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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May 25. 2024

말 습관 2 - 칭찬 편지

밥 먹고, 똥 싸고, 잠자고, 일어나는, 너의 모든 순간을 칭찬해

한 코칭 전문가가 제안한 방법인데, 아이가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칭찬 편지’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루 동안 한 일 중 칭찬거리를 아이와 부모가 각각 적어 서로에게 보내는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노트 한 권을 준비한다. 

-하루 한 페이지씩 쓴다. 

-한 페이지를 상단과 하단 두 부분으로 나눈다. 

-상단은 아이의 공간, 하단은 부모의 공간이다. 

-아이는 오늘 자신이 수행한 잘한 일을 적는다.

-아이가 쓴 내용을 읽고 부모는 그에 대해 피드백하거나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의 칭찬거리를 쓴다.

-아이가 그 내용을 확인한다. 

-다음 날에도 아이의 칭찬과 부모의 칭찬 교류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칭찬이라면 나의 전문 아닌가. 

그런데 아이가 참여할지가 관건이었다. 전문가는, “아이는 대체로 편지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가 꾸준히 써서 아이에게 칭찬 편지를 보내면 아이도 나중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일단 부모가 먼저 해보라. 50일 정도.”라고 조언했다.     


좋다. 나는 써보기로 했다. 

나는 승리 책장에서 빈 노트 하나를 꺼냈다. 초등학교 때 여유 있게 샀다가 남은 알림장이었다. 알림장은 상단과 하단을 구분할 필요 없이 한 페이지에 두 날짜로 나뉘어 있으므로 맞춤했다. 나는 상단 공간을 비워두고 하단 부분에 그날의 날짜를 썼다. 그리고 ‘1’이라고 적었다.      


무얼 칭찬한담?     

안 해본 일이라 막연했다. 뭔가 거창한 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늘 똑같은 일상에서 대단한 게 매일 나오겠나…? 

너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적는다

나는 너무 대단한 걸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승리의 어제 하루를 떠올려 보았다.     


몇 달 전 승리에게 국어 문제집을 하나 사다 주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해서 산 문제집이었다. 그때 우리는 매일 한 지문씩 풀기로 약속했다. 스스로 부과한 숙제를 수행한다는 뿌듯함과 꾸준히, 천천히, 조금씩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독력이 생기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     


잘해 나갔다. 그러다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 한 달 넘게 멈추어 있었다. 승리가 국어 문제집을 아예 까먹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승리를 보고 말했다.     


“국어 문제집 오늘 하나 풀고 자자.”

승리는 나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생각났다는 표정이 되었다.

“네.” 

“엄마가 옆에 있어 줄까?”

“혼자 할게요.”

“그래라.” 

너무 밀어붙이지 말자.      


승리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승리에게 갔다. 

“엄마 먼저 잔다. 잘 자.”

“나 국어문제집 풀었다요.”

“그래, 잘했다.”     


나는 칭찬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1. 승리가 국어 지문 하나를 스스로 풀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멋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또 하나가 생각났다.     


2. 영어 지문 문제 풀이 과정을 자신 있게 적어 내려갔다. 무엇이 왜 틀렸는지 파악하는 힘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 이렇게 매일 훈련을 하면 6개월 뒤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무척 기대된다.     

나는 이 노트를 승리 방 책상에 올려두었다. 승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다음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1. 승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받지 않아서 잠들어 학원 못 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한 시간 뒤 전화가 왔다. 미리 학원에 가서 테스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멋졌다.

2. 학원 끝나고 승리에게 전화가 왔다. 걸어오겠다고,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또 슬며시 노트를 펼쳐서 승리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다음 날 나는 이렇게 적었다.     


1. 승리가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단다. 친구들과 게임이 아닌 운동을 같이하며 좋은 관계를 나누는 모습이 훌륭하다.

2. 주말 약속 때문에 선생님께 미리 연락해 보강을 잡았다. 자기 할 일을 알아서 수행하는 자세가 좋았다.     

세 번째 편지를 두고 나온 저녁, 나는 승리에게 물었다.     


“책상 위에 있는 노트 봤어?”

“응.”

“읽어봤어?”

“응. 근데 왜 위에는 비었어요?”

“네가 네 칭찬 하나 써 보라고.”

“귀찮은데….”

“엄마 칭찬 읽는 것도 귀찮아? 엄마도 쓰지 말까?”

“아니.”     


나는 그렇게 매일 밤 칭찬 편지를 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 노트를 볼 수 있도록 펼쳐서 승리 책상 위에 올려둔다. 승리는 그걸 읽고 자신이 매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한 일들이 칭찬받을 일이라는 생각으로 뿌듯할까? 


아이가 자신에 대한 좋은 상을 가지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는 제안했지만, 나에게는 그 이전에 내게 도움이 되었다. 늘 아이에게 기대가 있었다. 80점을 받아 오면 ‘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90점이 될 텐데.’ 90점을 받아 오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0점이 될 텐데.’ 100점을 받으면 ‘다른 과목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아이가 무언가를 잘하면 그 자체로 칭찬하면 되는데, 그 이상을 욕심부렸다. 편지를 쓰고부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한마디, 선택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긴 인생의 여정에서 아들이 지금 여기에서 제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너는 잘 살고 있다

조급했던 마음에 쉼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많이 여유로워졌다. 예비 입시생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일 학년일 수도 있지만, 숨을 한번 고르니 거기에 매여서 우리에게 좋은 점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들도 언젠가는 자기에게 칭찬을 할까? 그걸 적을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가 자신을 칭찬할 맘이 생기면 아들은 노트 하나를 준비해서 엄마 모르게 쓸 것 같다. 엄마에게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스스로 기록하는 용으로.      


중요한 것은 엄마가 자신을 믿고 지켜보고 있음을 아들이 느끼는 것이다. 무언가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는 있어도 엄마는 아니라는 것. 현재 내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엄청나게 훌륭한 일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이렇게 행복해도 된다고 안심하고 믿는 것


이것들이 내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의 의미이다. 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는 매일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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