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No.05 <왕과 사는 남자>
설날이라 가족들과 함께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습니다. 전 이미 한 번 봤던 영화였는데, 그렇게 재미있게 본 영화는 아니었던지라 엄청 기쁘게 보러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가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게 그 정도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장 콕 집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이 영화는 전혀 설날 특선 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못 되었다는 점입니다.
Review No.05 / 왕과 사는 남자
1. 악플로 도배된 광릉
살짝 이 소식 듣고 네? 스러웠습니다.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조선 역사를 좋아해왔고, 이번에도 조선사가 주를 이루었던 중학교 2학년 2학기 역사도 A라는 성적을 거뒀을 정도로 역사에 관련된 학업 성적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저로서는, 세조를 그렇게 나쁜 왕으로 평가하지도 않고, 오히려 경국대전 편찬이라는 큰 업적을 가진 세조에게 좀 박하진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세조의 권력 찬탈 방식도 잘못되었고, 역사는 후대가 평가하는 것이기에 후대의 평가가 그렇다면 세조도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세조에게 엄청난 욕설이 달리는 것도 이해야 됩니다만.. 원래 세조도 상왕 자리에 단종을 앉혔었고, 사육신과 생육신이 단종에 의한 충절을 거두지 못하자 세조의 불안감은 최대를 찍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세조의 권력 찬탈 방식은 잘못되었고, 자신이 권력을 찬탈한 방식을 아는 만큼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그의 권력을 어떻게 찬탈할지도 잘 알았겠죠. 그러므로 태종은 자신의 집권기에 왕자들의 사병을 공식적으로 폐지했고, 서양의 경우엔 아돌프 히틀러는 게슈타포라는 정치경찰기관을 두며 공포정치로 국민을 다스렸었죠. 그리고 그 세조의 불안감을 가장 잘 활용한 자가 "한명회"라고 생각합니다. 세조는 정통성은 부족했지만 업적 자체는 상당한 군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육조직계제 부활과 5위 체제 정비 그리고 경국대전 편찬 시작 등이 있겠죠. 저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여러분이 영화를 보고 다소 감정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말을 빌려오자면,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 이 말이 전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만약 세조에 대한 비판을 하셔야겠다면 영화가 끝난 뒤 휩쓸린 감정에 의해 섣부른 판단을 되도록이면 내리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물론 한명회같은 경우는 정말 연산군 대의 임사홍과 함께 간신 원톱이라고 생각하기에..) 한번 이 영화를 계기로 계유정난과 조선 전기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으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 유해진 ✖️ 박지훈, 둘의 케미를 아름답게 살려낸
박지훈 배우가 단종 역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살짝 의아했습니다. 박지훈 배우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야 했지만.. 과연 유배 생활 속에서 불안과 답답함, 비통에 몸부림치는 소년의 모습을 "아이돌 출신 배우"가 잘 구현해낼 수야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네, 임시완 배우도 결국 아이돌 출신 배우였다는 점을 까먹고 있었던 저는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박지훈 배우는 정말 또 다시 보여줘버렸습니다.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땐 덩달아 관객들도 몰입했고, 그가 웃음을 지을 땐 관객들도 한 시름 놓으며 미소를 지었죠. 정말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영화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단순한 개그가 나오기에, 이런 역할을 자주 맡아본 유해진 배우는 당연히 평균 이상의 호연을 선보일거란 것은 예상했지만, 박지훈 배우가 이 정도로 완급조절을 잘 해낸 것은 저의 예상 외였는지라 참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유해진 배우의 연기와 박지훈 배우의 열연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었고, 둘의 티키타카가 이 영화가 버디 무비로서도 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사실 영화가 둘의 연기로만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리면 거짓말이겠죠. <슬기로운 의사생활> 때부터 너무나 준수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전미도 배우가 연기한 "매화"와 유지태 배우가 연기한 "한명회", 이준혁 배우가 연기한 "금성대군"부터 박지환 배우가 연기한 "어세겸"까지.. 전체적으로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3. 오랜만에 나온 사극, 완성도는?
살짝 아쉬웠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호랑이 CG가 <자전차왕 엄북동>의 독수리 CG급이라는 말을 듣고 살짝 겁이 났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자전차왕 엄북동>에서 사용되었던 것처럼 그저 오프닝 간지용이 아닌 수양대군을 비유하는 메타포로 사용되었다는 점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음.. 아무래도 <신과 함께>처럼 CG를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가 아니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해도, 사실 잠깐 프레임 드랍이 일어나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오프닝에서부터 호랑이에게 쫓기며 시작하는 게 영화가 너무 가벼워 보였고 호랑이가 무슨 먼치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상당히 좋은 완성도를 가졌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렸듯 배우들이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도 한 몫 하지만, 영화가 좋았던 점이라면 굉장히 단순한 스토리의 구조를 차용했고 그에 따라 관객이 영화를 쉽게 따라가며 남녀노소 모두 쉽게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일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대중들이 선호하는 트렌드가 간편함으로 변한 탓에 극장으로 향하던 발길이 끊겼지만, 이 영화는 기나 긴 정통적인 "사극"의 구조보단 이홍위와 엄흥도의 우정을 그리는, 버디물로서 작용하며 서사를 꽤나 단축시켰고 그랬기에 현재의 관객들에게도 쉽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제가 후에 "단점" 문단에서도 다룰 예정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전형적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죠. A와 B 투닥거림 -> 모종의 이유로 A와 B 사이의 오해가 풀리고 우정이 돈독해짐 -> 어느날 A와 B에게 위기 -> 둘 중 하나의 희생 -> 엔딩 이런 식입니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여러 영화에서 봤던 구조를 <왕과 사는 남자>에 적용해서 볼 수 있고, 모든 세대, 성별을 불문하고 극찬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사실 복잡한 구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좀 지루하게 느껴지실 지도 모릅니다. 관객에게 사유를 요구한다기보단 관전자에 입장에서 차근차근 따라가도록 배려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1회차 때 친구와 상영관에 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영화가 시작한 지 한 10분 정도 지난 시점에 도착했는데, 내용 이해에 문제가 없었을 정도로 영화는 어디선가 많이 본 구조들을 본따온 느낌이었어요.
4. 그럼, 단점은?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사실.. <왕과 사는 남자>를 저는 한 3.5등급 영화에 위치시키고 싶습니다. 너무나 영화가 "안전빵"을 택한 게 보였어요. 캐스팅부터 사실상 극을 이끌어가야하는 엄흥도라는 캐릭터에 연기력은 물론이고 명절에 개봉하는 한국 상업 영화의 흥행보증수표와 같은 유해진 배우를 택했다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영화가 평면적이게 될 것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슬랩스틱 코미디 또한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 호랑이에게 쫓기다 노루골 주민에게 구조되고 그들이 잔치를 여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노루골 촌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말투가 너무 현대적이기도 했고, 과장되었죠. 물론 이 부분에서 상당히 많이 웃으셨지만.. 개인적으로 톤 앤 매너가 다른 웰메이드 사극들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사도 등..) 깔끔하다기보단 상대적으로 산만한 느낌이 강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예시로 든 사극들은 상당히 진지한 톤을 가진 사극들이지만..
이 영화도 상당히 진지합니다. 후반부 톤만 봐보면 정말 전반부와 같은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톤이 너무 어둡고 무거워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오른 영화가 있어요.
네, 한재림 감독의 커리어 하이이자 900만 관객을 모은 <관상>이죠. 사실 <관상>도 조정석 배우와 송강호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작품이었고, 이 영화도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지만 초반부에 적절히 섞어두었기에 톤이 바뀌는 장면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코미디가 기능적으로 잘 녹아들었다는 이야기죠. 사실 사극이 아니라면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기생충>도 그저 재미있는 가족 사기극처럼 느껴졌지만, 후에 근세와 문광이 드러나는 장면부터는 스릴러로 장르가 바뀌죠. 이렇듯 코미디적인 요소를 적절히만 넣으면 영화의 후반부에서 톤 체인지가 일어날 때 관객에게 효과적인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톤이 정돈되지 못합니다. 전반부가 너무나 가벼웠기에, 후반의 무거운 분위기를 본 저는 살짝 인지부조화가 일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금성대군의 반란입니다.
금성대군이 수양대군에 반(反)해 수령들과 군사를 모아 반역을 계획하는데, 하는 게 없습니다. 정말로, 이홍위에게 반역에 대한 윤허를 얻고 마지막에 기마병이 떼로 나오는데.. 전 좀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나 <카게무샤>에 나왔던 전투를 기대했어요. 물론 제작비가 105억이니 이런 할리우드 대작과 거장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와 비교하면 안되겠죠.
물론 이 정도의 색감과 영상미는 아님에도.. 영화가 이것과 비슷하게 기마병을 모아 반역을 준비합니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전투씬이 나오지 않았던 점과, 금성대군의 심복인 동지중추원사 조유례가 반란을 위해 이홍위를 데리러 갔을 때 벌어지는 한명회의 군사들과의 전투는.. 영화에 긴장감을 한 스푼 정도 넣어주지만, 그것 말고는 서사적으로 기능하는 점이 없이, 그저 이홍위와 엄흥도의 상황을 부각시키는데 사용된 기능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아쉬웠고요. 전반부는 너무나 전형적인 한국 영화였고, 후반부에 조금 변화를 주려던 감독님의 시도처럼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역사 왜곡의 논란이 생길까 주저하신 게 티가 나긴 했지만, 만약 훨씬 더 대담하게 나갔더라면 이 영화는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5. 총평
상당히 좋은 출발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6년 붉은 말의 해, 여러 작품들이 개봉 예정이죠. 제가 3년을 기다려온 나홍진 감독의 <호프>, 앤디 위어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프로젝트 헤일메리>, 간만에 좀비물로 복귀하는 연상호 감독의 <군체>, 대망의 <토이 스토리 5>,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듄: 파트 3>, 그리고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둠스데이>까지. 확실한 건, 이번연도는 영화 풍년이 될 것이란 겁니다. 2025년에는 좋은 작품은 많았지만 극장가 흥행에 청신호가 켜지진 못했죠.
그리고 이번에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5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응당 관객은 모인다는 말을 증명했습니다. 2026년에는 블록버스터 대작의 개봉이 많이 예정된 만큼 <왕과 사는 남자>는 제 기억 속으로 잊힐까 걱정이었습니다. 제가 단점 부분에서 언급했듯 영화가 살짝 완급조절이 부족하고, 아무래도 설날 특선 사극에 가까웠기에 제게는 평작 정도의 인식에 그쳤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지금 다시 곱씹어보면 오랜만에 나온 사극이라는 점과, 단종의 유배 생활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조명한 영화가 사실 이 영화가 거의 처음이기에 소재만 놓고 보더라면 훨씬 더 잘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기야 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감동적인 사극이 나왔다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겠지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도 남지만 감독님의 전작보다는 훨씬 발전된 성과를 보여준 <왕과 사는 남자>, 영화의 해 2026년의 운치 있는 시작이자 장항준 감독님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영화였습니다.
The trick, William Potter, is not minding that it hurts.
감사합니다, Kevin Lee였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6/10)
장르가 아무리 뒤섞인대도 놓지 않는 휴머니즘
+) 그나저나 벌써 5번째 리뷰네요. 제 별 거 없는 블로그 글을 지금까지 봐주신 여러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리고, 다음 리뷰는 조금 더 밀도 있는 분석이 필요한 영화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곧 학교도 개학이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이르면 3월에는 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중간고사를 고려하면 또 5월까지도 늘어날 거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더욱 더 좋은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