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투툼 appatutum Mar 23. 2020

돈이 없어서 죽을까봐 걱정이 된다

[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굳은 결심

팀장님과 3주간 총 세번의 퇴직 의사 재확인 면담을 했다. 나는 이미 생각을 굳혔기 때문에 계속 퇴직할 의사를 전달했고 이제는 주변에서도 나의 퇴직 의견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설날 연휴를 빼고 나면 실제로 출근할 날이 보름 가량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은 또 남아서 팀을 꾸려갈 준비를 해야하니 당연한 일이다. 걱정을 가장한 영혼 없는 멘트들로 '나가서 뭐할꺼냐?' '준비는 하고 나가는거냐?' 웃으면서 물어오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퇴직을 결심함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거나 언제든 있을지 모르는 구조조정 대상자의 위험에서 조금이라도 확률이 낮아진것에 대한 안도를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최근 우리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만큼 비전을 느끼지 못하고 힘들고 재미가 없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진짜 인간미 없고 독한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 남아있다. 견디지 못하고 나간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처럼 소위말해 '바른말' 참지 못하고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진짜 충신'들이다. 그 중에 나랑 나이도 같고(실제로는 내가 1살 많지만 빠른 생일이라 친구먹은) 같은 업무를 함께 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작년에 퇴사를 했다. 지금은 동종업계 다른 회사에 한직급 더 올라서 입사를 해서 일하고 있다. 지역이 다른지역으로 발령을 받은 바람에 집떠나 고생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내 퇴사 소식을 듣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막상 그만두고 쉬다보니 돈이 너무 아쉽더라. 너는 건강도 안좋아서 사유도 있고 하니 꼭 고용보험이라고 신청해달라고 해서 그거라도 받고 그만둬라. 난 그런거도 못챙겨먹고 그냥 그만둔게 진짜 후회스럽더라." 



그 친구가 내게 해준 조언은 그거였다. 비전 안보이는 회사 그만두는것도 좋고 하고 싶은일 하며 사는것도 좋은데 준비하는 동안 돈이 꼭 필요하니 필요한 것들 잘 챙겨먹고 그만두라고. 그 말을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7년이 넘도록 거의 8년이라는 시간동안을 내 청춘을 다 바쳐서 일해온 회사인데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또 그런 희생을 강요당해서 기꺼이 희생을 하고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마지막 순간엔 나도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건 다 받아보자고. 


나는 2013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3개월 남짓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았다. 당시 갑상선암 진행도 제법 된 상태였고 임파선으로 전이도 되어서 방사성 요오드 치료도 받았다. 그 뒤 지금도 꾸준히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고 나는 '중증환자 장애인'이 되었다. 병가 3개월이 지나고 딱 작년 이맘때쯤 회사에 복귀했을 때 후회가 밀려왔었다. 너무 일찍 복귀한것 같다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적응하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고 다녔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제 갑상선이라는 조직이 없어서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쉽게 피로해지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무리한 야간작업이나 야근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회사 분위기가 너무 안좋아서 모 사원들은 밤 12시가 넘도록 잡혀서 퇴근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그래도 왠만하면 7시 이전에는 퇴근하려고 한다. 물론 내 업무는 잘 조율해서 그 시간안에 충분히 다 끝내고 퇴근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일이 안끝나서 퇴근을 못하는게 아니란걸.. 단지 상사들의 눈치와 주변 동료들의 눈치를 서로 서로 보면서 발목이 잡혀 있는거다. 


처음엔 '아픈 환자'라고 이해한다고들 말했지만 조직에 섞여 시간이 지날 수록 그런 '이해'는 사라지고 '차별'이라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저 놈은 뭔데 맨날 지 혼자 일찍 퇴근하냐고"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올 때 뒷통수가 뜨거워서 녹아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지낸지가 벌써 몇개월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난 이제 내 몸이 우선이니 눈치가 보여도 그렇게 지내고 있다. 


그런 몸상태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사유를 밝히면 고용보험 수혜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회사에서 인정을 해줘야 가능한거지만 인정을 안해줄순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큰 맘먹고 '산재' 신청이라도 하면 승소여부를 떠나 회사는 이미지 추락과 함께 피곤해질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사내 인트라넷에서 '취업규칙'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살펴봤다. 건강상의 이유라면 '병가'나 '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역시나 취업규칙엔 병가나 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이미 2013년에 병가를 3개월 사용했지만 그 것과 별개로 또 사용할 수 있었다. 근속년수에 따라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급여도 70%나 받을 수 있었다. 이 역시 회사에서 인정을 해야 하는거지만 난 어차피 퇴사를 마음먹은 마당에 질러보기로 했다. 인사담당자를 통해서 본사 인사팀에 문의를 넣었고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곤 바로 팀장님께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휴직계'를 내고 싶다고 했다. 받아들여지면 휴직 하는 동안 금전적 부담을 줄이고 시간을 벌게 되었으니 체력 강화와 더불어 책 집필이나 작곡공부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업구상과 시장조사를 할 시간도 벌 수 있다. 


만약 휴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이렇게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신청했었던 이력으로 고용보험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을 듯 하다. 퇴직을 결심하고 마음을 비우고 나도 회사를 배려하지 않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생각하니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있다. 8년간을 희생하고 지냈으니 몇달간이라도 '갑'으로 지내다가 떠났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점점 많이 지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