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좋아요? 펜이 좋아요?
연필을 선호했다.
학생 때 내 필통에는 펜 대신 연필과 지우개가 가득했다. 강단이 부족해 물렁거렸던 정서가 글씨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어떤 날은 친구들이 (글씨가) 예쁘다고 모여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반항하냐고 선생님께 불려 가기도 했다. 들키기 싫은 글씨가 쓰이는 날 마음대로 지울 수 있는 연필이 좋았다.
이제는 연필 대신 펜을 소비한다.
창피해도 빈틈을 드러내고 주변 조언을 받으면서 크고 싶어졌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대신 펜만큼은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내 손에 맞는 것으로 찾기 위해 안 써 본 펜이 없을 만큼 다양하게 구입하고 구했다.
펜을 쓰면서 크게 세 가지가 변했다.
하나. 신중해졌다. 쉽게 쓰고 지울 수 없어서.
둘. 담대해졌다. 어차피 못 지우니 에잇 모르겠다 하고 써서.
셋. 옛 친구들과 돈독해졌다. 내 모자람을 드러내서.
이게 무슨 인생 3회차쯤 사는 사람이 하는 말인가 싶겠지만 글씨체에는 쓰는 이의 성격과 심리가 그대로 담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급함, 차분함, 소심함, 예민함이 드러난다. 글씨가 마음에 안 든다면 글씨를 고치기 전에 마음을 달리 갖는 편이 빠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아직 마음에 드는 글씨를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