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철이 없이 살아 더 멋진 사장님과의 인터뷰
아직 일요일 오전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봉황대길에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빈체로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 장비를 정리하면서 사장님께 다음으로 인터뷰 하실만한 분이 안계신지 여쭤봤다. 그러자 바로 추천해준 곳이 <봉황1935> 카페다.
<봉황1935>는 봉황동에 놀러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카페다. 김해 봉황동 일대에서 뭔가의 문화 예술 관련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빠지지 않는 곳중 하나가 바로 <봉황1935>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리 듣기로 이 카페는 김해에 남아 있던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로 역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빈체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봉황1935>로 불쑥 들어가 사장님께 바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다. 사장님께서는 워낙 이런일이 익숙하셔서 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허은 : 저는 봉황 1935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허은이라고 합니다.
큰당신 : 봉황1935는 봉황동 와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큼 유명합니다. 제가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들은 바로는 적산가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이야기 좀 해주시겠어요?
허은 : 옛날 김해에 적산가옥이 서너채 있었습니다. 다 철거하고 남아있던 것을 대대적인 개보수를 해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 동네에 내가 올 때 만해도 빈민가 같았는데.. 내가 한번 살려보고 싶고, 고향이고, 제가 여기서 컸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큰당신 : 예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허은 : 제가 젊었을 때는 철이 없어서 직장에도 다니고 했지만 결국에는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나와서 사업도 하고 실패도 하고 성공한 거는 없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먹고 고향으로 돌아왔죠.
큰당신 : 어쨌든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업에 성공하셨네요.
허은 : 성공이라기보다 노후를 대비해서 이렇게 살죠.
큰당신 : 그런데 젊을 때 철이 없어서 뭐 이랬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멋있게 나이드셨지 않습니까?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허은 : 내가 좀 있으면 70이 다돼가요.
작은당신 : (워낙 동안이시라) 저희랑 동년배?
큰당신 : (패션센스도 좋으시고) 형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허은 : 형? 그럼 좋지.
큰당신 : 청바지에 운동화에 시스루에다가
작은당신 : 우리도 도전 못하는 스타일을
큰당신 : 저희보다 패션 센스가 더 좋으세요.
허은 : 옷을 잘 안삽니다. 있는 옷 그대로 입고 다른 사람이 보면 욕할지도 모르는데.
큰당신 : 그래도 멋쟁이신데요.
허은 : 한편으로 철없이 사니까 나이 들어서도 철없어서 수월하네. 젊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고 잘 찾아오고 외롭지 않으니까.
큰당신 : 그러니까 저희도 망설임 없이 여기 들어올 수 있었잖아요. 진짜 멋있으신 것 같습니다.
허은 : 고맙습니다.
큰당신 : 코로나 이야기가 나와서 1년 넘게 거의 2년 가까이 코로나가 지속되고 있잖아요. 작년에도 이 녹화할 때 금방 끝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금까지?
허은 : 어렵지 전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소상공인이 힘든 상태입니다. 힘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도 억지로 억지로 버티고 있습니다. 좋은 날이 올거라 희망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큰당신 : 코로나가 종식됐다. 이제 더 이상 마스크 안써도 된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허은 : 동네에 (마을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지금도 큰 모임을 못하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그때 한번 모여서 문화예술 행사를 이 거리에서 좀 했으면 합니다.
작은당신 : 사람들 모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큰당신 : 큰행사?
허은 : 마음 놓고 홍보도 하고 마음 놓고 사람들 만나고도 싶고.
큰당신 : 외모도 예술인이고 마음도 문화예술인이고 멋있습니다. 저희도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큰거 해서 구경도 다니고 그런 곳 카메라 들고 다니면 참 좋겠는데 그죠? 그런 날이 곧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은 : 오겠지.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동네가 문화예술의 동네, 배울게 있는 동네, 경치가 있고 추억이 있는 동네를 만들어 가는게 꿈입니다.
큰당신 : 김해의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봉리단길로 오세요. 여러분
작은당신 : 궁금한게 있는데 <봉황1935>의 '1935'가 무슨 뜻인가요?
허은 : '1935'는 이 건물을 개보수 하면서 뜯어보니까, 우리나라에서 한옥을 지을 때 위에 상량식이라고 아는가?
큰당신 : 모릅니다. 설명해주세요.
허은 : 대들보라고 하는 큰 기둥에 건축년도를 표기하는거를 말합니다.
큰당신 : 예술품에 주기하는 요런거네요?
작은당신 : 빌딩같은데 밑에 보면 적어 놓은 거.
허은 : 그런식이라. 그걸 큰 대들보에 써놓거든. 그게 항상 큰 한옥이라면 다 있어요. 건축주 이름, 그다음 공사 시공자, 거기 보면 오야지라 했지? 오야지 이름, 건축주 이름, 그런 것이 적혀있지.
작은당신 : 그 연도가 1935년인가요?
허은 : 1935년도지.
큰당신 : 그래서 봉황 1935가 됐네요. 카페를 다니거나 어디 놀러 다닐 때 이런 스토리를 알고 다니면 더 재밌어요. 그쵸? <봉황1935>에 오시는 분들 사장님께 여쭤보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봉황1935>를 비롯한 이 봉황대길 일대에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많이 열렸다. 그래서 로컬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봉황대길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감염병 창궐 덕분에 그렇게 활발하던 문화행사들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안에서도 진화를 꾀한다. 활발하던 문화 행사는 이렇게 카메라와 온라인을 통해 안방으로 전달됐고 감염병이 멈추지 않았던 지난 1년, 봉황대길은 또 다른 변화를 통해 새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내년에 찾은 봉황대길의 모습은 어떨까? 내년에는 허은 사장님의 말씀처럼 사람들과 함께 왁자지껄 모여서 웃고 떠드는 행사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인생 뭐 있나? 그게 사람 사는거지.
(본편은 아래 동영상으로 시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