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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엉뚱한 1박

by 다독임

설레는 주말을 앞두고 집 밖에서 단둘이 얼마만인가. 오늘은 남편과 오붓한 1박이다.


분위기 좋은 음악이나 맛있는 음식은 하나 없는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고로롱 고로롱 코골이, 시끌시끌한 중국 간병인들의 낯선 억양, 촤르르 착착 커튼 여닫는 소리뿐이다. 음식은 언감생심, 공복 24시간이 되어간다. 특별히 내일 아침조식으로는 죽을 예약 했다.

이곳은 종합병원의 5인실.


오늘의 여정은 아침 7시, 해뜨기 전부터 시작됐다. 실비 보험을 받으려면 6시간 이상 입원을 해야 해서 병실에는 잠시만 머물 줄 알았는데, 1박 입원을 통보받았다. 동네 병원에서는 당일 입원하고 수술 후 귀가 예정이었기에 이곳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었는지, 나도 참 어리석다.


가슴의 묵직한 혹과 이따금 찾아오는 통증을 빨리 해소하고 싶어서 수술 날 만을 기다렸는데, 치밀한 준비나 마음가짐은 없던 나의 무딤과 미련함에 스스로 머쓱해진다. 부인 말만 믿고 보조배터리와 이어폰, 책만 챙겨 따라온 극 J 남편은 몹시 당황하며 응급 어메니티로 다이소 세면 용품을 사 왔다. 온라인상에서 부인 간병에 관심 없는 나쁜 놈으로 채색된 남편은 이를 만회하려는 듯 나를 극진히 돌보는 중이다.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이동하는 동안 비련의 주인공 같은 착각도 잠시, 병원 복도의 흰 천장과 분주한 수술실 풍경에 드라마 슬의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잠이 들고 정신을 차리니 이미 수술은 끝났다. 쏟아지는 잠을 떨치고 나니 통증도 많이 가라앉고 몸도 가뿐해졌다.


5년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을 땐 아이들을 친구집에 고모집에 이리저리 맡기느라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번엔 준비할 일 하나 없음이 어색할 만큼 신경 쓸 없다. 마침 딸은 친구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라 노느라 바쁘다. 아들은 어쩌다 홀로 자유를 만끽하는 불금의 행운을 누리게 됐다. 그래서인지 평소라면 귀찮아했을 일들도 뚝딱 신속하게 처리했다. 엄마가 시킨 대로 소고기뭇국이 상하지 않게 팔팔 끓이고 택배로 온 냉동식품도 냉동실에 차곡차곡 정리하기까지. 마지막으로 "수고하십쇼" 다섯 글자로 전해온 아들의 금요일 밤은 몹시도 신나 보인다. 조금 얄미울 만큼.


그나마 7시 이후로 물을 마실 수 있게 돼서 바나나맛 우유를 아껴가며 먹는다. 비록 나는 링거줄과 압박 브라에 매여있고, 남편은 좁고 짧은 보호자 침대에 구겨진 채로 있지만 빠른 회복력에 감사하며 우리만의 불금을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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