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책상에서의 단상

아들 불만에서 엄마 반성으로

by 다독임

어젯밤, 책 반납을 앞두고 노트북 파일에 문장 수집을 해야 했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매번 도서관에서 하던 일을 집에서 하려 보니 노트북의 전원 코드를 꽂을 위치가 영 애매한 것이다. 집안을 두리번 대다 마침 비어있던 중3 아들의 책상을 발견, 온갖 잡다한 책들과 쓰레기로 어수선했지만 대충 밀어놓곤 콘센트에 코드를 꽂았다. 평소 같음 한숨과 잔소리가 쏟아졌을 테지만, 책상 주인이 부재중이니 홀로 삼키고 만다.


- 이 책상에서 무슨 공부가 되나, 지저분해서 앉기도 싫네, 이건 왜 안 버리는 거야, 이건 언제 적 물건인가. 등등


그래도 늦은 저녁까지 공부하러 나간 아들을 안쓰러워하며 엉뚱한 이유로 합리화를 한다. 책상 정리는 전혀 별개의 것인데, 공부를 하고 있다는 데서 채워지는 엄마의 대리만족감.


결국 자리가 아쉬운 사람은 나였으므로, 아들 책상 상태가 어떻든 책더미 위에 위태롭게 놓여있던 독서대를 반듯하게 놓고 책을 올려두었다. 책 제목도 좋았다. 김종원 작가의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노트북에 타닥타닥 자판을 치며 내려가니 마음도 가라앉고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 그 순간만큼은 지저분한 책상도, 들쑥날쑥 쑤셔놓은 책들도 문제집도 대수롭지 않다. 음, 이런 것이 글쓰기의 효용이라며 나 스스로 기쁨과 뿌듯함을 느낀 게 불과 어젯밤인데.


오늘 아침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이 책상을 뒤지며 부산스럽게 굴고 있다.


- 아들, 뭐 찾고 있어? 와서 밥 먹어.

- 엄마, 수학 시험지 못 봤어?

간헐적으로 아들 방에 청소를 하러 들어가긴 하지만, 이미 나를 유력한 범인 마냥 모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베란다 분리수거 함을 뒤지는 모양새가 그 증거다. 하지만 일단 빨리 밥을 먹고 준비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돕는 척 아들 방을 기웃댄다. 책상이 그 모양이니 잘 찾을 수 있겠냐는 마음이 훨씬 크지만 아침부터 서로 큰 소리 낼 필요 없으니 자상하게 대꾸한다.


- 요즘 버린 거 없는데? 일단 와서 아침 먹어. 엄마가 한번 볼게.


전에 버리면 안 될 것들을 한번 버린 뒤론, 진짜 쓰레기만 걸러 버리지만 갑자기 소심해진다. 혹시 모르는 사이에 뭔가 딸려서 버려졌나 싶어서. 어젯밤에 손댄 게 있었나 빠르게 상황 되감기도 해 보지만 아무리 봐도 난 연관성이 없다. 처음엔 함께 좋은 마음으로 시험지를 찾기 시작했지만, 도통 보이지 않는 시험지로 인해 아들은 학원 숙제에 대해 조바심으로, 나는 애꿎은 책상 상태에 대한 짜증으로 서로 마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찾든 말든 그냥 알아서 하게 두면 되었을 걸 엄마의 참견으로 엉뚱한 곳에 불이 붙고만 형국. 시험지가 없어졌다는 본래의 문제는 어디 갔는가. 그저 아들에 대한 괘씸함, 평소 지저분하게 물건을 늘어놓는 습관, 평소에 예의 바르고 착한 척 다하면서 튀어나온 재수 없는 말투(궁시렁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툴툴댐) 등. 몇 마디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속의 화는 아들을 향해 저만치 엉뚱한 곳으로 번져 간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말 수술받고 와서 누워만 있던 나를 향해 셀프 측은지심이 발동하면서 괜한 서운함을 끌어다 모아 나도 결국 "너 말 그렇게 재수 없게 할래?"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시험지 버린 적 없으면 되는 거지, 알아서 찾겠지- 하고 두면 되는 것을 나도 왜 굳이 먼저 찾아주고 싶었는지. 되도록 뭐든 알아서 하게 두자 싶으면서도 어느 순간엔가 약해지는 지점이 바로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아마도 '공부'. 아들이 학교에 들고 가려고 했던 게 스도쿠 책이나 보드게임용 카드였다면 내가 굳이 찾는 걸 도우려 했을까. 오히려 뭐 하러 그런 걸 들고 가냐며 타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졸업을 목전에 두고 놀기만 할 시간에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괜한 오지랖과 욕심을 부린 건 아니었나 모르겠다.


아들의 책상도 참 지저분하지만, 내 마음도 그에 못지 않다. 공부고 뭐고, 알아서 스스로 하게 두자 싶은 마음은 간혹 이렇게 엄마의 욕심과 불안으로 무너져 버린다. 어쨌거나 글을 쓰며 또다시 마음을 다잡는 이 시간에 글쓰기의 쓸모를 되새긴다. 아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차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것. 창피하고 부끄러운 속내를 까뒤집고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


그나저나, 엄마에게 버릇없이 말한 거 사과하라고 문자 보내놨는데 이 녀석이 확인을 안 하네. 그래도 씁쓸한 마음이 영 가시질 않으니, 오늘 저녁은 그나마 한편인 남편을 욕받이 삼아 닭똥집이라도 먹으러 나가야 할까.


나쁜 마음과 감정을 최대한 참고 사색하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오래 참으면,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그렇게 남는 것을 엮으면 당신만 쓸 수 있는 멋진 글이 된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_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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