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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Oct 23. 2023

중2 아들에게 선물한 '비움'

너의 책상이 말끔해질 날을 기다릴게

늘 그랬듯 오늘 아침도 청소기 미는 것으로 시작했다. 각자의 일터로 출근하고 등교한 뒤 세 남자의 방을 보고 있으면 그들 아침이 어땠는지 눈에 들어온다. 남편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딱 정해진 시간만큼을 보낸 것 같다. 사용한 수건도 베란다에 잘 걸어놓았고, 입던 옷도 그곳이 있을 자리에 놓여 있었다. 봉이는 어젯밤에 책가방까지 다 싸놓아서 여유가 있었던지 책상 정리는 물론 침대 위 정리도 완벽하다. 잘 개켜진 이불 위에 애착 인형이 예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승리 방. 승리는 워낙 정리맨이라 웬만큼 치우지 않았어도 깔끔하다. 그렇더라도 오늘의 방은 왠지 무거워 보인다. 며칠 봉이 방 책장을 정리하고 나니 승리 방 책장이 더 답답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몇 년의 무관심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청소기를 밀다 말고 홀린 듯 그곳에 들어갔다. 그러곤 책장 속 종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보지 않는 책은 폐지와 무엇이 다른가.)


봉이 방 책장 상태와 달리 그곳은 학원에서 푼 교재들이 많았다. 그만큼 몇 년을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일부러 남겨둔 건 아닐 터이니 과감히 버려주기로 했다.


다음은 진짜 책. 출간된 지 20년은 지났을 ‘보물찾기’ 시리즈부터 초등 저학년용 학습물은 과감히 빼내 출입구 옆에 책 산을 만들었다. 산은 계속 높아져 위태로웠다. 이런 종류는 때가 지나면 들춰볼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버리는 게 맞다. 초등용이라 해도 나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책은 남겼다. 요즘은 청소년용 소설이 수준이 높아서 내가 곧잘 읽는다. 책장 한 칸을 문학류로 채웠다. 그 옆 칸은 초등‧중등‧고등용 논픽션류로 채웠다. 이를테면 풀빛출판사의 ‘논쟁’ 시리즈와 ‘함께 생각하자’ 시리즈는 초등 고학년용으로 나왔지만 깊이와 범위가 고등 수준을 커버한다. 바라건대 승리가 꼭 읽어보기를….


그런데 꼭 버리는 게 옳은지 아닌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책이 보인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내내 초급 수준으로 머물면서 학원만 바꾼 흔적을 그대로 지닌 영어 원서들이다. 문장은 한 열 개 정도밖에 없는 걸 무거운 양장 표지로 가리고 있는 버전부터 표지는 얇지만 판형은 좌우로든 상하로든 넓어서 책장에 눕혀야만 들어가는 버전까지, 모두 민폐 형이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영어 조기교육을 부추기는 사회가 문젠지, 이 사회에 발맞추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을 조절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였던 건지, 그런 사회와 개인의 불안을 생계유지의 발판으로 삼는 학원이 문젠지 마음속이 시끄럽다.


이제는 그런 선택이 힘들었던 혼란한 시기도 지났고 입시 대열 끄트머리에 어쩔 수 없이 줄 서 있으니 오늘은 그 상념의 책들을 버리는 것으로 홀가분해지기로 했다.




버릴 책 산이 높아진 만큼 책장은 헐거워졌다. 비움은 여백을 만드니 준이도 그 여백을 보며 무언가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여유를 가질지도 모르겠다.


승리 책상은 늘 나를 감탄케 했다. 지우개가루가 어제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흔적을 남길 뿐 책상 위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어제 마친 숙제와 오늘 학원에 가져갈 교재를 왼쪽 모서리에 단정하게 정리해 놓고 중앙은 환하게 비워둔 책상을 보고 있으면, 준이의 마음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정리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 중에 있다는 긍정의 현재를 상징하니까.


그런 책상이 여러 과목의 프린트물과 교재로 번잡해질 때가 있는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을 앞두고 2주 정도와 마침내 시험이 끝나고 며칠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음을 호소하듯 그 상태로 있다. 시험 기간까지 합치면 3~4주 정도다. 그러다가 그 모든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것이 말끔해진 책상 위다.  


그런데 요새 승리의 책상은 여전히 시끄러운 상태에 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 4주가 다 되어간다. 매일 아침 흐트러진 그대로, 아니 어제 놓였던 프린트물이 바뀌지도 않고 오늘 그대로인 아침을 4주 가까이 보고 있다. 내일은 치우겠지, 주말에는 새 마음 가지겠지, 그렇게 바라며 책상 위를 빈틈을 조용히 닦아주고 나왔다. 그런데 이틀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오늘 아침, 책상은 주말 전 금요일 상태와 똑같다. 승리에게 다시 시작은 버거운 일이 된 걸까.




혼자 공부를 해보고 정 안 되면 학원을 다니겠다고 해서 2학기 들어 두 과목을 학원 접수를 했다. 과목마다 학원을 다니는 다른 친구들보다 승리는 짬짬이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쉴 시간이 있다는 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안에 그다음 삶을 계획하는 회복 탄력성이 컸던 것은 그 빈 시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험 준비를 혼자 해야 하니 시간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니까.


그런데 학원 개수가 늘고, 학원에서 시키는 숙제량이 늘고, 시험 대비도 학원이 알아서 해주니 스스로 계획할 필요가 약해진다. (물론 학원을 ‘활용’하는 수준이 되는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학원 수혈의 효과를 알아버린 승리 이야기다.) 지금 굳이 마음을 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학원에서 정신 차려야 한다는 신호를 준다. 그 신호에 맞춰 움직이면 된다. 내 시간은 이제 학원 선생님의 것이다!


승리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해진 지금이 버거운 게 아닐까 싶다. 아파서 하루 빠지면 보충을 오라고 하니 주말에도 쉴 시간이 없다. 주말에 못 쉬니 평일에 힘이 안 난다. 그냥 겨우겨우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무언가가 비었다고 판단해 채워야겠다는 의지를 낼 여유가 없다. 일상이 너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원을 그만둘 용기도 승리에게는 나지 않는다. 탁탁 짚어주니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공부할 시간을 마술처럼 줄여주기 때문이다. 학원에 가기만 하면 스스로 노력할 힘이 덜 드니, 시간과 노력을 돈을 주고 교환한 셈이다. 지켜보는 엄마는 슬프고 애처롭다.




학원을 가겠다고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 이제 와서 그만 다니라고 엄마가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해결책으로 학원 끊기를 말한다면야 나는 진심으로 기쁠 것이다. 모든 게 ‘때’가 있고, ‘때’라는 것은 자신의 자발성에 기반한 것이니 제3자인 내가 관여할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림이다. 그냥 기다리기가 뭣해서 오늘은 하나의 비움을 선물했다. 책장에 가득 찼던 시간의 폐지들을 대신 정리해 주기.

승리가 오늘 집에 돌아왔을 때 빈 공간을 보며 숨을 한번 크게 내쉬어 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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