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서 바라본 루소, 기생충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

Review No. 1 <인간 불평등 기원론>

by Kev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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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꼭 해보고 싶었던 리뷰가 있습니다. 바로 <기생충>을 리뷰하는 건데, 철학 사상서와 함께 리뷰해보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 큰 맘 먹고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었습니다. 그닥 어렵진 않았어요. 오히려 할 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좀 큰 맘 먹고 제대로 된 리뷰를 해보기 위해 기택의 시점에서 해석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박 사장의 시점에서 해석한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리뷰를 올릴 겁니다. 현재 <자본론> 열심히 읽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마 곧 후속 리뷰 나올 것 같습니다.

기택

기택은 기정과 기우의 아버지로, 했었던 사업들은 모두 실패하여 반지하에 살고 있는, 즉 우리 사회의 빈민층입니다. 저는 우선 기택 가 (家)의 사람들을 모두 "자연 상태"라는 용어로 지칭하겠습니다. 자연 상태의 기택 일가는,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에 변곡점 하나가 찾아오죠. 기택의 아들 기우의 부자 친구, 민혁이 갑작스럽게 교환 학생이 되며 기우를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속이면서까지 그를 후속 과외교사로 박사장의 가족들에게 소개합니다. 자, 민혁으로 인해 자연 상태였던 기택 가(家)는 처음으로 사유 재산이라는 문명의 전유물을 느끼게 됩니다. 즉, 그들에게는 1순위였던 생존이 2순위로 밀려나고, 박사장의 집에 대한 부러움과 뭔지 모를 동경, 자연 상태에서 탈출하고, 문명화된 인간 사회에 들어오며 불평등에 대한 느낌을 처음으로 받게 됩니다. 기택 일가에게, 불평등의 사회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박 사장 네의 가정부, 문광과 운전기사를 모함하면서까지 그들에게서 직업을 강탈해낸 순간, 그들은 1차원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재산"이라는 구체적인 욕망을 갖고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들이 박사장의 가정을 완벽히 지배해버리는 순간, 그들은 2차적 욕망의 노예가 된 상태입니다. 반지하에서 살며 굶어죽지 않기를 바라며 곱등이가 나와도 대충 튕겨대던

"기택"이라는 가장은 사유재산의 주체인 박사장이 잠시동안 집을 비우자 가족들과 함께 그 사유재산을 잠깐동안 누리며 기우가 가르치는 학생인 다혜에 대한 그릇된 욕망까지 이야기하며, 이제는 사유재산 정복에 대한 욕망뿐이 아닌 그들의 보스인 박사장에 대한 내적 친밀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이 영화에서 불평등 사회의 비극이 절정에 치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 여기서 아주 오래 일했던 사람인데요. 지금 보시는 모니터 위에 강아지 세 마리 사진 붙어있죠?

- 문광


바로 예전 가정부, 문광의 등장이죠. 그들이 한껏 박사장의 재산을 만끽하는 동안 문광은 지하실에 놓고 온게 있다면서 지하 속에서 살던 그녀의 남편, 근세가 등장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상상이 필요합니다. 한번 축축하고, 어둡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역겨운 지하실 하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만이 있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테리어 같은 문명인의 소재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명인들과 접촉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그는 이미 자연상태로 돌아간 지 오래고, 젖병을 통하여 우유를 마시는 그의 모습은 마치 갓 태어난 신생아 즉 가장 원초적인 상태를 떠오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두고 추종하는 그의 모습 또한 지금 보니 이상하게 토테미즘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 후, 문광과 근세를 보고선 그들을 내쫓으려 시도하는 기택 일가가 보여집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문명을 접했었던 문광은 스마트폰으로 그들이 박사장의 집에서 파티를 하던 것을 찍어 그들을 협박하고, 기택 일가는 그들과 대판 싸우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듯 그들이 싸우는 것을 가장 우스꽝스럽게, 한 앵글에서 담아냅니다.


이 장면에서 삽입된 노래, In Ginocchio Da Te 또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인 사랑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장면과 대비되며 큰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일시적 문명의 도구가 그들에게 승리를 이끌어 주었으나, 결국 그들은 문명인들에게 제압당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면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실 문광이라는 자나 기택 일가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둘 다 박사장에게 부당하게, 즉 기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문명을 얻은 악의 축 (기택 일가)은 그들과 공존해야 할 자연 상태의 문광과 그녀의 가족들을 다시 지하실에 감금시켜버립니다. 그 와중에서 문광은 죽어버리기까지 하죠. 그 후, 영화는 폭우가 쏟아져 침수된 기택 가족의 집을 보여주고,

그들도 결국 문명 상태가 아닌 자연에 굴복해야만 하는 입장의 자연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죠. 그들은 성공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들의 최종적 목표는 생존이나, 성공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죠. 기택과 충숙은 물을 빼내기 바쁜 반면, 기정은 오물이 역류하는 화장실 변기 위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현실에 대한 직시를 반대합니다. 민혁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는 민혁의 선물인 수석 하나를 들고선 멍을 때리죠. 그들은 모두 공통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금전적 의미에서의 "성공"이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성공"은 불평등 사회에 존재하죠.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불평등을 싫어하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남들에게 불평등을 겪게 한 장본인이죠.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모순된 존재지만,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봐도 그들은 주인공이고, 박사장이라는 절대적인 불평등의 원인, 즉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는 문명화된 인간에 대한 핍박을 받는 피해자들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죠. 이 논제는 제가 <자본론>을 다 읽고 나서 더욱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물난리 이후, 기택의 일가는 박 사장 네의 막내아들, "다송"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데,

기우는 그의 학생인 "다혜"와 키스를 하는 등 자연 상태의 인간이 문명에 도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불평등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불평등이란 경계를 깨부수려는 장면이죠. 또 장면 하나가 더 나오는데, 인디언을 좋아하는 다송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던 박 사장과 기택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하긴 어쩌십니까. 사랑하시는데." 라는 말을 기택이 하게 됩니다. 여기서 박사장은 발끈한 듯 근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되냐고 되묻습니다. 이 장면 또한 불평등의 경계를 부수려던 시도였지만, 문명이 존재하는 이상 불평등의 경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루소는 일종의 사회 계약을 통해서 이 불평등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이 영화에서 문광이 살해당하고 근세가 다시 지하실에 감금되는 장면에서 그의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은 붕괴했습니다. 사회계약이 붕괴되고, 살육이 존재하게 된 박사장의 집이라는 "문명적 공간"은 이미 공동체적 이익이 아닌 개인의 욕망으로 얼룩진 상태였죠. 그리고 그 개인의 욕망으로 얼룩진 근간이 흔들린 사회는..

스크린샷 2025-09-03 오전 1.25.00.png 기우는 좌를 향해 눕지만, 수석은 우를 향한다. 수석은 애초에 기우와 반대되는 물체였다.

붕괴로 이어집니다. 근세만 없으면 이 모든 일이 없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 기우는, 자신의 성공을 상징하는 수석으로 근세를 죽이려다 오히려 역공을 맞고 쓰러지고, 근세는 생일파티에 난입합니다. 그러고선 기정을 칼로 찔러 죽이죠.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생일파티에서, 불평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박사장이 코를 막고 근세에게 다가가 차키를 줍는 장면이죠. 이 장면에서 기택은 극도로 분노하여 박사장을 꼬챙이로 찔러 죽입니다.


이 장면에서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기택 또한 자신을 근세에 투영했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둘이 같다고 할 수는 없긴 하지만, 이 "문명"이라는 틀 속에서 그들은 탐욕과 혐오를 앞세우며 서로를 죽이려 듭니다. 이런 것은 "불평등"이라는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마이너스 요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사회계약도 막지 못한, 인간의 탐욕은 루소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문명이 자연의 인간들에게 품게 만든 "상류 사회"에 대한 전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렇게 치열하게 달려가며 승진이나 성적이라는 것을 위하여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십시오, 막연한 목표를 위해 자신의 친구나 가족을 소홀히 대한 적은 없는지, 가끔은 친구에게 이상한 질투심을 느낀 적이 있는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사촌의 말을 듣고는 무언의 열등감을 느낀 적 있는지. 저희가 경제적 형편이 각자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명화된 공간 내에서 자연 상태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 채로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우화이자,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이라는 것의 맨 살갗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Here to the one's who dream.


꿈꾸는 자들을 위해, 중학생 글쟁이 Kevin Lee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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