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았던 시간들도 지나가면 쉬이 잊히는 법.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되돌릴 수 없으니 돌아보면서라도 헛헛함을 줄이고 싶었다. 한 해 동안 찍은 휴대폰 속 사진들을 모아 작은 포토북이라도 만들어보리라는 결심은 매년 했지만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마음대로 바뀌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을 보냈나 보다.
올해도 변함없이 한해를 뒤돌아 본다. 예년과 달리 달리 의외로 번듯한 기록이 남게 됐다.
바로 인스타그램의 독서기록.코로나 무렵부터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조금씩 늘려가니 소중한 취미가 되었다. 그에 반해 시간이 지나가면 곧잘 잊어버려서 표지라도 찍어 놓자 했던 것이 계기였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독서 기록첫 피드를 보니 2023년 12월 12일, 이제 1년 남짓 되어간다.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이 시작이었다. 긴 서평을 쓸 자신도 없고, 간단한 내용이나 감상만이라도 적어두면 기억나는 게 있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팔로워도 몇 없고, 보는 이도 알아주는 이도 없었지만 그저 혼자 한 권씩 담아갔다. 오히려 그것이 부담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 같다.
이제 책표지로 그득한 게시물들을 볼 때마다 2024년의 나에게 칭찬하고 싶어 진다.
올해도 독서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았구나 하고.
물론 책을 읽는다고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확실한 것은, 예전에는 펴 보지도 않았을 책들을 읽었다는 것은 나는 살았고 뭐라도 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떠오르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사춘기 자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고,페이지터너소설을 읽으며 아들의 시험기간에 치밀어 오르는 잔소리를 줄이고자 했다.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부모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가볍게 들고 간단편 소설 표지에서는 여름 휴가지의 뜨거운 햇빛이 떠오르고, 초록초록한 에세이 표지에서는 맞바람이 시원했던 거실 소파와 여유로운 한낮의 오후가 생각난다. 가난하고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야기를 통해 부모님을 더 이해하며 마음이 찡했던 것까지.
물론 즐거움과 재미도 잊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은 빠뜨리지 않았으며, 의외로 발견한 좋은 소설을 읽을 때는 잊고 있던 비상금을 찾은 것 마냥 뿌듯했다. 사회적 약자들이나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이면에 대한 책을 들여다보며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생각해 보았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보려고 비문학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그의 작품을 찾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도 읽고 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장르의 책들과 씨름하며 나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독서가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늘어놓고 나의 상태에 따라 책을 골라 들기 때문인데, 때마다 필요한 것을 감각적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무기력하고 피곤할 때는 당이 잔뜩 들어간 바닐라 라테가, 시원한 휴식을 취할 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하듯이.
최근에는 기록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브런치글 모음.
나를 열어두고 실험하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 누가 보든 안보든 아무 관심 없어도, 공개 스위치를 켜두니 자발적인 쓰기가 가능해졌다.
내년에도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할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이 달라지고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하지는 않을 테다. 그저 일단은 묵묵히 차곡차곡 써보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