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줌바댄스와 글쓰기

by 다독임

글을 안 쓴 지, 못 쓴 지 2주가 넘어간다. 뭔가를 붙잡고 계속 읽지만 그것이 나의 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에 여러 날 공허했다. 그 이유에 대해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다가, 얼마 전 줌바댄스 회원에게서 받은 레깅스 보따리에서 뭔가를 발견할 듯 말 듯해서 얼른 글로 옮겨 본다. 까먹기 전에.



줌바댄스 수업에서 만나는 S언니는 맨 앞줄 중앙에서 우렁찬 기합과 홀릴듯한 표정으로 가장 열심히 잘 추는 사람이다. 각종 댄스 지도사 자격증 보유자답다. 그 언니와 친해질 접점은 별로 없었지만, 매일 수업에서 만나다 보니 작년 여름부터 자연스레 말을 트게 됐다. 처음엔 그저 춤추기 좋아하는 75년생 언니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두색 번호판을 단 빨간 포르셰를 타는 전무님이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뭔가 노련하면서 체계적이며 예리했다.


매일 빠지지도 않고 열심히 하는 내가 기특해 보였는지 그녀는 나의 실력 향상을 위해 은근한 도움들을 주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내며 스텝이나 동작의 순서를 알려주기도 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잘 따라 하는 동작들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주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안무들을 곧잘 따라 하는 나에게 그녀가 전수한 마지막 팁은 자신감 있게 활짝 웃으라는 것이었다. 양손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덧붙이는 말.

-신나게 해 봐요. 다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수업 내내 대부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나를 보며 S언니는 족집게 강사처럼 수정사항을 끄집어냈다. 동작은 정확하지만 살짝 뭔가 아쉬운 이유인 즉, 나의 경직된 표정과 마음껏 자유로이 골반을 돌리지 못하는 용기와 자신감의 부재였다. 뭔가에 갇혀 과감히 깨고 나오지 못하는 어떠한 습성이 내 안에 있음을 그녀는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매번 나에게 웃으면서 신나게 하라고 애정 어린 잔소리 코칭을 했었나.


엊그제는 그녀가 내게 레깅스 몇 벌을 건네주었다. 거의 새 거고 비싸게 샀는데 본인에게 작아져서 입지 못하니 내가 입으면 잘 맞을 거라면서 말이다. 집에 와서 보따리를 꺼내보니 범상한 레깅스가 아니었다. 다리 한쪽이 전면 레터링으로 장식되어 있는 레깅스, 스크류바처럼 빙 돌아가며 허벅다리 일부가 매쉬 소재로 된 레깅스까지. 보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들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외향형 같지만 내향형으로 진행 중인, 남의 감정은 잘 읽지만 정작 내 감정을 드러내는 데는 한없이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타고난 성향이 러하니 과감한 레깅스를 보며 주춤하고 춤출 때도 홀로 쑥스러울 수밖에. 그러니 일 년이 넘어가도 춤을 추는 거울 속의 내가 아직도 어색할 수밖에.


그랬다. 나는 내 모습과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면 거울을 마주하기 어렵다. 동작이 맞나 슬쩍 스쳐보기만 할 뿐 거울이 안 보이게 일부러 앞사람의 뒤에 겹쳐 서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강사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열심히 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도 눈길을 피해 가며 애써 춤을 추고 있던 것이다. 어쩌면 춤보다는 운동 그 자체에 충실한 박자 맞추기와 동작 따라 하기에 가까웠을지도. 줌바댄스를 좋아는 하지만 온전히 즐기지는 못하는 아이러니.


S언니가 건넨 최종 병기를 들고 이제는 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무언가에서 벗어나 이제 좀 더 신나고 즐겁게 춤을 춰보려 한다. 홀로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에서 좀 벗어나야지. 다음날 S언니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검은색 힙커버 스커트를 건넸다. 레깅스만 입기 부담스러우면 이것을 걸쳐 보라고.


최근의 줌바댄스 자아성찰을 통해 도무지 쓰지 못하는 마음들 속에 갇혀 있던 나를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잘 쓰고 싶은 속내,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어설픔, 뭐라도 꾸역꾸역 성실히 써내야 할 것 같은 부담 등에 스스로를 얽어매며 꼼짝 않고 있던 여러 날들. 불과 얼마전만 해도 글쓰기가 좋다 좋다 했으면서, 갑자기 글쓰기 모르쇠로 돌변했었다.


오늘 저녁 수업에는 레깅스에 힙커버 스커트를 두르고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거 보면, 나는 변화가능성이 있다. 스커트를 두르면 팔랑 팔랑대는 실루엣 덕분에 더 역동적으로 보여 자신감이 솟아 오를 것 같으니까.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그런 날이 오겠지. 아니면 또 어떻고.


쓰기도 마찬가지 같다. 마음껏 잘 써질 땐 열심히 쓰고, 안 써지면 그냥 잘 쉬다가 또 쓰면 되지 뭐. 춤출 때 애써 거울을 피했던 것처럼,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자 했을 때 괜히 홀로 엄격했다.


결론이 명쾌하지 않은 미완의 글이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글을 발행한 기념으로 오늘 줌바댄스 수업에 갈 때는 레깅스에 힙커버 스커트를 입고 가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