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⑫] 돈 안되는 일
▲ 동영상 편집 창업 보육 기관의 스마트폰 영화제 출품작인 '창업행'을 제작중이다
평소 자주 들락거리던 한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을 들어보니 우리에게 처음으로 일을 맏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 있는 그 창업 보육기관의 전국 페스티벌이 열리게 되는데, 그 페스티벌에서 각 지역별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화(영상물)를 만들어 상영한다고 한다. 그 영상 제작을 우리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내용의 연락이었다.
그 기관은 매달 우리가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는 청년 창업가들이 모여 소통하는 행사에 장소를 제공해주고 간단한 다과도 지원해주고 있는 곳이었다. 그 기관에서는 아예 우리가 진행하는 이 행사를 그 기관에서 운영하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올리고 담당자를 지정해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기관 담당자들과 가까워지게 됐다.
매달 열리는 창업자 모임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청년 창업가들을 만나 몇달째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재미있는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고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개념과 더불어 우리의 취미 활동 중에 하나였다.
원래는 내가 웨딩 콘텐츠 제작쪽 일을 하다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셀프축가 뮤직비디오' 제작하는 일을 프로젝트 팀을 꾸려 함께 해보자는 제안으로 모이게 됐다. 처음에는 셀프축가 뮤직비디오 제작에 한정되어 있었는데 생각은 조금 더 나아가서 지역에서 창업활동을 하는 청년으로 지역과 함께 동반 성장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큰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지역을 담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자며 매달 1편의 영상을 제작했다.
매달 지역의 곳곳을 담은 B급 패러디 동영상을 만들었다. 만든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올리고 매달 한번씩 열리는 청년 창업가들의 모임에서 상영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동영상을 잘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그 기관 담당자가 이번일을 우리에게 맏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놀기삼아 시작한 일에 수익이 발생하게 되면서 제2의 사업체가 만들어졌다. 멤버들은 각자가 1인 기업 형태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 수익이 생기면서 별도의 공동사업자를 하나 더 내기로 했다. 평소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 안에서 우리가 쓰던 닉네임들을 담은 회사 이름을 짓고 새롭게 또 하나의 사업체를 꾸려가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됐다. 하지만 소상공인 협동조합은 최소 설립 기준 인원이 5명인데 우리는 셋이었고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필요한 서류 작업이나 기타 업무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개인사업자 공동대표 형태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나는 2번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우리에게 첫 수익을 안겨준 작품의 이름은 <창업행> 당시 유행하던 영화 <부산행>을 패러디해 만든 작품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취업 좀비, 스펙 좀비, 월급 좀비 등 창업의 길을 막고 있는 좀비들을 피해 예비 창업자들이 좀비들로부터 안전한 그 기관에 찾아가 무사히 창업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그 기관의 직원들이 직접 분장하고 연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연출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그 작품은 전국 페스티벌에서 그 기관의 임직원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로 소개되며 상영됐고 대통령으로부터 '패러디상'을 수상하며 다른 지역 작품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퀄리티로 한순간에 이슈몰이를 했다고 한다.
그 후기를 듣고 우리의 실력을 인정 받은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 콘텐츠의 외주 제작비로 우리에게 들어온 돈은 198만원이었다. 부가세 10% 빼고 나면 180만원이 채 안되는 금액. 촬영 당일 투입된 우리쪽 스탭들은 총 7명, 여기서 경비 빼고, 장비 사용료 빼고, 편집 한다고 몇일 밤 꼴닥 새고, 기관의 결재라인을 한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변경되는 요구 조건 맞추는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이 일은 '수익사업'이 될 순 없었다.
돈 안되는 그 일에 우리의 열정은 식어 버렸다
▲ 촬영중 모 대기업의 보안교육용 동영상을 촬영중이다
첫 일을 끝내고 우리는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생활을 했다. 그렇다고 함께 하던 프로젝트를 끝낸건 아니었고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돈 보다 그 일은 우리에게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각자 혼자서 일만 하다가 이런 계기를 통해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들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게 우리에겐 '놀이'와도 같았다.
우리의 이런 활동들은 지역 내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당시 상위 0.002% 순위권에 드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했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내가 해나가는 활동에 대해 신문기사를 써서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홍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 후 우리에겐 또 일감이 하나씩 들어왔다.
두번째 일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기관의 담당자분이 그 기관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던 모 대기업에서 동영상 제작 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소개해주면서 시작됐다. 창업 하고 2번째 일인데 '대기업'과의 거래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미팅 날짜를 잡고 그 대기업에 들어갔다. 우리가 만난 그 기업 담당자는 '보안부서' 차장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기업에 들락거리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보안교육'을 할 때 틀어줄 동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다. 지금까지는 옛날에 만들어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쇼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동영상 콘텐츠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도 대기업을 8년 넘게 다녔었다. 그래서 '왜 회사에 있는 방송팀 같은 인프라를 이용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부서간 업무 협의하는게 너무 어렵고 귀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냥 팀에 배정된 예산을 이용해 외주 제작을 하는 게 일하기 수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대기업의 시스템을 경험해본 나에게는 단번에 이해가 되는 답변이었다.
팀에 배정된 예산 내에서 집행해야 하다보니 결국 이번 일도 제대로 돈벌긴 글러먹은 일이됐다. 그래도 우리를 믿고 소개해준 그 기관 담당자의 얼굴도 있고 해서 그냥 넘길수도 없었다. 보안 수칙에 대한 올바른 상황과 잘못된 상황을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콘텐츠 안에서 연기할 배우를 섭외할 돈도, 동영상에 입힐 더빙 성우를 섭외할 돈도 없었다.
결국 그 동영상에 출연한건 그 기업의 보안요원 몇명과 우리 멤버 중에 한명이 얼굴을 팔아야 했다. 여담인데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대기업에 가면 우리 멤버가 출연한 그 동영상이 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우 역시 그 보안부서 여직원이 하게됐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목소리를 녹음해서 동영상에 넣어 살리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정된 예산안에서 어떻게든 겨우 이번일도 마무리 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또 하나의 일을 끝냈고 우리의 실력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역시 이번일에 대한 수익도 지난번 일과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받은돈은 105만원, 역시 부가세 빼고, 경비 빼고, 장비비 빼고 셋이서 나누면 돈이 안됐다.
우리는 일단 벌어들은 돈을 나누지 않았다. 그냥 회사 통장에 넣어두고 우리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필요한 경비로 썼다. 그전까지는 뭔가의 일을 벌일 때마다 우리 주머니에서 사비 털어 냈어야 했는데 그래도 수익이 생기는 일을 병행하니까 최소한의 경비가 생겼다며 우리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다른 한가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 몇푼 안되는 돈을 벌기위해 엄청난 리소스를 쏟아 부으면서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조금씩 질려 버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시간내서 우리 돈 써가며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게 너무나 즐거웠던 우리인데, 어느샌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내는 작품이 아닌 누군가가 시켜서, 누군가의 요구대로 우리 안에 있는 '예술성'을 억누르고 하는 일은 결국 '일은 단지 일'이었다. 그 과정이 즐겁지가 않았다.
그리고 돈을 받고 콘텐츠를 만들게 되면서 더이상 우리의 색깔이 묻어 있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열정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수익을 나눠가질 수 있을만한 '돈 되는' 일만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단순한 '용역회사'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