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인간을 바꾸는 순간. 브랜드 세계관.
“이제 집에 가서 밥 먹고.. 또 놀자?”
“싫어. 집 말고 또 따른 데 놀러 갈래!”
“집에서도.. 또 놀면 되지”
“집 말고 따른 데서 놀고 싶어!”
아이는 집에 돌아가기가 싫다. 집에 가면 ‘안된다’고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일까?
결국 집 근처 몰에 들러 좀 더 뛰어 놀았다. (스타필드 감사합니다)
아이에겐 걱정없이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스타벅스와 애플스토어를 떠올려보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세계관이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조금씩 다른 캐릭터로 변모시킨다.
애플의 세계에서 인간은 더 확장할 수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애플스토어는 사람들이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상태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오래 앉아 있기보다는 선 채로 제품을 탐색하게 만들고, ‘지니어스’라 불리는 직원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의 활용법을 다루는 강의가 상시적으로 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의 시각 언어 역시 미니멀하다. 장식은 최소화되고, 시선은 제품과 기술에 집중된다.
반면 스타벅스는 집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을 지향한다. 스타벅스의 세계에서 인간은 성장하거나 성과를 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존재해도 되는 사람이다.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된 테이블 배치, 이름을 불러주는 호명 방식, 과하지 않은 조도와 잔잔한 음악은 아무 목적 없이도 한 개인으로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물론 최근의 배달 강화나 호출벨 도입 같은 변화는 이러한 세계관을 흔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공간은 브랜드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를 드러내는 직접적인 언어다. 공간은 브랜드 세계관이 가장 입체적으로 구현되는 매체다.
아이는 그래서 끝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집에서의 아이는 모래를 흘려서는 안 되고, 공을 던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규율을 지키며 놀아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밖에서의 아이는 다르다. 모래를 흘려도 되고, 공을 던져도 된다. 밖이라는 공간은 아이를 놀이터의 놀이꾼으로 만든다.
집과 밖은 단지 장소의 차이가 아니다. 각각은 아이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요구하는 세계다.
공간을 꺼낸 김에 올리브영을 짚고 가보자.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으로 업계를 평정한 올리브영은 언제봐도 놀랍다. 올리브영은 어떤 공간을 만들어낸걸까?
올리브영의 세계에서 인간은 언제나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완성된 ‘better me’가 아니라, 끊임없이 개선되는 'an upgrading self'에 가깝다. 그래서 올리브영의 공간은 자기관리/자기개선을 촉진시키는 장치들이 많다.
우선, 진열된 제품들 중 극단적으로 비싼 가격대는 없다.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가격대가 주력이다. 자기개선을 전제로 한 세계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제품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테스트존이 설계되어 있기도 하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시도 가능한 '선택지'를 넓혀주는 공간에 가깝다.
마냥 선택지를 늘려나가는 것만도 아니다. 올리브영 어워즈는 그동안 확장되어온 선택지를 한 차례 정리하는 행사다.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며 올리브영은 권위를 획득한다. 즉, 올리브영은 확장과 수렴을 반복함으로써 실험과 신뢰를 겹쳐내고 있다. 실험과 신뢰라는 양극에 놓인 개념을 시간적으로 분리해(일상과 연말)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올리브영은 새롭고 실험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마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느낌을 주는데, 올리브영이 만들어낸 공간은 보기 드문 리테일 세계관이다.
공간
1.아무것도 없는 빈 곳.
2.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3.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사전적으로도 공간은 ‘영역’이자 ‘세계’다. 그래서 브랜드의 공간은 단순히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를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장치여야 한다.
브랜드의 공간에 설계해야 할 핵심은 동선이 아닌, 그 공간을 통과하는 인간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