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도 오빠는 오빠

같이 늙어가는 남매

by 다독임

며칠 전 친정 오빠에게 카톡이 왔다. 미리보기로 언뜻 열었을 땐 뭔가 용건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평소 살갑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므로 갑자기 오는 연락은 왠지 긴장이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터치해서 확인한 메시지는 다름 아닌 배민 5만 원 상품권. "행운의 부적, 다 이룬다"라는 문구에 네잎클로버를 들고 돌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각자 생일에 축하문자도 안 주고받는 사이인데, 웬 상품권?


상품권에 추가된 메시지는 없다. To. 내동생 이라는 내용만 확인될 뿐이다. 곧이어 "애들하고 치킨 시켜 먹어"라는 내용을 확인했다. 뜬금없이 날아온 상품권을 받고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지난주 서울페이 상품권을 구매하면서 오빠에게 대리구매를 부탁한 적이 있다. 지역 상권의 활성화와 소상공인들을 위한 화폐지만, 애들 학원비 몇만 원이라도 아껴보자는 꼼수였다. 남편과 내 몫으로 최대치 1백만 원을 사 두었지만 우습게 동날 것이 뻔하므로 다른 지역에 사는 오빠에게도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빠의 구매 한도도 이미 다 차서 보내줄 수 없는 상태. 어쩔수 없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오빠에게 바로 카톡이 왔다. 애들이랑 치킨 시켜 먹으라는 메시지와 20만 원 송금과 함께.



두 살 터울의 오빠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새언니와 단출하게 살다 보니, 애들 벅적한 우리 집과는 딱히 접점이 없다. 새언니의 반복되는 유산과 난임으로 인한 비자발적 딩크여도 나름 둘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어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따금 조카의 안부를 묻고 챙기는 그들의 마음씀이 고맙고도 왠지 미안할 때도 많다.

두 명의 자녀를 키우는 우리 집보다는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하겠지만, 오빠나 새언니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어서 벌이가 빤할 텐데 오빠의 20만 원이 왠지 짠하게 다가왔다. 새언니 몰래 동생에게 찔러주는 용돈 카톡을 보니 옛날부터 착하고 다정했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 조카에게 좋은 유모차를 사주고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최신 장난감을 사주던 외삼촌, 제대 후 온갖 알바를 하며 학비를 벌면서도 가끔씩 동생에게 좋은 가방이나 옷을 사주었던 복학생, 어린 시절 부모님이 큰 소리를 내며 싸울 땐 같이 옆에서 눈물을 삼켰던 오빠, 일을 나간 부모님 대신 저녁에 서툴게 라면을 끓여주었던 어린아이.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예전처럼 넙죽 철없게 받을 수만은 없어 "오빠 비자금이나 많이 만들라"며 답톡을 보냈다. 그렇게 송금이 자동 취소되고 날아온 것이 저 배민상품권이었다. 학원비 아끼겠다고 지역상품권을 모으는 동생이 안되어 보였나, 대리구매를 못해줘서 미안해서 그러나 싶었는데, 이유는 의외로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주식으로 오늘 백만 원 벌었어."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자주 만날 일도 연락할 일도 그다지 없는 울오빠. 최근에는 아빠 모시고 병원 가는 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다. 그러지 않고선 보통 명절이나 가족 행사 때 잠깐씩 만나는 게 전부였다. 이번 상품권을 보낸 마음에서도 느꼈지만, 때로는 남 같은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되는 날이 있다. 지난달에는 새 학기 수업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아빠를 모시고 병원 가는 일이 불규칙하게 잡혀 있어 마음이 여러 날 불편했다.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오빠에게 물으니 걱정 말고 네 할 일 해, 본인과 새언니가 반차내면서 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오빠의 존재가 큰 산처럼 세상 든든하게 느껴졌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빠라는 존재가 남 같고 낯설 때마다, 이렇게 친정오빠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날들이 있다. 이번 설 때 만나면 좀 더 친절하게 대해야지. 그나저나 오빠가 집어준 그 종목을 사는 게 맞는지 아직은 긴가민가하지만, 나는 알아서 잘 살 테니 울오빠도 새언니와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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