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싸구려 삼각대, 핀마이크가 방송장비의 전부
나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살고 있다. 김해는 '가야왕도 김해'라는 슬로건으로 가야국에 대한 역사 자원을 활용하여 '문화도시' 지정을 받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해는 '가야'라는 말을 아직도 많이 쓴다.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의 이름도 '가야문화축제'이고 최근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가야테마파크'도 열심히 성업 중이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직장인 지역 케이블 방송국 이름도 김해지역 방송국은 김해방송이 아니라 '가야방송'이었다.
김해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우리집이 김해로 이사오던 1996년 당시만 해도 김해는 현재 구도심인 부원동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었고 우리집이 이사를 한 삼방동 근처에는 인제대학교와 LG전자가 있는 안동공단이 있어 이사올 당시 많은 인구가 유입되던 동네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김해시 인구는 60만명을 향해가고 있지만 예전에 명성을 누렸던 구도심 일대와 내가 살고 있는 삼방동은 노후화 되어 나이 많은 어르신들만 남은 동네가 돼버렸다.
나도 한 때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80세 가까이 되는 어머니가 정든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셔서 계속 이 동네에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동네안에서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약속이나 볼일이 있으면 새롭게 만들어진 '시내'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김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도시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런걸 알지만 막상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김해에는 '봉황동' 일대가 '가야 문화재 추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잘 살고 있던 49가구가 갑작스럽게 이주 할 것을 통보 받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소식을 전하는 마을 방송국
▲ 봉황방송국 입구 김해시 봉황동에 위치한 봉황방송국 입구
지난해 11월, 봉황동 265번지에서는 '봉황방송국' 개국 파티가 열렸다. 봉황방송국은 앞으로 사라질 봉황동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을 소식들을 전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이다. 지난해 11월 개국하고 약 4개월 동안 약 30편의 마을 소식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 한 상태다.
봉황방송국은 봉황동 일대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여의와 황새'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던 연극배우 곽지수씨(50세,여)가 봉황동 265번지 낡은 주택을 매입하여 이사를 오면서 시작됐다.
곽씨가 이사오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집이 문화재 추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철거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집을 무리해서 매입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면서 곽씨는 좌절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기록이라도 남겨보자며 유튜브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단순히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몰랐던 곽씨는 평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알게된 봉황방송국 조연출 김영현씨(32세,여)가 동영상 촬영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이 이제 막 동영상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혼자서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역시 지역에서 동영상 제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봉황방송국 연출 강상오씨(필자,38세,남)를 소개하면서 3명의 봉황방송국 멤버가 구성됐다.
▲ 방송 준비하는 봉황방송국 봉황방송국은 아나운서, 연출, 조연출 3인이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든 업무를 보고 있다
봉황방송국 채널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업로드 돼있다. 봉황동 일대 마을 소식을 전하는 '봉황늬우스'에서부터 봉황동 일대에 있는 상점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축제를 직접 찾아가 취재하는 '찾아가는 봉황방송국'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봉황방송국에 초대해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보고 토론하는 '함께 하는 봉황방송국' 크게 3가지 카테고리의 콘텐츠들이다.
봉황방송국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단지 마을을 사랑하고 사라져가는 마을이 아쉬워서 그 기록을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자발적인 단체다. 그래서 봉황방송국은 수익도 없고 제작비 예산 역시 멤버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래서 다들 생업에 바빠 자주는 촬영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봉황방송국에 모인다.
▲ 봉황방송국 촬영현장 방황방송국의 장비는 스마트폰과 삼각대 그리고 핀마이크가 전부다
봉황방송국의 촬영 장비 역시 스마트폰과 싸구려 삼각대, 그리고 핀마이크가 전부다. 멋드러진 카메라와 장비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장비는 '동네방송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마트폰 하나 딸랑 있는 방송국이지만 촬영 현장은 언제나 즐겁다.
최근에는 김해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마을기획공모사업'에 지원해 작은 예산을 확보했다. 평소 돈 한푼 없이 방송을 제작했지만, 이번에 가야 문화재 추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철거 대상 가구로 지정된 49가구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데 돈 한푼 없이 매번 그냥 주민들에게 카메라 들이대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확보한 예산으로 적은 금액이나마 인터뷰에 응해주신 주민분들께 출연료도 드리고 영상 제작에 필요한 경비로도 사용키로 했다. 그 적은 예산이나마 조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업무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덕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봉황방송국의 수명이 조금이나마 연장됐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철거 대상 지역으로 지정된 49가구의 주민분들 중 5가구의 주민분들과 직접 만나 봉황동의 옛날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 분들이 봉황동에 살아오면서 있었던 추억들, 그리고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심정들을 들으며 평소엔 별 관심 없었던, 우리 가까이에 늘상 있어오던 옛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봉황방송국, 끝이 정해져 있는 장소지만 그 추억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봉황방송국의 카메라는 오늘도 돌아간다. 김해 봉황동 주민들의 소식을 전하는 봉황방송국은 유튜브 채널 '봉황방송국'(http://bitly.kr/C0pTv)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