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No. 02 - 1
이번에 친구랑 같이 <극장판 체인소 맨>을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너무 재밌게 본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짱구는 못말려> 정도만 봐왔던 저는.. 2D로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15세인데도 과감없는 고어 씬이나 노출 장면은 정말 인상깊게 본 거 같습니다. 물론, 이 영화 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사실 원래는 영화 내적인 부분을 파고들려고 했는데.. 이번에 오동진 평론가님께서 적으신 리뷰에 대한 저의 반박을 다루도록 할게요. 이건 절대적으로 저의 주관적인 내용이며, 상대방의 의견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체인소맨: 레제 편>은 체인소맨 만화를 보지 않은 일반 관객도 쉬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애초에 등장인물들의 과거보다는 특정한 중심 서사에 집중하며, 등장인물의 과거 서사 없이도 탄탄하게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인 경로를 택했죠. 그렇지만 생기는 단점으론.. 좀 영화가 가벼워 보인다거나, 갑작스러운 전개 혹은 저 인물의 행동에 당위성이 사라진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과 똑같이 흥행가도를 달리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계속해서 보여주며,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하고 그 누구의 시점으로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전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두 애니메이션 모두 엄청난 흥행을 터트린 데에는 분명한 줄거리와 쉽게 감동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2D의 극한을 보여준 <체인소 맨: 레제편 (이하 체인소맨)>이나 3D과 2D의 결합의 극한을 보여준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이하 귀칼)>의 기술적 발전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영화의 하위 장르로 볼 것이 아닌, 어쩌면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새로운 매체, 혹은 패러다임으로 인식해야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발전은 긴장해야 하는 현상이긴 합니다. 애니메이션이 발전할수록, 한국 영화계의 흥행 성적은 저조해질 테니까요.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현상을 충분히 타파할 수 있음을 이미 수도 없이 보여줬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하면서도, 소비자들은 한국 영화에 대한 선택을 저버리지 않았고, 이를 그저 과거의 영광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OTT와 오동진 평론가님께서 지칭하시는 "돌연변이 상영물"을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1차원적인 생각입니다. 우선 영화값이 너무나 오른 이유도, OTT의 자본력과 제작에 대한 관용성이 흔히 말하는 충무로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제작사의 간섭도 적으며 막대하다는 점과, 정말 재미없는 영화들의 개봉이 주된 이유겠죠. 한국의 영화 산업이 망해간다면, 그건 더 이상 외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생충>은 그 막대하다는 할리우드의 자본이 들어간 전세계 박스오피스 2위를 달성한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겨냅니다. 작가주의 영화가 아직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나 어렵다? 그것은 절대적인 착각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으로 오래도록 남을거 같네요. 오동진 평론가님께서 말씀하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아나키즘, <어쩔수가없다>의 자본주의와 가족, 다 좋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거죠.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박찬욱 감독의 야심작마저 저조한 성적을 내는 것에 대해 한탄하시는거 같은데, 당연히 대중은 이해하기 어렵고, 이제는 박찬욱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독특한 미장센마저 축소시켰으니 남는 건 메세지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영화를 5번, 6번이고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오히려 <어쩔수가없다>의 혹평의 원인을 꼽으라면, 공감할 수 없는 만수라는 자의 가족이 중산층이라는 것과, 거의 3번은 봐야 이해가 가는 영화의 다소 직관적이지 못한 상징들과 메세지라는 점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할리우드의 고예산 영화라도, 재미가 없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동과 재미가 없다면 관객은 그것을 찾을 이유가 없죠.
즉각적인 감동과 재미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결코 간단명료하지 않은 구축된 서사의 감동은, 어떤 매체가 되었건 꾸준히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주제였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들은, 그 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죠. 기생충 또한 구축된 서사의 감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사장이 죽고 기정이 죽고 나서의 씁쓸함, 눈 쌓인 언덕에서 기우가 조용히 바라본 그의 아버지의 깜빡임은 관중으로부터 마음 속 어딘가에서 "기우가 그래도 노력하면 저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것이 곧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엄청난 씁쓸함과 우울이 밀려오죠. 저같은 중학생 리뷰어도 그 점을 캐치할 정도인데, 과연 평론가 분들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의 느낌이 들었을지 감이 잡히지도 않습니다. 하다못해 감동과 재미는 "Kiwi!"라는 오래된 유튜브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화는 가장 기본적 전제에서 재미와 감동을 깔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 재미와 감동을 감독만이 느껴서는 안되고, 평론가들만이 느껴선 안되죠. 영화를 느낄 줄 아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닙니다. 저도 당연히 <샤이닝>보단 <미션 임파서블>이 좋고, <위대한 개츠비>같은 고전소설보단 <아메리칸 사이코>같은 현대소설이 좋습니다. 대중이 영화의 메세지를 이해하고, 한번의 관람으로도 깊은 여운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영화인 것입니다.
여기서 오동진 평론가님은 완전히 영화라는 매체의 근간을 흔드는 말씀을 합니다. <체인소 맨>의 제목은 절대로 영화의 내용도 알 수 없다는 듯한 제목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미치광이 삐에로>는 무엇입니까? 그것도 하나의 돌연변이 영화인가요? 만약 제목으로 영화의 내용을 판단할 수 없다면, 저희는 영화사에 영향을 미친 많은 영화들을 뽑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 돌연변이들이 영화사에 일으킨 파장은 얼마나 컸죠? <네 멋대로 해라!>에서 출발한 점프샷이 영화사에 미친 연출적 파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굉장히 지대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언뜻 보면 절대 베트남전 영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옥의 묵시록>, <시계태엽 오렌지>,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그럼 오동진 평론가님이 말씀하시는 논리가 과연 영화에만 적용되는지 볼까요? 지금은 고전이 된 애니메이션, <페퍽트 블루>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은요? 이 두 애니메이션에 대해 평단이 보낸 찬사는 엄청납니다. 국내 평론가 몇 명만 뽑아도 <페퍽트 블루>에 대해 호평한 것은 크게 드러나 있죠.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하위 장르로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체인소 맨>과 <귀멸의 칼날>은 영화적 구도나 서사를 직접 부여하며, 영화에 근접할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줬죠. 저희는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 파동이 된 것을 목도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최대 흥행작 <좀비딸>의 기록을 부수며, 한국 영화가 설 자리는 점점 부족해졌습니다. 이에 따른 한국 영화가 찾아나갈 개선점은 없을까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 장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3.5점? 이건 이미 애니메이션은 하나의 문화적 패러다임이나 매체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체인소 맨>과 <귀멸의 칼날>그리고 <주술회전>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일어서려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요?
절대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배제와 배척은 더 이상 현대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시대적입니다. 일본은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 파트너이고, 현재는 활동하지 않는 그룹 뉴진스 (NewJeans)도 일본 도쿄돔 투어와 일본어를 섞은 노래를 냈을 만큼, 문화적으로도 큰 부분을 공유하는 파트너이죠. 일본은 저희에게 우호적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 우호를 배척으로 받아치면 안되겠죠. 오히려 저희의 매력적인 영화가 다시 수출되면 됩니다. <기생충>을 보십시오, <올드보이>를 보십시오. 또는 <미나리>나 <성난 사람들>같은 외국계 영화들을 보십시오. 모두 한국에 기반을 둡니다. 무조건 울음으로 밀고 나가는게 한국 영화가 아니에요. 김기영 감독께서 보여주신 제 4의 벽을 깨는 혁신적인 연출 (하녀, 1960)과 영화 촬영을 위해 몇 개월을 기다려 태양이 버스를 비출 때를 기다려 찍은 그 한 장면 (마더, 2009). 서양의 것을 섞고, 한국적인 것을 섞은 오컬트 (파묘, 2023 / 곡성, 2016). 그것이 한국 영화의 장점입니다. 한국 영화는 연출에서 보이는 끈기와 혁신, 그리고 창의성은 이길 자가 없습니다. 실제로도 <곡성>은 외국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 크게 호평받았죠. <올드보이>? 말도 마십시오. 결국 한국 영화적인 미를 잘 살리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고, 이런 영화들을 잘 만드는 자가 극장에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철 지난 조폭 코미디 느와르를 저희가 볼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이미 <짝패>, <신세계>, <부당 거래>, <아저씨>, <마녀>, <베테랑>... 질리죠. 저희가 아무리 <범죄도시>를 8편까지 우려먹는다고 해도, "마동석"이라는 장르에는 언젠가 한계가 생길 것입니다. "마동석"이 범죄자를 패고, 체포한다는 걱정없는 사이다 전개는 언젠가는 끝나버릴 것이기 때문이죠. 깨진 독에다가 물을 부어봐야 뭐합니까. 다시 유약을 바르고 구우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독을 만드는 참에 깨진 독도 보수를 하고요. 개인적 생각이지만, 한국의 작가주의 영화와 지극히 평범한 코미디나 명절 특선 영화가 극장가를 차지하는 순간, 관객들도 차츰 OTT가 아니라 극장으로 나설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국 영화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런 매력이 있다면, 가끔은 신파의 매력도 있는 그런 영화. 아직 극장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점령당했다는 말은 굉장히 편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현재 좋은 영화의 대체제로서 관객들이 소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평론가들에게만 좋은 영화면 뭐 합니까, 재밌어야 즐겁게 소비하죠.
애초에 느린 전개와 호흡을 요구하는 PTA 감독의 영화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이제 시대의 흐름과 좀 달라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씨네마로서의 영화를 원하는 자들은 주는 추세이고,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감동과 느낌을 원하는 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물론, 20대와 30대 중에서도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많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재밌는 영화를 원하지, 진지한 영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플라워 킬링 문, 2023>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도 이 까닭이고, 작가주의라는 개념마저 이러한 추세로 인해 이제는 저물어가는 석양입니다. 물론 이러한 유행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2025>에서 표현된 만수의 대사, "아니요, 시대를 거스를 수가 있나요." 라는 것은 물론 만수라는 인물의 흑화를 상징하지만, 그것마저 박찬욱 감독이 모든 다른 감독들에게 하는 씁쓸한 위로 같았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플롯, 감동과 여운을 누가 가장 길게 줄 수 있는지 경쟁하게 된 이 업계에서, 한국 영화는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오동진 평론가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예술영화 좋아합니다. 영화는 대중 예술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과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은 영화 구도를 상당 부분 차용하며, 평론가님께서 뭐라고 혹평을 하셔도 영화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히 캐릭터를 비추는 듯한 느낌의 카메라 구도가 아니라, 핸드헬드로 마치 카메라 감독이 따라가는 듯한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카메라는 고정되어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한편의 영화를 본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은 에로티시즘적 해석도 가능하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전형적인 타락 서사로, 아카자에 대한 작은 담론을 나눌수야 있었겠죠. 제가 오히려 반박을 한번 해보자면, "올 추석, 웃기는 놈이 보스다!"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 <보스>에 몰릴 관객이 있다는 것마저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맞습니다. 영화는 첫 인상, 물론 중요하죠. 그렇지만 예고편만 봐도 철 지난 조폭 코미디물인 <보스>에 관객이 몰린다고 생각하거나, 개봉하자마자 평가의 7점, 그리고 대중과는 거리가 먼 PTA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관객이 몰리는 걸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이번 연도에는 <범죄도시>가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간신히 버티던 극장가가 무너졌죠. <범죄도시>가 없다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흥행작이 개봉하지 못하는 극장가가 과연 건강한 극장가일까요? 저희는 한국 영화 흥행 참패의 원인을 외부에게 돌리면 안됩니다. 관객은 점점 흥미를 잃거나느 한국 영화에 변화가 오지 않으면, 외국 영화로 간신히 유지되던 극장가마저 붕괴됩니다.
영화는 재밌어야합니다. 저는 상업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영화의 대중 예술이라는 타이틀이 무안하지 않도록 예술적인 영화도 간혹 나와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그렇지만 영화가는 항상 상업적인 작품이 있었고, 예술적인 작품과 상업적인 작품 그 둘이 이루는 조화는 항상 극장가를 사람들로 붐비게 만들었습니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과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개인적으로 연출과 서사 면에서 둘 다 상업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돌연변이 흥행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파적인 평가는 자제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Say hello to my little friend!
감사합니다, Kevin Lee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