번에 나눠 수술과 회복을 반복했고 올 들어 2달을 꼬박 치질 치료에 시간을 썼다.
그러고 나서 정신차려 보니 이제 잊고 있던 갑상샘암 완치까지 1달하고 보름이 남았다. 9월말 마지막 혈액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으면 나는 10월 3일부로 특례적용이 끝나고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이제 '암 보험'도 가입할 수 있다. '완치'라는 말을 잊고 살았던 지난 5년, 돌이켜보니 고생 많았다. 그런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제 한달 보름뒤 쓰게 될 나의 이 긴 연재글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