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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May 22. 2024

말 습관 1

화내는 대신,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오늘 아침이었다. 8시가 1분이 넘고 2분이 넘고 7분이 될 때까지 아들이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들 방문을 응시하던 나는 아무래도 아들이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든 것 같아서, 이럴 때는 엄마가 깨워주는 게 아들을 돕는 일이라 판단하고 방문을 열었다. 아들이 마침 일어나려고 했던 참인지 방문이 열리는 속도에 맞춰 그의 상체가 침대에서 스르르 올라가고 있었다. 진풍경이었다.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굶었니? 굿모닝!”

아침부터 썰렁 시리즈를 내뱉었다.     


어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잔 아들은 머리만 간단히 감고 드라이를 하러 안방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아직 반도 안 말랐을 것 같은데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집인데. … 응. 알았어.”

친구가 학교 같이 가려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여름이라 반바지와 티셔츠만 챙겨 입으면 되니 옷 입고 가방 메고 신발장까지 나오는 데 1분도 채 안 걸린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들은 어느새 운동화에 발꿈치까지 밀어 넣고 있었다. 보통은 엄마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데, 급했는지 버튼도 미리 눌러져 있었다.      

우리의 말은 그저 평온한 아침을 맞았을 뿐인데... 사진: 픽사베이

잘 가라는 인사를 하려고 주방에서 신발장으로 향하는데, 열린 아들의 방문으로 시커먼 어둠이 쏟아진다. 커튼이 어젯밤에 닫힌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 이야기는 창문도 닫혀 있다는 뜻이다. 아들이 몸만 겨우 일으켜서 옷 입고 가방 메고 자기 방을 전혀 둘러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는 뜻이다. 시험 기간이라고,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애쓴다고,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하며 엄마가 직접 해주다 보니 결국 엄마 일이 되고 만 커튼 젖히고 창문 여는 그 간단한 일.

사춘기 아들 방 환기는 본인 스스로 해야 맞다. 다른 사람이 환기되지 않은 방에 들어가는 일부터가 적응 힘든 고역이니까.     


아침에 정말 늦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습관처럼 해야 할 일이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3년 전부터 강조했다.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초기에 아들은 자주 잊었고, 따라서 엄마의 주의는 잦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정착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돌아왔을 때 자신의 체취가 가득한 방 안에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느끼기에도 냄새가 그닥 나지 않는다. 2차성징의 호르몬 활동이 최고조인 시기가 지났나 보다. 이제는 창문을 여는 대신 나갈 때 향수를 뿌린다.

향수를 뿌리고부터 환기를 하지 않고 등교하는 날이 잦아졌다. 물론 그 횟수가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다 보니 웬만하면 잔소리하지 말자는 다짐에 그냥 내가 하고 만다. 그런데 역시나 한 번 해주는 게 문제다. 자신이 어떤 걸 하지 않아도 되어 있는 걸 보면 그냥 안 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다. 그 사람이 경우가 있고 없고, 생각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요새는 아들이 창문을 열고 나간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내 마음의 소리가 외친다. 바로잡을 시기다!


그 시커먼 어둠을, 어제와 마찬가지의 어둠을 오늘 아침에 다시 보았을 때, 내 안의 용광로가 훅 끓어오름을 느꼈다. 평소의 나라면 나는 다음과 같은 반응 중 하나를 택해 화를 뿜어냈을 것이다.

내 말의 질주 본능. 붙잡을 수 있을까?


1. “왜 커튼 안 젖히고 창문 안 열어?”

-비난형.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눈빛에 아들은 ‘왜 아침부터 짜증이지?’ 하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그대로 나간다.

2. “또 커튼 안 젖혔네. 제발 좀 해라, 엉?”

-잔소리형.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엄마 태도 때문에 하기가 싫네요, 라고 아들이 속으로 말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꿀꺽.

3. “엄마가 맨날 네 방 창문 열어주는 거 모르지?”

-한탄형. 엄마가 너 때문에 번거롭다는 뜻을 전하지만, 아들은 그게 뭐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굳이 왜 ‘내 방’ 창문을 여냐고, 안 열어도 그만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4. “승리야, 지금 커튼 젖히고 창문 열고 나가.”

-즉각 행동 요구형. 아들은 엄마와 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다시 들어가서 대충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엄마 때문에 엘리베이터 내려갔잖아, 원망스럽기도 하다.      


네 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해 말하더라도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내 기대와 다르다. 나는 분명 옳은 말을 하는데 아들의 반응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칭찬도 아니고 아침부터 얼굴 붉히고 자신을 힐난하는 태도에 기분이 좋아질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나는 내 태도를 바꿀 필요성을 꽤나 오래전에 진지하게 가졌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잘 몰랐고, 또 욱하는 마음을 자제하는 쉼표를 실천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몇 가지 팁을 알아냈다.(자녀교육, 대화법 등의 전문가 강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화를 드러내는 게 아니고 상대방이 그 말에 수긍하고 행동을 수정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나 아빠가 자신 때문에 화를 내는 모습이 무서워서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자신을 여전히 아이로 생각하고 윽박지르려는 부모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이가 창문을 열고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등교하는 습관이라면 그걸 어떻게 실행해 나갈 수 있는지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하자.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사랑받는 말의 특징


행동 전략

1. 일단 고쳤으면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화가 뿜어져 나오지 않도록 쉼표를 찍자. 약 10초.
2.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열하자. 짧게.
3. 지금 당장 하라는 것은 억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 유예 기간을 주자.
4. 천천히 차분하게 말하자. 조용하게 단호하게.      


그리하여 오늘 아침 내가 아들에게 건넨 말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어둠을 확인하고 10초 뒤였다. 그 시간 동안 아들은 운동화를 다 신었다.      


“내일부터 아침에 학교 갈 때 커튼 젖히고 창문 열고 나가.”     


아들은 엄마의 조용하고 단호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는 대답했다.     


“네.”     


나는 아들에게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들도 내게 눈을 맞추어 주었다. 우리의 아침은 괜찮았다.     

내일 커튼이 열리고 창문이 열려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내가 내일 설령 커튼이 닫힌 어둠을 마주하더라도 화를 내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아들에게 눈짓 정도를 할 수는 있겠다. 말의 습관도 처음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의 성공 기억이 내게 좋은 습관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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