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⑪] 소속감
▲ 몬충기획 사원증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의 사원증
우리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면 보통 'OO에 다니는 OOO입니다'라고 자신이 소속되어 학교나 직장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직장에 다닐 때면 자연스럽게 내 명함을 건네며 '어디에 다니는 누구다'라고 인사를 했다.
보통 업무차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웠고 꼭 업무 관련으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도 보통 '무슨일을 하는 누구'라거나 '어디에 다니는 누구'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딘가의 조직에 소속되면서 '안정감'을 얻는다. 어릴적 유치원과 학교를 다닐 때에도 어른들이 자기소개를 시키면 '몇학년 몇반 몇번 누구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는 '개인'보다 '조직'을 더 중요시 한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그 '조직'의 무게 때문에 '개인'이 희생 당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곳의 직장을 다녔다. 사원수 5명으로 갓 시작하는 초기 스타트업에서부터 우리나라 30대 기업 순위에 드는 대기업의 계열사까지 다양한 조직에 속한 경험이 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조직이 유명하거나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있을수록 나는 내가 소속된 조직을 밝히는 것을 좋아했고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이 소속된 조직을 숨기려고 했다.
내가 다닌 직원수 5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은 LG전자 사내 협력업체였다. LG전자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을 한 사장님이 'OB' 대우를 받아 세운 신생 회사였는데 대기업의 사내 협력업체는 대기업 내부를 출입해야 하고 대기업 인프라를 함께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과 '비슷한' 시스템을 유지해야 했다.
LG전자 사원이라면 모두가 발급받는 사원증, 그 사원증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지만 아주 약간은 다르게 생긴 '출입증'을 발급 받는데 그 출입증을 목에 걸고 LG전자 임직원들과 뒤섞여 생활하다보니 조금씩 그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게 부끄러워졌고 출입증을 패찰하지 않고 다니는 시간이 늘어났다. 심지어 일부 동료들은 출입증을 교묘하게 '튜닝'해서 LG전자 사원증과 거의 똑같이 보이도록 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반면 내가 나중에 대기업 사원이 됐을 때, 나는 퇴근 후에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녔다. 퇴근 후 회식을 한다거나 동료들과 애프터 술자리에 참석할 때에도, 집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사원증을 목에서 빼지 않았다. '잃어버릴까봐'라는 핑계를 대곤했지만 사실 나는 그 사원증을 걸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오롯이 나만의 길을 가겠노라며 '창업'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의 자부심이자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던 '조직'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살아도 되니까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워져갔다.
'혼자'라는 자유로움이 좋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 몬충기획 단체티 외부 행사를 다닐 때 입기 위해 단체티를 맞춰 입었다
나는 특히 처음에 1인기업으로 혼자 일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자유'와 '외로움'속에서 많은 갈등이 생겨났다. 지금의 이 자유는 계속 유지하고 싶지만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불안함과 외로움. 그 이중적인 마음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혼자서 일을 한 지 몇달이 지나 우연히 한 '창업자 모임'에 나갔다. 활발한 성격이긴 하지만 의외로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아예 모르는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는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자리에 나가겠다고 선택한건 그 당시 나에겐 그만큼 외로움이 크게 와닿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연히 나간 그 창업자 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한달에 한번 있는 모임에 한번 두번 나가게 되면서 그 모임이 아주 편해졌다. 모임 날이 아닌 날도 몇몇의 주축 멤버들과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어느새 나는 그 모임의 주축 멤버가 됐다.
우리 모임은 자발적으로 진행됐지만 약간의 다과비나 모임 장소를 모 기관에서 후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기관의 직원분들과도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러니 모임에 좀 더 기관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약간의 예산을 확보 할 수 있게 됐다.
▲ 창창포럼 ID카드 창창포럼의 정회원들의 소속감을 키우기 위해 만든 ID카드
우리는 생각치 못하게 생긴 그 예산을 어디에 쓸까 고민했다. 나는 멤버들에게 '사원증' 같은걸 만들어서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처럼 '소속감'에 대해 목말라 하던 멤버들의 적극적인 동의로 창업 모임의 'ID 카드'를 제작했다.
ID 카드는 모임명으로 통일되어 제작됐지만 안에는 각자의 회사명이 들어가게 만들어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원증인데 개인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이 마저 사치였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었던 물건이다. 그런 우리에게 '사원증'이 생겨 너무 좋았다.
이후 나는 그 모임에서 만난 2명의 동료들과 각 사업분야에서 공통된 분야를 뽑아내서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하는 공동의 회사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 회사는 지역에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는 회사였는데, 주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일이 많은 회사였다.
문화 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외부에 촬영을 하러 나가는 등의 업무가 많은 회사 특성상, 현장에서 눈에 잘 띄고 홍보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회사 단체복과 사원증을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고 디자인해서 옷과 사원증을 만들었다.
그 효과는 만점이었다. 어딜가나 우리 옷과 사원증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반 직장과는 달리 우리가 활동하는 분야에서는 이렇게 일반 회사에서나 할 법한 단체복이나 특히 사원증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라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하기에 더욱 독특한 디자인을 직접 만들어 적용하다보니 더 특이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렇게 나는 직장을 나와 창업을 한 후에도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은 그 창업모임도,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도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1인기업으로 돌아왔다.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좋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니 또 그 안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쳤기 때문이다.
몇달간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역시 혼자가 최고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또 외로워진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처음엔 불나방처럼 열정적으로 시작하다보니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가보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의 사원증이 내 목에 걸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